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독자 제위께서는 주일에 신자들의 미시참례율이 95% 이상을 기록하는 본당이 있다면 믿으실수 있겠는가. 아마 우리나라 교회뿐만 아니라 세계교회중에서도 그런 교회는 없을 것이라고 장담들을 할지도 모른다. 천만의 말씀이다. 미사참례를 95%, 아나 100%를 기록하고 있는 교회가 분명히 있다. 바로 베트남의 교회들이다.
7천만 인구에 7백만명의 신자, 정확히 인구대비 10%의 신자율을 보호하고 있는 베트남은 요즘음 주일미사 참례율이 100%에 육박하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우리교회의 입장에서 불때 참으로 부러운 현실이 아닐수 없다. 더구나 우리는 최근의 한 조사보고서를 통해 우리 신자들의 주일미사 참례율이 40%에도 못미친다는 사실을 접한바 있다 비교를 하자면 놀라우리만큼 차이가 나는 수치다.
그러나 이 완벽한 수치는 바로 베트남의 현실과 맞물려 없다. 사회주의라는 제도를 도입하고 있는 나라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종교가 100%의 자유를 구가하지 못하고 있다는점, 즉 「미완의 자유」가 오히려 사람들로 하여금 교회로 모여들게 하고 있다는 관점이 바로 그것이다. 베트남 사회, 베트남교회가 누리고 있는 미완의 자유가 사람들을 오히려 교회로 모아들인다는 진단은 우리에게 전혀 생소하지가 않다. 역사를 통해 더욱이 우리 교회의 역사를 통해 이 공식을 우리는 이미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베트남의 교회는 미완의 자유라는 틈속에 갇혀있는것 같았다. 「탄손얏」공항에서 십자가가 비닐속에 감추어 진채 봉인이 되던 그순간 나는 동강난 베트남의 자유를 감지할수가 있었다. 제한된 틀속 의 자유, 그것은 현재 배트남교회가 누릴수 있는 최대의 특권인것 처럼 보였다.
6월27일, 호치민교구 신학교에서 사제서품식을 통해 탄생된 37명의 새사제는 보탤것도, 뺄것도 없는 베트남교회의 현주소라 할 수가 있다. 제1편 「봉인된 십자가」편에서 이미 언급한바 대로 43명의 새 사제 후보가운데 탈락된 6명은 베트남정부의 「인정」을 받지못했다. 사제품의 최종 결정자가 정부라는 사실, 별도의 설명이 필요할 리가 없었다. 사제탄생의 현장을 목격하는 행운이 내겐 오히려 슬픔이었다.
출국시간과 맛물렸지만 사제서품식을 놓칠수 없었고 무조건 현장을 찾아간 이경재 신부님과 나는 배짱 하나로 허락을 받아냈다. 순전히 이신부님의「로만컬러」덕분이었다. 얼떨결에 받아낸 허락임을 잠시 잊은 나는 카메라를 들고 설쳤다. 발동하는 가지끼만 믿고 서품식장을 향해 셔터를 눌러대던 나는 결국 제지를 받고 말았다. 카메라 앞을 두손으로 막고선 사람의 왼팔에는 붉은색 리본이 선명하게 매달려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리를 이동하면서 겁 없이 사진을 찍어 대는 사람은 단 한사람, 「나」뿐이었다.
야외에서 거행되는 서품식도 인상적이었지만 나는 베트남에서 그렇게 많은 젊은이들이 성직자로 탄생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탄했다. 임시로 마련된 제단을 중심으로 앞자리에는 3백여명을 헤아리는 성직자들이 자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참으로 가슴 뿌듯한 장면이었다. 제대를 향해 오른편에 자리잡은 성가대는 남녀 혼성으로 베트남어 성가를 부르고 있었다.
주례주교는 노령의 구엔 반빈 주교. 호치민교구장인 구엔 주교는 병상을 털고 일어난지 불과 며칠만이라고 했다. 노란색 제의의 새 사제들과 제단아래의 선배사제들, 그리고 자리를 가득메운 신자들. 다시 열리는 베트남속의 교회, 그 자화상은 어둡고 또 밝은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정부가 성직자 탄생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각 교구 본당신부의 이동 역시 더 이상 교회의 절대권한이자 고유권이 아닌 베트남교회, 그 베트남교회가 어두운 모습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음은 너무나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 어두움의 한 편린을 나는 우연히 찾은 수녀회의 삶의 현장에서 쉽게 발견할 수가 있었다.
