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무더운 여름, 점심식사, 중에 짜증스런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날따라 아침부터 피곤해서 점심식사 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한참 자야겠다고 각본을 짜놓고 있던터에, 가까이 있는 병원에서 급한 환자가 병자성사를 청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짜증스런 소리로 이것 저것 물어봤습니다. 가지 않아도 될 핑계가 없는 지 찾을 양이었습니다. 환자의 본당은 어딘지 물어보니 시골 어느 본당이었습니다. 관할 본당 신부님께 연락 해봤는지 뻐언한 질문을 했습니다.
월요일이라 본당 신부님은 외출 중이며 언제 돌아 오실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또 다른 본당에도 이미 연락해 봤는데 신부님이 안 계셨든지 못 가신다는 대답을 들었답니다. 그리고「지난번에도 해 주셨으니」또 나더러 가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꼼짝없이 잡혔다는 생각에「가겠다」고 대답하고 옷을 갈아 입으며 거울에 비친 얼굴을 보니 불만과 심술로 양 미간의 잔뜩 찌푸려져 있었습니다.
가는 도중에도 마음이 편찮아서 그런지 날씨는 더욱 찜통같이 더웠고 머릿속에는 별 잡다한 불평이 다 생겼습니다. 「나는 본당신부도 아닌데 왜 내가 병자성사를 다녀야 하는가?」「본당신부는 왜 아무 조치도 해놓지 않고 외출했는가?」「나한테 부탁하는 전화도 없었는데 (사실은 누가 부탁을 했더라도 내가 책임진다고는 하지 않았겠지만)본당신부가 없을때마다 내가 가야 하는가?」「하긴 지난번에 내가 갔다 왔는데도 아무도 고맙다는 인사도 없었어!」이마에 땀을 훔치며 골목길을 걸어가다가「이러다가는 내가 병원 병자성사 단골 신부가 될라!」걱정도 되었습니다.
「이게 돈이 생기는 일이라면 내 차례까지 돌아오지 않을 것」이란 생각도 했습니다. 「이렇게 속 상하게 싫어서 나도 월요일에는 집에 있지말고 외출해 버려야겠다!」……
병원에 도착하여 환자의 병실을 물어 환자를 찾아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잠들어 있는 듯 보이는 환자를 한참을 물끄러미 내려다 보았습니다 병세는 그렇게 다급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무척 외로워 보였습니다. 함께 입원한 다른 환자들과 방문자들의 시선을 느끼며 환자의 성 본명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눈을 뜬 그 환자에게서 무척 고마워하는 표정과 안심한 듯한 평화로운 마음을 읽을수 있었습니다.
그 방에서는 그와 나만의 유대감 같은 것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이제 병원을 들어 설 때까지만 해도 불만스럽고 억울했던 나의 느낌들은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지금 내가 상당히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과 함께 뿌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그 환자가 나를 통하여 평화를 얻었는지 내가 그 환자를 방문 함으로써 안정을 얻게 되었는지 헷갈릴 지경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그는 질병으로 인한 죽음의 위험보다도 또 중죄 중에 있으므로 고해성사가 필요한 것보다도 더 절실한 부분은 고독한 느낌이 아니었나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나도 언제라도 그런 처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도 무거웠습니다.
오늘 복음을 읽으며,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되려고 하기 전에 강도 (이스라엘 사람)가 되지 말아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꼭 남의 재물을 빼앗고 상처를 입혀야만 강도가 아니라 형제의 평화와 기쁨을 빼앗고 사랑하는 마음과 삶의 의욕을 약탈하여 미운마음이 생기게 하고 절망하게 한다면, 그래서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면 그도 강도짓 한 것입니다. 버젓한 신앙인 이스라엘인 강도가 된 것입니다.
강도를 만나 상처를 입고 길에 버려진 사람을 우리는 쉽게 만나자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배신과 이용만 당한 사람, 힘없고 돌봐주는 이 없어 최소한의 인간적 권리와 건강마저 빼앗긴 사람, 그래서 소외되고 상처 받은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 지내면서도 서로를 경계하고 경쟁하며 살아야 하는 우리 모두는 어쩌면 스스로 고독한 세상의 한가운데를 살아가고 있기에 다 외로운 사람들이며 강도를 만난 사람만큼 다급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다급하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또는 알지만 알량한 자존심과 우월감 때문에 이웃의 도움을 포기한 미련한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강도를 만나 버려진 사람을 따로 찾아 나설 것 없이 만나는 모든 사람의 이웃이 되어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내가 고독을 느낄때에는, 혹시 나는 남을 외롭게 하거나 아프게 해놓고도 무심하거나 그냥 지내고 있는지 않는지 또는 고독한 형제를 외면하고 무관심하게 지내지는 않은지 반성해야 하겠습니다.
내가 몸도 마음도 상처 받은 사람의 이웃이 되어 줄때, 오히려 내가 외롭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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