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명의 동창신부는 성탄절 첫새벽에 일어나서 미사부터 함께 봉헌한 다음 방향을 동북으로 잡고 로마를 떠나 신선한 새벽 고속도롤를 신나게 달렸습니다. 산 마리노공화국은 해변 치타산(해발7백m)꼭대기에 세워진 작은도시국가로서 면적은 61평방킬로미터이고 인구는 약2만정도라고 했습니다.
이 나라는 약간의 농사도 있지만 주로 관광수입에 의존하고 특히 우표수입이 대단하다고 했습니다. 모든 생활권은 이태리 그대로이며 언어도 이태리어를 사용하며 화폐도 이태리 리라가 그대로 통용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기념사진을 한번 찍고 두번째 찍을 참인데 갑자기 안개가 끼기 시작하더니 도저히 사진도 찍을 수 없을 만큼 농무가 깔렸습니다. 나중에는 서로 얼굴을 식별하기 어려울 만큼 진한 안개였습니다.
우리는 관광을 포기하고 산위의 이 도시로부터 탈출해야만 했습니다. 한치 코앞이 안 보이는 비탈길을 내려오는 승용차는 겨우 바퀴만 굴리는데 운전은 앞을 보고 하는 것이 아니라 길 옆을 보면서 기어 내려 왔습니다. 다른 차들도 함께 내려 왔지만 서로 앞에서 가지 않으려고 옆으로 비켜서는 기현상이 생겼습니다. 자동차 앞뒤에는 쌍 라이트와 안개등을 켰지만 무용지물이었습니다.
우리 자동차에는 네 사람이 타고 있었지만 마치 혼자인듯 오랫동안 침묵 속에 아무도 아무말도 꺼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탄생하는날 천상에 예수님 빈 자리를 우리가 메꾸러 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날 정도였습니다.
가시거리가「0」인 상태에서 전진 하기란 너무 어렵고 위험했습니다. 인생여정에 있어 가시거리는 얼마나 되는가 생각해 봤습니다. 아마도 자신의 장래를 알고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안해 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오히려 모두들 나름대로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향해 힘껏 달리고 있습니다. 그 계획에 따라 사는 모양도 달라지는것 같습니다. 남의 땅을 사기쳐서 팔아먹으려는 계획을 세우고 추진하던 사람이 쇠고랑을 찼는데 그 주변에서 놀아난 사람들이 줄줄이 묶여 들어가도 아직도 깨끗하지 못한 부분이 있는듯이 말들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어떤 사건이 생기면 어느 선에서 종결하기로 방침을 정해 놓고 수사를 사작한다」고도 말합니다. 시작한다」고도 말합니다. 사람이 모든 것을 이렇게 계획을 세워서 해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계획을 세우지 말아야하는 부분도 있을 법 합니다.
이런 거창한 일이 아니더라도 서민들의 내 집 마련한가지 계획을 보더라도 그 방법은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부모님을 설득해서 공짜로 어떻게 해보려는 사람, 맞벌이를 몇 해 동안해서 어떻게 저축하고 집 장만을 하려는 사람, 어떤 땅을 처분해서, 주택 복권을 매 회 삼으로써 또는 부당한 방법이 지만 딱 한번만, 등등. 그리고 이 계획들이 내뜻대로 진행되고 이루어지리란 보장은 없습니다.
사람이 세우는 모든 계획이 다 그렇습니다. 어처구니 없게도 한시간 후에 죽을 사람이 자신이 죽을지도 모르고 신나게 자동차를 달립니다. 내일이면 익사할 사람도 한달 전부터 세운바캉스 계획을 실천에 옮길 수 있게 되었다고 오늘 밤 잠을 설쳐가며 제반 준비사항을 점검 합니다.
정말 하루 앞을 못 보고 한시간 앞을 내다 보지 못보고 한시간 앞을 내다 보지 못하는 인간인지라 과연 인생여정의 가시거리는 역시「0」상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면 나 자신은 어떻게 하루를 또는 한 시간을 조심스럽게 살아야 할지를 생각할수 밖에 없습니다.
나의 앞 길은 안개낀 비탈길을 내려오는 것 보다 더 시야가 보이지 않는 길을 가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순간을 조심하지 않으면 어떤 불상사도 생길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이 생각은 순전히 생각일뿐, 사는 모습은 마치 내 계획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고 또 그것이 당연한듯 하며, 만일 사소한 것이라도 내뜻대로 되지 않으면 그렇게 속상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내 계획이란 것은 너무나 내 중심의 이기적 발상들입니다. 네게있어 제일 중요한 계획은 나를 위한 시간을 내는 것입니다. 어쪄면 일을 열심히 하는 것도 빨리 해놓고 속 편하게 쉬기위한 것이며, 여렵사리 나를 위해 마련한 시간을 생각대로 즐기지 못 했을때 제일속이 상합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얼마나 인간의 계획들이 헛된 것인지 말해 줍니다. 이제 나를 위해 재산을 넉넉하게 장만 했으니 몇 년 동안은「실컷 먹고 마시며 즐기자!」. 그러나 바로「그날 밤에 자기의 영혼이 세상을 떠날것」을 알지 못하는 불쌍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가시거리「0」의 인생길을 매 순간 조심스럽게 내 디디며 내 중심의 계획으로부터 해방되고자 노력을 계속하는 것이 크리스찬의 영성인가 합니다.
아무튼 그 때 못 돌아 본산 마리노를 다시 한번 방문하고 싶은데, 슬슬 유럽 여행 계획이나 세워볼까 합니다. 하지만, 「어디 눈먼 돈이 좀 안 생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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