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가 복음서에서는 바리사이파 사람들과의 논쟁에서 예수께서는 6가지 앙화내지는 저주를 선언하셨다. 그 중 3가지는 바리사이파를 겨냥한 것이었고 나머지 3가지는 율법학자들을 겨냥한 것이었다.
이 6가지 앙화에 앞서 루가는 6가지 앙화가 그들이 겉모양만 번지르르하게 꾸미며 내부는 등한시하는 어리석음에 기안한다고 원칙을 제시한다.
접시의 겉만 닦고 안은 닦지 않는 어리석음을 지적한 것인데 이 내용은 마태오 복음서에서는 7가지 앙화중 제5앙화로 제시되어 있다 (마태23,25).
이 차이는 루가와 마태오의 편집상의 견해 차이에서 온 것이다. 이 논쟁점에서 우리에게 이상해게 들리는 것은 잔이나 접시의 겉만 닦고 그 속은 닦지 않는다라고 공박한 점이다. 그릇을 닦는 사람이 안은 닦지 않고 겉만 닦을수 있겠느냐는 점이다. 더군다나 구약의 율법은 그릇에 닿은 부정물로 그 안까지 부정하게 되었으니 그 안까지 정결방법을 취하도록 규정되어있다(레위 11,33:15,12).
예수의 말씀은 사람의 속의 더러움을 무시하고 겉만 깨끗이 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어리석음이 마치 그릇을 씻으면서 겉만 씻는 어리석음에 비유된다는 뜻은로 알아들어야 할 것이다.
그들의 입술에도 독사의 독이 흐르고 그들의 입은 저주와 독설로 가득 차 있으니 (로마3, 13) 그 속은 강도질과 사악이 가득 차있다. 이 더러운 것을 척결해야 진정 사람이 깨끗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속을 깨끗이 하는 방법은 탐욕, 강도질, 사악 따위처럼 남을 해치는 속더러움 대신 남을 도와주는 사랑의 자선이 첩경이 된다.
「그릇에 담긴 것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라. 그러면 모든 것이 (마태오는 겉도 속도 다) 깨끗해질 것이다」라는 말씀을 이런 뜻으로 해석된다.
그릇을 만든 사람이 겉과 안을 다 만들었듯이 하느님은 인간의 겉과 안을다 만들었으니 안팎이 다깨끗해야 된다는 뜻이 되겠는데 이 문장은 뜻도 애매하고 논증으로는 불필요하다고 보아 마태오에서는 (23장)이 대목이 빠졌다.
내면을 무시하고 외면에 치중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어리석음은 그들의 주장과 생활에서 3가지 앙화를 불러들였고 율법학자들 역시 외부적인 치장으로 교만하게 되어 3가지 앙화를 자초하고 있다.
첫째 앙화 :11조 율법은 과도하게 지키면서 하느님의 정의와 사랑을 등한히 하는 자 불행이다. 11조 율법을 지키는 것이 하느님을 공경하는 구체적인 율법으로 규정되었지만 그 근본정신은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다.
구약의 율법은 농산물이나 과일의 소출중 10분의1을 바치도록 규정하였다 (신명14, 22~29: 26, 12~15: 레위27, 30~33: 말라3, 8~10). 이 율법을 라삐들이 세부 항목으 규정하였다.
복음서에서는 세가지 11조목록이 언급되는데 박하와 운향 (마태오는 회향)과 채소 (마태오는 근채)가 그 대사이다. 그런데 이세 가지가 11조의 대상이 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니까 그들은 규정에도 없는 항목을 만들어서 11조조세를 자기들도 내고 다른 사람에게는 부과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것은 하느님 공경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 아닌가.
박하는 팔레스키나에서 약용 또는 양념으로 쓰는 푸성귀로서 강가나 습지에 자생하는 야생초도 있지만 가정의 마당에서 재배하기도한다. 구약에서도 과월절양을 먹을 때 섞어 먹는 쓴나물(출애12, 8: 민수9, 11)에 속하는데 그 줄기와 잎에서 향기로운 즙이 나온다.
운향(蕓香) 이라고 번역한 이 식물은 루타 (ruta)라는 학명을 가진 푸성귀로서 키는 약30cm가량되고 잎은 회색에 가까운 초록이며 깃 모양으로 째졌다. 초여름에 레몬빛의 꽃이 핀다. 풀 전체에서 강한 향기가 있으며 역시 약용 또는 양념으로 쓰인다. 구약성서에는 이 풀에 대한 언급이 없다.
이처럼 하찮은 채소에 관해서까지 11조 규제를 엄격히 주장하면 정의와 사랑에 대해서 무관심한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예수께서는 엄중히 경고하고 계신다.
둘째 앙화는 모임에서 높은 자리를 탐하고 인사받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선언되었다.
이 대목은 루가 복음서 11장43절과 마태오 복음서23, 1~7, 그리고 마르꼬 복음서 12, 38~39절이 병행을 이루고 있는데 마르꼬 복음서는 율법학자들을 겨냥하였고 마태오 복음서는 앙화의 선언이 없다.
하여튼 내용이 문제이겠는데 위선자의 대명사인 바리사이파 사람의 특징중의 하나가 허영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높은 자리, 지위, 명예, 인사받음등등은 현대인들의 생활목표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좀 곤혹스러운 교훈이 된다.
정당한 노력과 성의껏 살면서 높은 자리, 지위, 명예를 추구하는 것이야 나무랄데가 없겠고 오히려 잘살려는 자극제가 되겠지만 하느님 앞에서는 이 좋은 것들은 덫으로 주어지는 것이지 생활의 최후목표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교훈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
아마도 이 복음서를 쓸 때의 교회안에서 지위와 명예문제를 놓고 불미스러운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며, 예수님의 교훈에서는 특히 교회의 지도자들이 높은자리, 명예, 인사받음에 과도한 신경을 쓰는것을경고 했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첫째가 되고싶으면 모든사람들의 종이되어라」 (마르10, 44)이것이 주님의 부탁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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