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증언에 의하면 예수는 항상 아픈 사람들을 받아들였다. 병을 낫게한 것은 그가 바로 하느님이 보내신 분이라는 표시이며 또한 악과-죄와 병과 죽음-싸우겠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병을 낫게해주라고 명하셨는데 이것은 구원의 때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구원의 완성은 주님이 다시 오실때、병과 죽음이 완전히 없어질때 비로소 이루어질 것이다.
교회가 구원활동을 함에 있어서 그리스도가 한것처럼 병자들을 돌보는 가장 두드러진 표시는 바로 병자성사이다. 『여러분가운데 앓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교회의 원로들을 청하십시오. 원로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고 그를 위하여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믿고 구하는 기도는 앓는 사람을 낫게 할 것이며 주님께서 그를 일으켜주실 것입니다. 또 그가 지은 죄가 있으면 그 죄도 용서받을 것입니다』(야고보 5、14) 라고 야고보서에 기록되어 있다.
■ 병은 구원을 위태롭게 하는 것
모든 병은 신자들에게 하나의 위기상황이며 동시에 신앙에 대한 시험이 될수 있다. 고통ㆍ좌절감ㆍ고독ㆍ포기 그리고 허무함에 대한 반항심 같은 것은 병자가 약속된 구원에 대해 혼란을 느낄 수도 있는 상황들이다. 여기서 그를 동반해주고 고통받는 그리스도에게 눈을 돌림으로써 피할 수 없는 일을 받아들이도록 해주는 것이 교회가 해야할 일이다.
병자를 위해 해주는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은 곧 병자성사이다. 이 성사는 구원의 위기의 나날중에 구원을 가져오시는 그리스도와 만나는 것이다.
■ 역사적 발전
초대교회에서 병자성사를 거행했다는 가장 오래된 근거는 3세기초의 교부 히뽈리또한테있다. 그는 기름을 축성하는 짧은 기도와 이 기름을 받는 모든 사람들을 강하게 하고 건강하게 해주도록 기도했다고 전하고 있다. 5세기때는 임종하는 병자뿐만 아니라 다른 병자들을 위해서도 병자성사를 베풀어 주었다.
그러나 나중에 더 엄격한 속죄를 덧붙여하도록 하면서 서방교회에서는 성사를 임종직전까지 뒤로 미루어나가게 되었다. 중세기 신학에서는 이 성사가 임종하는 사람을 위한 마지막 무장이며 하느님을 만나게 해주는 것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최후의 고백성사、최후의 기름바름 그리고 마지막 영성체와 연결해서 사람이 가야하는 마지막 여행을 위해서 주는「노자성사」가 된 것이다. 이런 신학적 견해가 실제 사목에도 영향을 주게되어 이 성사를 오직 임종하는 사람、더이상 죄를 지을 수 없는 사람에게만 주었다.
■ 삶을 위한 강화
그러나 앞서 인용한 야고보서를 염두에 두고、지난 제2차 바티깐 공의회에서 주교들은 병자성사가 과거에 임종하는 이에게만 베푸는「마지막 성사」가 되어버린 것을 이제 고치기로 결정했다.
『「종부」는 병자와 도유라고 할수 있으니、이는 죽을 위험이 임박한 이들만을 위한 성사가 아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병이나 노쇠로 죽을 위험이 엿보이면 벌써 이 성사를 받기에 합당한 시기가 된 것이다』 (전례헌장 73장).
그래서 임종하는 이를 위한 성사가 병자를 위한 성사가 된 것이다. 연로한 나이때문에 또는 병으로 육신의 온전함이 크게 위협을 받을때 병자성사를 받을 수 있는 적당한 시기가 된다.
예컨대 큰 수술을 받기 전에 또는 큰 병을 앓기시작했을때、그리고 노인이 점점 힘이 빠지게 됨을 느낄때 그리스도와 다시 결합함으로써 그 어려운 상황을 용기있게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이 성사는 자주 받을 수도 있다. 일시적으로 회복된 후에도 이 성사를 청할 수도 있다.
■ 병자를 위해 성유를 바름
가정에서 병자성사를 받을때 가족들은 가능한대로 책상위에 십자가와 촛불ㆍ꽃 그리고 성수를 준비한다. 가족들과 병자의 친구들과 이웃들이 이 예식에 함께 참례함이 좋다.
사제는 병자와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인사한 후에 먼저 고백성사를 준다. 이때 병자와 사제만 방안에 남아있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모두 함께 참회의 기도를 바친다.
성경독서와 신자들의 기도를 바친다음 사제는 성유에 대한 감사의 기도를 바치고 병자의 이마와 양손바닥에 기름을 바른다. 그후 모두 주의기도를 외우고 병자와 참석자들은 성체를 영한다. 이어 사제의 강복으로 예식이 끝난다.
■ 성유의 표시
이 성사를 거행하는데 왜 성유를 쓰는가? 고대문화에서는 기름을 제외하고는 향료로 쓸수 있는 것이 없었다. 기름은 축제적 기쁨의 표시였다. 사람들은 얼굴에다 이 기름을 발랐고 초기 고대시대 이래로 사제수도자 예언자 왕들을 서임할때 이 기름을 발라주었다.
병자성사를 위한 기름은 주교가 카리스마미사때 (성주간 수요일 저녁이나 목요일 오전) 축성한다. 이때 교구의 모든사제들이 함께 초청되어 부활신비의 거행을 준비하고 그리스도께 대한 봉사직에 그들의 헌신을 새롭게 한다. 이 미사때에 예비자 성유와 병자성유의 축성은 카리스마축성과 긴밀히 결합되어 있다. 이것은 병이 일생의 한 작은 경험이 결코 아니며 신자들의 일생의 여러가지 사건들이 성사적 은총에 매여있는 것처럼 병도 성사적 은총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카리스마성유도 세례ㆍ견진 그리고 신품때 사용된다.
병자기름을 성주간 전례동안 축성하는 까닭은 이성사가 그리스도의 수난에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병자가 이 성사를 받는 것은 성주간에서 시작되는 부활의 신비와 특별히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축성기도문에서 교회는 이 기름을 받게될 모든 사람들을 미리 기억해준다.
『온갖 위로의 아버지이신 천주여、성자로 하여금 병자들의 아픔을 고쳐주게 하셨으니 신자들의 기도를 자비로이 들으시고 하늘로부터 빠라끌리또 성령을 보내시어 육신의 건강을 위하여 푸른 나무에서 얻게하신 이 기름에 강복하소서. 주의 거룩한 강복으로 이 기름을 바르는 모든 이의 육신과 영혼과 정신을、보호하시고 온갖 고통과 허약과 질병을 없애 주소서』.
이 기도문에도 기름 바름이 삶을 위한 성사라는 새로운 면을 표현하고 있다. 병자에 기름바름은 옛날 지상에서 생활할때 병자들을 사랑하고 돌보아 주셨던 그리스도와 만나고 당신의 수난과 죽음으로 우리들의 병고와 죽음에 뜻을 부여하셨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다. 우리가 그분과 함께 죽으면 역시 그분과 함께 부활할것이라는 확신을 그분은 주신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