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성년자 사형집행
기해박해때 우의정 이지연(李止淵)은 천주교 박멸정책의 하나로 어린아이에게도 어른 다음가는 형을 과하고 공우들을 귀양보내면 유배지에서 천주교를 유포시킬 우려가 있으니 전부 사형시켜 전멸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3세의 어린 소년 유대철 베드로에게 정강이를 6백대, 둔부를 45대나 때리고 낙형을 하였으며 결국은 교수형으로 순교하였다. 12세의 어린 소녀 이아나다시아는 모진 고문으로 옥사하였다.
심문을 할때 무릎 아래를 치되 정강이는 때리지 못하게 되어있으며 1회에 30대 이상은 때리지 못하게 되어 있다. 관리로써 남형하면 장 1백대에도(徒 강제노동) 3년형이고, 치사케한 자는 장 1백대에 영구히 서용하지 못하게 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남형(濫刑)이 천주교 교우들에 대하여는 공공연히 행하여졌다.
■ 교우 조리 돌림
이조시대 마을에서 윤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으며 그 마을에서 자치적으로 벌을 주던 풍속이 있었다.
(1) 부모에게 불효하는 자 (2)처자를 학대하는 자 (3)남의 유부녀를 회롱하거나 싸움을 자주하는 자 (4)도박이나 사기로 남의 재산에 피해를 주는 자 (5)음주를 하고 행패를 부리거나 마을행사에 잘 나오지않는자 (6)남의 묘를 손상시킨 자 (7)우마를 방사(放飼)하여 남의 곡식에 손해를 입힌 자
위에 해당 되는 죄를 지은 사람은 마을의 지도자들이 불러다 훈계를 한 다음 멍석에다 말아놓고 일정 기간동안 음식을 주지않거나 매를 때린 다음 돌려보냈다. 그렇지 않으면 조리돌림이라 하여 죄인의 등에 북을 지게하고 종이곳갈을 씌우고 곳갈에 죄명을 써서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이나 마을에 조리돌렸다. 여러사람에게 경계를 주기 위하여 관에서도 조리 돌림을 시키는 수가 있었다.
김토마스는 사형 언도를 받았는데 사형 집행을 하기 3일 전애 그의 얼굴에 회칠을 칠하게하고 등에 북을 짊어지게하고 장 마당을 세번 조리돌렸다.
1799년에 순교한 이보현 프란치스꼬도 장에서 조리돌렸다. 이도기 바오로는 얼굴에 회칠을 하고 등에 큰 북을 짊어지게 하고 손에는 십자고상을 들게하고 「임금을 섬기지 않고 부모를 섬기지 않는 천주교 반역죄인」이라고 쓴 쪽지를 붙이고 조리를 돌렸다.
■ 교우들의 재산 탈취
박해는 중앙정부에서 일으킨 박해가 있고 밀고자에 의하여 일어난 박해가 있다. 올해박해와 정해박해는 밀고자에 의하여 일어난 박해이다.
1814년 전국적으로 6,7월에 비가 많이 내렸었다. 그 피해는 경상도지방이 제일심하여 큰 흉년이 들었다. 산에서 화전을 일구던 교우들은 뜻밖에 풍년이 들어 식생활에 걱정을 하지않게 되었다.
밀고자가 관에 고발을 하자 굶주리고 헐벗었던 관헌들리 교우들을 마구 검거해 드리고 교우들의 식량과 재산을 탈취하였다.
정해박해때 포악하고 탐욕스런 포졸들은 교우들이 가진것을 모조를 빼앗았다. 이때 검거된 사람이 많아 분산 수용하였는데 심지어는 개인 집에까지 가두었다.
병오박해때도 외교인들이 교우촌까지 찾아와 묵으며 얻어먹고 밀고 하겠다고 협박하며 무자비 하게 착취하였다. 포졸들도 교우촌에 와서 집ㆍ옷ㆍ가구ㆍ식량을 닥치는대로 빼앗아 가고 조금이라도 반항을 하는 사람은 옥으로 끌고 갔다 익은 곡식을 밭에 세워 둔채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포도대장이 정부에 공로를 세우고 잘 보이기 위하여 교우들을 마구 검거해 드리기도 하였으며 포졸들이 정부로부터 받는 보수가 적으므로 지방의 하급관리와 결탁하여 공우들의 재산을 탈취하고 심지어는 방화까지 하는 일도 불소하였다.
철종때 경신(庚申)박해를 하나 예로 들어 보겠다. 달레의 교회사에 「포도대장은 왕과 신하ㆍ양반ㆍ서민 할것없이 온 나라가 천주교인들에 대한 그의 가혹한 조치를 열광적으로 환영할 줄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는 오판한 것이었으니 그가 교우들을 심문에 회부하자는 말을 했을 때 그 일을 맡으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 밑에서 호조판서까지 지냈던 김병기(金炳冀)는 조정 회의에서 천주교 교인들을 박해하는 것은 천주교 교인들을 박해하는 것은 좋지않다고 말하면서 「정조 임금도 천주교인을 괴롭혀 일찍 승하하셨고 순조 임금도 천주교를 박해하여 외동 아들인 왕세자를 잃고 임금 자신도 일찍 승하하셨으며 헌종 임금도 박해를 허락하시어 일찍 승하하셨다」는 말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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