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려서 성당 바로 아래에서 살다가 국민학교 6학년 때부터는 공소지역에서 살았습니다. 우리가 세 들어 살던 동네에는 천주교 신자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조과만과 묵주신공을 바쳤고 만송을 불렀으며 주일이면 어김없이 공소예절을 바쳤습니다. 일년에 두세 번 공소판공 때에야 신부님 얼굴을 뵈올 수 있었습니다. 중학교 3학년때 지난 주에 말한 수몰지역 고향집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초가에 흙벽돌집이었지만 아버지께서 최초로 마련하신 「내 집」이었습니다. 몇 년만에 수몰이 되자 다시 아래 동네인 교우촌으로 허름한 집을 사서 이사를 하게 된 것이죠.
그 당시 두 집 빼고는 온동리 사람들이 신자들이었습니다. 본당이 된 뒤로는 주일이면 어린이는 어린이끼리, 어른은 어른끼리, 또는 부녀자끼리 무리를 이루어 미사에 참여하러 갑니다. 동네가 모두 빈 집이 되지요. 그래도 도둑맞은 집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신자들 속에 파묻혀 살다가 신부가 된 지라 냉담자가 무엇인지 별로 개념이 없었습니다. 군종신부 생활할 때에야 비로소 『이런 사람을 냉담자라고 하는구나!』하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냉담자만 보면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든 회두시켜 보려고 안간힘을 다 쏟았습니다. ㅊ본당에 가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주일미사에 나오는 사람은 2~30명 정도, 공소 빼고 본당지역 2백여 명은 냉담자입니다. 빈 의자를 보고 『주께서 여러분과 함께』 미사를 해야 하니 기가 막힐 수밖에요. 할 수 없이 냉담자 구출작전을 시작했습니다.
주일미사 시작 한 시간 전부터 자동차를 몰고 냉담자 집을 찾아다닙니다. 『자, 빨리 성당에 갑시다. 미사시간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저는 아직 세수도 안 했는데요? 잘 생겨서 세수 안해도 괜찮으니 빨리 옷 갈아입고 나오십시오』 당부하고는 다음 집으로 달려가 경적을 울려댑니다. 파자마 바람에 나오는 사람, 아직 자고 있는 사람 등 깨우러 돌아다녔습니다. 차에 실어 나른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냉담자 수송 작전은 그 후로도 계속되었는데 다행이도 큰 효과를 보아 몇몇 남자 어른 신자를 건졌고 몇 달 후에는 본당 회장 부회장도 세워 놓았습니다. (제가 부임할 당시에는 본당 회장이 없었습니다.) 내친 김에 하는 말인데 본당 신부 영명 축하식도 얼마나 잘하는지(?) 결국 본당 신부인 내가 사회를 본 적도 있습니다. 미사에 참여하는 본당 신자들에게서도 화가 나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미사 시작할 때까지 불과 10여 명, 복음 읽을 때까지 2~30명, 영성체 후에 들어오는 신자들도 있었습니다. 제의입고 제의실에서 나와 제대에 당도해 미사들 시작하려고 신자석을 쳐다보면 『해도 너무 한다』는 괘씸한 생각뿐입니다. 그래서 입당성가 끝에 모두 앉으라 하고는 교적을 가져다가 아예 출석을 불렀습니다.
겨울철에는 주일 오후에 공소 미사를 드렸는데 오전중 본당 미사에 나오지 않은 사람을 가려내어 기어코 내 차에 태워 공소까지 데려갑니다. 안그러면 언제부터 나올거냐? 다음주부터 나오겠다 그럼 두고보자, 사나이의 약속이니 거짓말 하지 말라고 으름짱을 놓아 다짐을 받아 둡니다.
그러던 어느날 어떤 젊은 여교우가 냉담자란 것을 알고 외인 남편을 잘 구슬러 관면 혼인을 시켰습니다. 부인에게 『이제는 영성체를 할 수 있으니 주일날 빠지지 말고 나오라』고 신신당부 타일렀것만 그 다음주일에 또 안 나온 것이었습니다. 은근히 화가 났습니다. 오후에 공소미사에 데리고 가리라 마음먹고 찾아가 권고하여 차에 태웠죠. 그런데 공소미사를 다녀온 뒤에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남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는데 『집에 와 보니까 아내와 애기가 없어서 어디 갔는지 한참 찾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앞으로 이곳 천주교회에는 절대로 안 내보내겠다는 말과 함께 전화가 끊어졌습니다. 화가 난 목소리인걸 보니 아내와 대판 싸웠나 봅니다. 다시 전화를 걸어 『여럿이 함께 타고 갔으니 오해를 풀라』고 말하곤 신자들에게 방문하라고 했습니다. 다음 주일에 부인이 나왔길래 『남편이 그런 사람인 줄 알면 쪽지라도 써놓고 나올 일이지, 왜 나를 그렇게 욕먹이냐? 여하튼 미안하다. 그 뒤로는 어떻게 되었냐?』고 물으니 『아무렇지도 않으니 걱정마시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이렇게 한다 해서 일이 되는 것이 아니구나 좀 더 현명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에게 빛과 소금은 커녕 오히려 천주교 욕만 먹인 셈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산상 설교 말씀으로 신자들의 생활 태도를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며 소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빛과 소금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아실 것입니다. 모든 생물은 빛을 향하도록 질서 지어져 있고 모든 음식은 소금이 들어가야 제 맛이 나게 마련입니다. 문제는 인간의 내면도 그리스도의 빛으로 빛나야 합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하시는 경고 말씀 같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겉이 번지르르한 것을 좋아합니다. 빛좋은 개살구라고 보기 좋은 것은 먹기도 좋다고 합니다. 자동차만 해도 껍데기는 삐까뻔쩍하게 열심히도 닦아댑니다. 우리나라처럼 자동차가 깨끗한 나라도 드뭅니다. 미국에서는 일년에 한두번 세차하는 정도입니다. 그러나 운전은 개판입니다. 국회의원 배지도 겉으론 멋있어 보이나 실제 속으로는 온갖 불의, 부정으로 똘똘 뭉쳐져 있습니다. 얼굴이 통통하고 배가 산같이 나온 사람들은 보기에 멋져 보입니다. 그러나 한번 쓰러지면 암이네 고혈압이네 하고 사경을 헤맵니다.
올림픽 시작 전에 외국 나갔었는데 외국 체류하는 동안 한국이 무척이나 달라졌다는 소식을 매일 들었습니다. 몇년 후 설레이는 가슴으로 귀국해 보니 눈에 띄는 곳만 달라졌고 구석진 곳은 그대로입니다. 공항에 내리자 마자 들이마신 오염된 공기 때문에 골치가 아팠습니다. 이처럼 참빛을 알지 못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돈 좀 벌었다고 돈 쓰는 것이 참빛이려니 흥청망청했다가 패가망신만 당했습니다. 이제야 조금씩 정신이 드는 모양입니다. 참빛은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내면을 그리스도의 참빛으로 충만하게 채워야 할 것입니다. 달과 별은 해를 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해라면 우리는 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빛을 여러 사람들에게 반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그리스도의 반사경 노릇을 잘 했는지 다시 한번 반성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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