경남 창녕군 성산면 운봉에 위치한 나자렛 예수자매회에 파견된 지도 두달이 되어간다. 하루는 운봉에서 봉고로 20여분 거리인 구지면으로 오이를 사러 갔다. 양파 산지이기도 한 성산면 일대와는 달리 구지면에 다달으니 곳곳에 배추밭과 오이 재배지가 눈에 뜨였다. 넓은 밭마다 배추 출하가 한창이었고 상인들의 구매가 끝난 반에서는 벌레먹은 배추들이 그대로 남겨져 있었다. 생전 처음으로 병아리 15마리를 키우며 온갖 정성을 쏟고 있었던 차에 저렇듯 많은 병아리 먹이. 게다가 아주 잘 먹는다는 말을 듣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결국 국도 한옆에 봉고를 세워두고 밭으로 내려갔다. 대부분의 뿌리는 썩어 있었지만 찌게감이나 생저리감으로 이용할수 있는 부분도 상당량이나 되었다.
새로운 사실에 더욱 신이 난 우리들은 쓸만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거의 한잎도 남기지 않고 차에 실었다. 가득찬 배추 냄새를 맡고 몰려드는 파리도 개의치 않고. 주인에게는 거의 쓸모가 없었던 썩어가는 배추라는 사실도 아랑곳없이 오랫만에 가득쌓인 재물 (?) 탓이었던지 폭발스러운 웃음을 거둘수가 없었다, 재물을 쌓아두는 기쁨이 이런 것인가?
기쁨의 흥분도 가라앉고 저녁시간 주님 대전에 무릎 꿇어을때 왠지 내 모습이 곱게 보이지가 않아 가슴이 답답했다.『주님! 제가 얼마나 살림살이에 알뜰합니까?』라고 여쭈었지만 마음속 깊이에는 정신없이 끌어 모았던 욕심스러움이 자리잡고 있었음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만일「배부르다」라는 느낌의 제어 장치가 없었다면 좋아하는 음식을 절제 할줄이나 알았을까? 새삼 만사에 있어 순조롭지만은 못했던 제동들이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의미로 가깝게 다가왔다.
주님! 동물에 가까운 원초적인 욕망들을 당신 생명에 참여한 인격체의 품위있는 열정으로 높이 들어 올려주십시오. 게걸스럽도록 썩어 없어질 재물을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제한하며 절제할줄아는 소박함으로 주님이 즐기실 귀한것들을 쌓게 말입니다.
주님께서 높이 들고 계셨던 옐로우 카드 (Yellow Card) 를 내려 놓으셨다. 내용인즉『너희는 있는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라……재물 창고를 하늘에 마련하여라……너희의 재물이 있는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 (루가12, 33~34) 라는 경고 말씀이셨다.
본보는 이번호부터 수도자들의 이야기를 담은「수도의 길목에서」란을 신설합니다. 필진은 전국 각수도회에서 4명의 수도자가 매달 1회씩 4번 집필하게 됩니다.
이번호부터는 홍데레사 (샬트르 성바오로회) 임원지 (살레시오회) 김옥희 (한국순교복자회) 김현옥 (성바오로 딸회) 수녀님께서 수고해 주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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