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가 된 이듬해에 시골본당신부로 부임했습니다. 나는 그 곳에서 일생 잊지못하는 여러 추억들을 얻었습니다.
한번은 어떤 공소에서 미사를 마치고 마당에 나오는데 한 할머니가 두 손으로 내 손을 움켜 잡아며『신부는 몇 살이고?』했습니다. 『갓 서른 입니다』했더니、『아이고、참 아깝다!』그랬습니다. 나는 어리둥절해서 더 묻지도 못했고、그 할머니도 더 이상 설명해 주지 않아서 아직도 뭐가 아까운지 나는 모릅니다.
아무튼 그 할머니로서는 뭔가 아까운 것이 있었던 모양인데 그것이 무엇이었던 간에 나는 그 사실을 잊어 버릴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쩐지 그 말이 들기가 싫지 않았고 그 이후 같은 소리를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으며 이제와서는「한 두번 더 들었으면…」하는 기대와 그때 물어보지 못한 아쉬움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정은 좀 다르겠지만 김대건 성인신부의 행적을 보면서「참、아깝다」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선 젊은 나이가 아깝고 재능이 아깝고 사제가 되기까지 준비한 기간과 고생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가뜩이나 어려운 교회 형편인데 귀한 사제 한 분을 잃게 된 어린 교회 사정을 감안하면 아깝다는 감상적 표현을 넘어서 하느님도 너무 하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물론 머언 훗날을 보면 순교하신 것이 훌륭하셨지만 당장은 살아 남아서 신자들을 좀 더 돌보았어야 했을것 같았는데、여러가지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교회는 처음부터 인간적 상식이 통하지 않은 출발을 했습니다. 그리고 가톨릭 성인전을 읽다보면 훌륭하고 착하게 일생을 살다 간 성인들이 어찌보면 하나같이 바보같은지、마치 바보들의 각종 모델을 수집해놓은 백과사전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자고로 착한 것과 바보는 가끔 동의어로 사용한 듯 합니다. 제것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바보를 일컬어 차마「바보」라고는 못하고「사람이 워낙 착해서!」라고 말하며、속으로는 한심 하다는듯 혀를「쩌쩌」하고 찹니다.
사실 현대사회는 눈을 뻐언히 뜨고 있는대도 코를 베어가는 세상입니다.
이 경쟁사회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영악해야 하고 지혜로와야 합니다. 착한 바보들은 항상 당하기만 하고 살 수 밖에 없습니다. 나는 자주 항의를 듣습니다. :「신자라는 이유 때문에 왜 당하기만 해야 하는가?」:「바보취급하고 무시하는데 손해 보는 줄 알면서도 가만히 있어야 하는가?」:「신자 생활 잘 하려면 평생 허리 한번 못 펴고 살아야겠다」:「요새 교회에서 시킨대로 살았다가는 돈도 제대로 못벌고、돈을 못 벌면 교회에 낼 돈도 없고、돈을 많이 못 내면 교회에서도 별로 인정을 못 받고、교회는 돈이 필요하다는 얘기만 자꾸하고、그러면 신자들은 어떡하란 말인가?」「그러다보면 성실한 신자들은 결국 가정과 사회에서는 무능한 자가 되고 교회에서도 신자 노릇 제대로 못하는 낙오자가 되는 것이 아닌가?」…할 말이 없습니다.
세상은 착한 사람보다 유능한 사람을 바랍니다. 청렴결백이 덕성스런 시대는 이미 지나갔습니다. 어떤 직위에서 얼마간 봉직하고서도 어느정도의 부를 축적하지 못했으면 그는 어디까지나 무능한 사람으로 분류됩니다. 말하자면 바보입니다. 「능력이 있는 사람」이란 평가를 들으면 기분이 좋지만「착하다」는 평가를 들었다고 기분 좋아하는 사람이 드문 세상입니다.
이 시대의 징표를 어떻게 읽어야 할 것입니까? 요즘 나는 옛날에 비해서 고기 음식을 자주 그리고 넉넉히 먹곤 합니다. 고기가 야채보다 값도 비싸고 맛도 좋지만 그렇다고 고기만 계속 먹으면 몸의 균형이 깨지고 건강을 헤치게될 것입니다. 이때 더귀한 것은 고기가 아니라 야채 입니다. 한번 귀했던 것이 항상 더 귀한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물 한잔이 금반지보다 귀한 순간이 있을 수도 있고、백원짜리 화장지가 만원 짜리 지폐보다 요긴한 경우도 있습니다. 소위 귀한 것만 있으면 귀하지 않고 흔한 것이 되며、귀한 것을 귀한 것으로 해 주는 것은 균형입니다.
세상에 유능한 사람、영리한 사람들만 있다면 이미 그들의 능력이나 재능은 귀한 것이 아니며 세상은 불균형으로 병들어 버릴 것입니다. 어쩌면 이미 병들어 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은 아직도 그들의 눈에 어리석고 순진한 사람들이 있어 균형을 잡아 줌으로써 유지되고 있습니다. 모두가 똑똑하고 지혜로운 판국에、오히려 귀한 존재는 그들 보기에 무능하고 바보된 존재들이며、지혜로운 자들이 잘 살 수 있는 것도 이 바보들의 덕분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 시대는 바보들을 보다 필요로 하는 때입니다. 바보가 이 땅에서 사라지는 날 세상에는 마지막 큰 재앙이 올 것입니다.
오늘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신부 대축일에、초기 교회가 아까운 김대건 신부를 잃었기에 또 김대건신부는 그 아까운 나이와 재능 그리고 생명을 바쳤기에、아까운 것을 손해보고 신앙과 바꿔치기하려는 3백만 오늘의 한국교회가 있고 1천6백50명의 소중한 사제들과 6천명의 수도자들이 있음을 절실히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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