살뜨르수녀회 호치민관구. 8백명의 회원 가운데 1백25명의 수녀들이 있다는 호치민관구는 20명의 수녀가 유치원과 병원에서 일하고 받은 봉급 「3백불」 (수녀들의 일인당 월급 약 15불)과 1백만마리의 씨암탉이 매일같이 낳아주는 계란을 팔아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돈으로 약 24만원에 해당하는 3백불과 계란, 이들이 「살아남아 있다」는 사실이 기적처럼 느껴졌다.
관구장 요왕 수녀는 75년이후 수도회가 운영하던 학교도 병원도 현재 지원자가 넘쳐도 받을 수가 없는것이 제일 안타깝다고 토론했다.
같은 「띤띤황」거리에 위치해 있고 바로 마주보이는 곳에 자리한 가르멜수녀회 사정 역시다를바가 없었다.
가르멜수녀회 방문목적은 수녀들이 제작한 제의를 구입하기 위한 이경재 신부님의 계획에 의한 것이었다. 한 벌당 1백불 정도로 저렴한 제의를 후한 값으로 구입, 수녀회를 돕는다는 것이 이신부의 아이디어. 이 아이디어에 동참한 여러 은인들의 정성으로 가르멜수녀회는 그날 제의 30벌에 해당하는 엄청난 수입을 올릴수가 있었다.
쇄도하는 지원자를 미처 받을수가 없는 베트남 수도회의 상황은 교구라고 예외일 수는 없었다. 전국 27개 교구 가운데 신자수 74만명을 자랑하는 베트남 최대의 「손톱」교구 역시 사제직을 지망하는 젊은이들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다고 했다. 1천명의 수도자가 있고 현재 4백명의 신학생들이 사제수업을 받고 있는 손톱교구의 교구장 나엔 민 넛 주교(72세)는 정부의 인준을 받지못해 사제서품이 늦어지고 있는 「늙은 신학생」들의 시중을 받고 있었다.
베트남 주교회의 의장이기도한 니엔 주교는 바로 얼마전 보좌주교가 탄생, 짐이 훨씬 가벼워 졌다면서 앞으로는 베트남 교회의 상황이 점차 나아질것을 기대한다고 조심스러운 희망을 표명했다. (손톱교구 보좌주교 탄생으로 현재 베트남의 주교는 29명).
조용히 활기를 찾기 시작했지만 공산화 이후의 지난 17년간은 결코 간단히 지워버릴수가 없는 베트남교회의 아픔, 그 자체다. 1979년 월남 패망직후 남지나해를 표류하기 시작한 보트피플, 그 무수한 사람들 속에서 나는 한 사람의 사제를 같은 아픔속에서 기억하고 있다. 보트피플의 한 사람으로 한국의 보호를 잠시 받았던 사제, 구엔 트리 푸옹 신부는 당시 본보에 「베트남 탈출기」를 게재했었다.
「신앙따위는 불살라 버려라」. 당시 그가 남긴 탈출기의 제목에서 우리는 공산화 이후의 베트남교회 실상을 단편적으로 나마 규모에 있어 「가장 위험한 존재」로 분류됐던 베트남의 가톨릭교회는 종교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공산정권이 지능적인 탄압을 받아야 했다고 구엔신부는 자신의 탈출기에서 기록하고 있다.
성직자 추방, 교회재산 몰수, 투옥등으로 이어진 조직적인 탄압은 공산정부에 협조했던 일부 성직자, 신자들에 의해 완벽하게 진행됐으며 그것은 바로 「눈물의 교회」였다고 구엔 신부는 절규했었다.
눈물의 교회. 그 17년 간의 세월을 뛰어넘어 내가 만난 베트남교회는 아직도 그 눈물자국이 남아있었다. 봉인된 십자가가 그랬고, 성직자들의 삶이 그랬으며 수도회의 모습 역시 그랬다. 미사예물 50센트 (한국 돈으로 약4백원) 가 보편적이지만 그나마 없는것이 더욱 자연스러운 베트남 교회, 신부가 되고 싶어도 교회나 자신의 힘만으로는 어쩔수가 없는 교회, 17년 눈물의 역사가 남긴 흔적은 아직도 곳곳에 남아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눈물의 흔적뒤에 뚜렷이 각인되고 잇는 희망의 조각을 함께 보았다. 곱지않은 당국의 눈총을 뒤로하고 교회를 버리지 않았던 성직자와 수도자, 그리고 신자들. 아직 험난할수도 있는 성직수도자의 길을 걷겠다고 줄을 서는 젊은이들. 그중에서도 주일날이면 성당이 터질만큼 구도자의 행렬이 교회를 향해 있는 모습은 감추어도 감추어지지않는 베트남교회의 분명한 희망처럼 보였다.
그 희망을 지켜볼 수 있었음은 내겐 커다란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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