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을 비추러 온 빛이며 이 빛은 하느님이 보내신 징표이다.
요한 복음서는 이 점을 강조하며 복음서를 시작한다. 『말씀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빛이며, 이 빛은 어두움을 비추고 있다』(요한 1, 4~5).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라오는 사람은 어둠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요한 8,12)라고 말씀하셨다.
이제 예수께서는 어둠을 비추어 주는 당신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요한 1, 11)모세의 징표와 광야에서의 천상적 징표를 요구하는 사악한 세상에 제자들을 보내야 하는 얼마 남지 않은 지상생활을 앞두고 제자들 자신이 예수를 증언해야 하는 세상의 빛이라는 자각을 심어 주신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빛은 비추기 위하여 있는 것이지 어둡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짠 맛이 없는 소금은 소금이 아니듯이 빛이 빛이 아니라면 어두움만도 못한 끔찍한 상태일 것이다.
태초에 하느님이『빛이 생겨라』라고 창조의 제1성을 말씀하시고 나서부터 모든 것은 살아 났다. 그 말씀이 오늘 생명의 빛으로 세상을 비추고 있다. 이 빛을 제자들은 세상에 전달할 임무를 띠게 되었다.
구약성서에서 백성을 어둠속에서 비추고 인도해 주실 빛은 하느님이시며(시편18, 28)곤경속에서 비추어 줄 빛이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늘 읊어 왔다(미가7, 8 : 이사42, 6: 60, 1~3).
이 사상이 유대아인들의 율법세계에서는 율법이 사람을 인도하는 빛이며(로마2, 19), 예루살렘과 그 성전이 세상을 지도하며 높은 곳에 우뚝 솟은 시온산으로 상징되어 왔다(시편97, 8: 이사 1, 27: 33, 5). 그 도시는 야훼의 지파들이 올라 갈 자리이며… 평화의 소리를 외치며 복을 비는 곳이다(시편122장).
이러한 사상을 뒤에 깔고 예수께서는『산위에 있는 도시는 드러나게 마련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세상의 빛이 된 제자들이 새 시대에서 새 예루살렘이 되며 그 도시는 만민에게 공개되어 문이 활짝 열려 있어야 한다. 제자들은 이제부터 세상에 빛을 비추어야 한다. 빛이 자기 빛을 가리우고 나타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한 집안에서 방안의 어두움을 비추려면 등불을 켠다. 그런데 등불을 끄기 위하여 불을 켜는 사람은 바보중에 바보일 것이다.
예수 당시의 사람들은 등불을 끌때 냄새를 막기 위하여 됫박으로 덮었다. 『등불을 켜서 됫박으로 덮어 두는 사람은 없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이런 배경에서 하신 말씀이다.
제자들은 세상의 빛이며 산위에 서 있는 도시이며, 한 집안의 등불이다. 예수의 제자들은 태초에 하느님께서 어두움을 비추기 위하여 만드신 첫 창조물인 빛을 받아 온 세상에 비추어 줄 매개체가 되어야 한다.
예수의 제자들은 이제부터 높은 산에 자리 잡은 새 예루살렘 도시가 되어 모든 사람들이 그 곳을 향하여 올라 가는 순례자로 이끌어야 한다.
예수의 제자들은 이제부터 한 집안 모든 사람을 비추는 등불이 되어야 한다. 그 집은 교회이며 등불이 놓여 질 등경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들이 비추어 줄 등불을 타오르게 할 연료는 선한 행실과 착한 생활이다. 어두움에 싸인 사람들이 예수의 사명을 받은 제자들의 생활을 모범삼아 빛을 따라가듯 높은 곳에 있는 시 온산 새 예루살렘으로 올라 가도록 인도되어야 한다.
그 새생활상은 무슨 처세술이나 굉장한 철학설 혹은 새계명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 복음을 가르치고 행동으로 보여주어 그들이 듣고 보고 하는 생활양식을 말한다.
예수님이 말씀하신「착한 행실」이란 가톨릭교회의 여러 가지 신심행사, 즉 연보를 낸다든가 피정을 따라 다닌다거나 그 밖에 전례행사에 자주 참석하는 것들로 이 착한 행실에 속하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예수의 빛이 생활속에 속속들이 스며들어 그 빛이 생활신조가 되는 것을 말한다.
그 정신은 복음진리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도록 현실화되어야 하며 예수께 대한 신앙이 생활에 반영되어야 한다.
빛은 남을 비추는데 그 본질이 있는 것이지 자기 자신을 비추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행을 할때 그 선행의 공로를 겨냥하거나 그 선행을 빌미삼아 자기의 명예나 명성을 탐하는 것은 하느님의 빛의 본질과 위배된다. 복음서에서는 이러한 따위의 선행자를 위선자라고 불렀다.
이제부터 제자들은「선택 된 민족」(이사43, 20)이며 왕족이된 사제들이며(출애19, 5~6: 이사61, 6) 거룩한 겨레이며 하느님의 소유가 된 백성(1베드2, 9)으로 높아졌지만 그 모든 영예와 영광은「빛의 아버지」(야고1, 17)이신 창조주 하느님께 몽땅 돌려야 한다. 제자들은 신앙생활을 사랑의 업적으로 빛내고 진리를 생활지침으로 하여 세상을 위한 교회를 이끌어 나아가야 한다.
사람의 눈은 밖의 것을 받아들이기도 하고 안이 마음상태를 밖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선한 마음은 선량한 눈빛으로 나타나고 악한 마음은 사악한 눈빛으로 드러난다. 또 밖의 것을 받아들이는 눈빛이 밝고 어두움에 따라 마음도 밝게 깨닫게도 되고 반대로 옳은 것을 사악하게 받아 들이게 된다.
「눈은 몸의 등불이다」라는 말씀은 이렇게 이해해야 할것이다. 그러니 눈이 어두우면 마음도 어둡고 어두운 마음안에는 빛이 빛이 아니고 어두움을 뿜어낸다. 그 어두움은 빛을 받지 못하는 어두움이며 그 어두움은 가공할 인간의 삶을 만들어 낸다. 제자들의 눈은 재물이나 명성에 어두어진 눈이 아니라 순수하게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눈이어야 할것이다(대목59, 86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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