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종교성은 내면, 즉마음에 근거를 두어야지 외부에만 치중하고 내면을 등한시면 종교는 사람에게 위안이나 구원을 가져다 주기는 커녕 오히려 사람들에게 큰 짐이 된다.
마음의 회개를 부르짖으며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 주는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는 예수에게는 외부생활을 지나치게 규제하는 것을 하느님을 공경하는 종교행사로 생각하는 엄격한 율법주의자들과는 빙탄불상용(氷炭不相容)의 관계를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종류의 사람들은 예수 당시에는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었다. 이들은 종교계의 절대적인 지배계급이었고 신정주의였던 그 당시에는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고 있었다. 이들에게 도 마음 한 구석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옛부터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진 예언자들의 예언 말씀이었다.
예언자들은 언제고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가 나타나리라는 예언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메시아일지도 모르는 인물이 나타나 자기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민중을 몰고 가는 것이었다. 그들은 사사건건 예수의 뒷조사를 하였고 기회있을 때마다 논쟁을 벌였다.
오늘의 이야기는 역시 예수께 대한 종교적 의무이행에 관한 공격으로 시작된다. 예수의 말씀을 듣고 바라시아파 사람 한 사람이 예수를 자기 집 식사에 초대하였다. 이 식사는 유대아이들의 하루의 첫 식사인 늦은 아침 또는 이른 정심을 말한다.
상류층 유대아인들은 보통주간 동안에는 하루 두끼의 식사를 하였는데 첫번째 식사는 늦은 오전중에 가볍게 하고 둘째번은 늦은 오후에 하는 저녁식사로서 이것이 주식이었다. 안식일에는 세끼를 먹었고 회당의 예배가 끝난후의 식사를 주식으로 하였다.
오늘 식사에 예수를 초청한 바리사아파 사람은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그는 그저 예수의 말씀을 듣고 감탄한 나머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시고 싶었던 것이다.
예수께서 바리사이파 사람의 식사초대를 받은 적이 또 한번 있었다. 그때에는 유명한 죄녀를 용서해 주고 회개시키는 일이 있었다. (루가 7, 36: 대목79).
이번에는 바리사아파들과 율법학자들의 위선적인 종교심을 지적하는 긴 연설이 전개된다. 시발은 예수께서 그들의 식사예절인 정결예식을 지키지 않은데서 시작된다.
그들은 식사전에 반드시 종교예식으로 손을 씻어야 했다. 식사전에 손을 씻는 것은 위생적인 견지에서 시작되었지만 그 실질적인 세수(洗手)행위가 종교화되면서 순수 형식으로 퇴폐하였다. 먼지 묻은 손을 비누로 깨끗이 씻는 것이 아니고 그저 손가락만 잠깐 물에 담갔다가 끄내면 종교적 예식을 행한것으로 간주되었다 (참조: 마르7, 2~3 : 대목117)
이 예식은 바리사이파 규정이지 구약의 율법규정은 아니었다. 예수께서는 이 예절을 하지 않았고 집주인은 이에 충격을 받았다. 이 충격이 예수의 긴 연설의 도화선이 된다.
예수의 연설은 종교적 형식주의자들에게 경고하는 6개의 앙화 내지는 저주로 되어 있는데 그 집주인에게 이르는 말씀처럼 되어 있지만 그것은 기화일뿐 외형에 치우치는 모든 사람을 향한 말씀이다.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의 자만심, 욕심, 그리고 위선에 대하여는 정결예식과 관련하여 이미 호된 비난을 한 적이 있고 (마르7 , 1~23: 마태15, 1~20: 대목117~19) 앞으로 그 위선에 대한 비난이 있겠지만 (마르12, 38~40: 루가20, 45~47)여기서는 형식주의자들에 대한 일반적인 앙화론이 6가지로 제시된다.
그중 3가지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나머지 3가지는 율법학자들을 겨냥한 것이다. 이6앙화론은 루가가 소개하는 것이지만 이에병행, 마태오 복음서에는 7앙화론이 전개된다. (마태23장)
이 두 앙화론은 거의 같은 내용으로 비슷한데 다만각 복음서에서 차지하는 자리가 달라서 흥미롭다. 루가 복음서에서는 복음서 전체 분량에 비하여 중간에 위치하면서 여러 가지 교훈중에 하나로 놓았고 마태오 복음서에서는 복음서 후미에 놓고있다. 그것은 두 복음서의 산상교훈의 형식과도 관계가있다.
마태오 복음서는 서술방법이 연대순을 무시하고 5개의 교훈을 복음서의 뼈대로하면서 각 교훈 전후에 일어 난 일을 대칭적으로 서술하는 방법을 썼다. 그래서 1~4장은 처음 일어난 일즉 탄생, 파난, 공헌을 기술하고 이어지는 5~7장은 첫째 교훈으로 하느님 나라의 정의가 구현되는 진복팔단이 전개된다.
이와 대칭적으로 복음서 마지막 장에는 마지막으로 일어난 일들이 기록되면서 수난, 죽음, 부활의 사건들이 기술되며(26~28장), 이 일들은 제5교훈으로 하느님 나라의 심판으로 복음반대자들에 대한 저주 내지는 불행을 논하는 7앙화론을 앞세우고 있다 (23~25장·백민관편 「현대인을 위한 신약성서」52쪽참고, 중앙신서). 이에 비해루가복음서는 산상교훈에서 4행복론을 4불행과 이어졌고 6앙화론은 여기 11장에서 따로 교훈으로 취급하고 있다. 이제 루가의 6앙화론과 마태오의 7앙화론을 비교하면 <그림1>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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