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예수의 메시지가 어떤 신적인 권위를 가지는지 궁금해 했고 그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는 한 믿으려 들지 않았다.
노골적인 적대자들인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께서 마귀를 쫓아 낸 것을 (이 일은 그들에게 굉장한 일로 보였다)사탄의 힘을 빌어 한 것이라고 우기고 있었지만 베엘제불 논쟁에서 자기들의 주장이 억지임이 드러났다. 그래서 그들은 율법에 정통한 사람답게 예수를 선생님이라 부르면서 징표를 요구하였다 (공동번역에서는 기적이라고 번역하였지만 이것은 잘못된 번역이다). 그들은 궁지에 몰렸을 때마다 하느님이 예수를 인정하는 징표를 보여 달라고 요청하였다 (마르 8,11~12 : 마태 16,1~4).
그러니 그들이 요구하는 징표는 기적과 다르다. 그들은 구약시대에 예언자들을 통하여 직접적인 하느님으로부터의 징표를 받은 바 있다. 하느님이 자기들은 보호해 주신다는 표로 에집트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나올 때 광야를 헤매며 하늘에서 내려 오는 만나를 얻어 먹었고 (출애16)하느님의 백성이 적극 에집트 땅에서 탈출해 나올 때 당신 백성을 보호하는 표로 10가지의 재앙을 내리신 것을 우리는 성서에서 읽어 잘 알고 있다 (출애 7,14 : 12,30).
사무엘은 사울에게 나라를 맡기며 사울이 하느님의 선택된 인물임을 백성들에게 알리기 위하여 이를 거역하는 백성들에게 하늘로부터의 징표를 보여 주었다. 『이제 너희는 서서 야훼께서 너희 눈앞에 해 보이시는 놀라운 일을 지켜 보아라』고 사무엘은 외치면서 추수를 앞둔 밀밭에 천둥과 폭풍우를 내려 벌하였다 (사무상 12,16~19).
또 대 예언자 엘리야가 야훼께서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시고 엘리야가 하느님의 종이며 엘리야가 한 모든 일이 하느님의 말씀을 좇아 한 것임을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알게 해 달라고 청하였을 때 야훼께서는 불길을 내려 제물과 함께 나무와 돌과 흙을 모두 태우고 도랑에 괴어 있던 물을 한 방울도 남기지않고 말려 버렸다 (열왕상 18,36~38).
유대아의 지도자들은 이와 같은 종류의 징표를 요구하였고 (마르 8,11 : 루가 11,16 : 마태 16,1~4)그러한 징표가 없으면 믿지 않겠다고 하였다 (요한 6,30).
오늘 대목에서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도 똑 같은 맥락에서『선생님, 우리에게 징표를 보여 주셨으면 합니다』라고 요청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요청을 받을 때마다 예수께서는 명백하게 나타나 있는 시대의 징조를 모르는 이 세대를 한탄하시곤 하였다 (마태 16,2~3 : 루가 12,54~56).
전교초기에 예수께서 고향인 나자렛을 방문했을 때 마을 사람들은 그를 믿지 않고 기적을 요구하자 이를 거절하고 한탄스럽게 고향을 떠나갔다 (루가 4,23 이하 : 대목96참조).
조금이라도 신앙의 눈이 있다면 사람의 아들로서 이 세상에 왔지만 이 분이 나타난 자체가 하늘로부터의 징표임을 알 수 있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처음 등장하여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받을 때에 하느님께서 당신의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니 그의 말을 들으라고 하셨다 (마르 1,11 : 마태 3,13~17 : 루가 3,21~22). 그분이 군중에게 구원의 가르침을 내릴 때에 사람들은 구원의 때가 왔다는 징표로 받아 들였어야 했다.
세례자 요한이 감옥에서 예수의 행적을 전해 듣고 제자들을 예수께 보내어 그 분이 기다리던 메시야이시냐고 물었을 때에 소경이 보게 되고 절름발이가 제대로 걸으며 문둥병자가 깨끗해지고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사람이 살아 나고 가난한 사람이 복음을 전해듣는 것을 보았으니 그대로 가서 전하라 (루가 7,22~23)고 하셨다. 이 소식은 이사야 예언자가 구원의 세대를 알아보는 징표로 예고한 예언이었다 (이사 26,19 : 35, 5~6 : 61,1).
『나를 의심하지 않고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루가 7,23)라고 말씀하신 대로 믿음이 없이 증빙만을 요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남편이 부부생활의 체험에서 아내를 믿지 않고 생활의 증명을 요구한다면 부부사랑의 끝장을 뜻한다. 보증이 요구되는 곳에는 믿음이 있을 수 없다.
예수의 현존을 체험하면서 하느님의 손일을 감지하지 못하고 하늘로부터의 징표를 요구하는 이 세대는 악하고 절개없는 세계이다. 우둔해서 하느님의 손길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의 현존을 보면서도 고개를 돌리고 일부러 알아보려 하지 않으니 이 세대는 악의에 찬 세대이다.
구약성서에서는 하느님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우상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백성을「간음하는 백성」이라고하였다 (예레13,27 : 이사 57,3이하 : 호세 1~3장). 하느님의 말씀이 이 세상에 내렸고 그 말씀을 통하여 이 세상이 생겨났고 구원되었는데도 그 말씀을 받아 들이지 않는 이세대는 (요한 1,10) 믿지 않고 징표를 요구하니 참으로「간음의 세대」이다.
이들은 하느님의 뜻을 자기의 뜻에 굴복시키려고 한다. 이 세대는 요나 예언자의 경우를 징표로 삼아야 한다 (요나 2,1). 요나는 (전 8세기경)이 교도들을 회개시키러 가라는 하느님의 명령을 거역한 죄로 바다에 빠져 고래 뱃속에서 3주야를 지냈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구출되어 지시의 도읍 니느베로 가서 회개를 설교하였다.
이 이야기를 비유삼아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지시를 따라 지하 세계에서 사흘동안 지내고 영광속에 부활할 것을 예정으로 주신다. 니느베사람들은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지만 유대아인들은 예수의 설교를 듣고도 회개하지 않았으니 이들에게는 또 다른 징표가 필요없다.
세상에 파견된 예수는 요나보다 더 큰 인물이다. 그러니 그를 외면한 이 세대는 심판날에 이교도 니느베 (현 이라크)의 고발증언을 받게 될 것이다. 이들을 심판할 또 하나의 증인은 쉐마 (현 사우디, 예멘지방)의 여왕이다. 그녀는 먼 이교도국에서 솔로몬왕의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지혜를 전해 듣고 그를 찾아 지혜의 말씀을 들었다 (열왕 10,1이하). 예수의 말씀은 솔로몬의 지혜의 말씀을 훨씬 능가하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이 말씀을 수고들이지 않고 듣고도 외면하는 이 세대는 사악하고 절개없는 세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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