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나눔의 공동체인 초대교회 공동체 모습이 상실돼가고 있는 교회, 가난한 노동자들이 마음 놓고 찾아올 수 없는 것이 오늘날 한국 천주교회의 현실일 것이다. 예수와 제자들이 노동자였듯이 가난한 노동자들이 하느님의 창조물로서의 모습을 찾아가기 위해 교회의 노동자에 대한 사목적 배려와 노동자들이 교회에 바라는 요망들을 살펴보고 작은 사람들이 대접받는 사랑의 공동체로서 앞으로의 전망을 살펴보고자 한다. (상)에서는 노동자가 없는 교회의 현 주소를 개괄적으로 살펴보고, (하)에서는 가난한 노동자들이 마음 놓고 찾을 수 있는 교회공동체를 위해 그리스도인들의 역할과 전망을 엮는다.
가난한 노동자들은 왜 교회에 나오길 꺼려하는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하여」라고 외쳐온 교회는 과연 이들을 얼마나 진정으로 받아 주었는가? 어쩌면 교회는 자기반성 없이 거대한 교회, 가진 자의 교회로만 줄달음 쳐온 것은 아닌가? 하는 물음에 대놓고 반박할 수 없는 것이 우리 교회의 입장일 것이다. 오랫동안 노동자들과 함께 사목해온 황상근 신부(인천 부평2동 주임)는 『노동자들이 교회에 나오기 싫어하는 것은 물질적으로 비대해져 가는 교회의 실상이 자신들의 삶과 연결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하면서 『좋은 말은 많이 하지만 점점 그 말의 뜻에서 멀어져가는 교회는 이제부터라도 권위를 버리고 스스로 낮은 곳으로 내려가야 한다』며 교회의 앞날을 걱정한다. 우리나라 인구의 50%가 넘는 사람들이 노동에 종사하고 있고 가톨릭 신자 가운데에서도 노동자의 수는 적지 않다. 때문에 나름대로의 삶의 양식과 문화가 있으며 가난하기에 나눌 수 있는 이웃과 같은 공동체가 이들 노동자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동안 외적성장에 치중해 왔던 한국 천주교회는 이제 『가난한 이들의 공동체를 위해 가장 밑자리, 끝자리로 내려와야 하는 것이 오늘날 시대가 요청하고 있는 교회의 모습』이라고 노동문제에 관계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노동자에게 관심을 갖고 있는 교회에는 냉담자도 줄뿐 아니라 그 사회에서 성직자에 대한 인식도 좋았다는 것이 서구 그리스도교 국가들의 지난 역사에 의해 증명되어 왔다. 한국교회 역시 70년대 이후 사회정의, 특히 노동문제에 관심을 표명하면서 또 다른 차원에서 교회의 활력소를 찾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한국교회가 과연 질적으로 성숙된 교회인가? 과연 사랑과 나눔의 공동체로 성장했는가? 가난하고 노동자들이 모여드는 교회인가? 라는 질문에 자신있게 대답할 수 없다는 지적이 대두되고 있다.
거대해진 교회, 중산층화 되어가는 교회에서 노동자들이 성당에 갈수 없는 주된 이유를 『시간대가 맞지않는 것보다는 노동자를 인격으로 보지 않는 교회 전체의 분위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경기도 시흥시 한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신다자씨는 『말로는 가난한 노동자들을 위해 교회가 존재해야 한다는 것뿐이지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며 아쉬워했다.
노동자이면서도 노동자로서 드러내는 것을 터부시하는 이들의 모습을 단지 이들만의 탓이라고 말하기는 무리일 것이다.
『어쩌다 미사에 나가면 왠지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듯한 분위기에 주눅이 들곤한다』고 말하는 한 노동자는 『성당에 나가는 것보다 우리끼리 놀러 다니는 것이 훨씬 편하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가톨릭 노동사목 전국협의회 사무국장 정인숙(아녜스)씨는 『앞으로도 더욱 노동자들에 대한 사목적 배려가 각 교구별로 이루어 져야겠지만 무엇보다도 노동을 천시하는 사회풍토를 고쳐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노동자가 밀집된 지역에서 노동자 교리반, 노동자 부부의 ME운동 등 소공동체 단위로 교회가 이들과 함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아직도 성직자 중심의 한국교회에서 노동자들에게 열려있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성직자를 지망하는 신학생서부터 이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고있는 가운데 황상근 신부는 『노동이 소중한 것을 알려면 직접 노동을 해보는 것이 가장 빠르다』고 전제한 후 『성직자들이 노동자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갖기 위해서는 신학교에서부터 제도적으로 노동에 대해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하며 노동자들과 인간적인 만남을 위해 끈기 있게 다가가야 할 것』이라고 토로했다.
노동자 한사람 한사람이 하느님의 창조물로서 떳떳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가난한 목수의 아들인 예수를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이들에게 따뜻한 가슴을 열고 다가가야 할 것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이다.
노동은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교회는 가르친다. 고로 노동하는 인간은 가장 신성하고 거룩한 하느님의 피조물이다. 한국 천주교회가 작고 보잘것없는 이들, 노동자들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이들을 감싸 안을 때 오히려 교회는 노동자들에 의해서 복음화 될 것이라는 것이 사목자들의 한결같은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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