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모처럼 도시에 차를 가지고 가면 여러가지로 불안합니다. 무엇보다 길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번 가 본 길이 있으면 반드시 그 길로만 다니려 합니다. 새로 생긴 좋은 길이나 편한 길을 가르쳐주고 설명해 줘도 막상 길을 나서면 다소 불편하더라도 한번 가 본 길을 또 선택하게 됩니다.
처음 가는 길을 항상 불안하다고 말합니다. 내가 아는 어떤분도 항상 다니던 길로만 다니는데「왜 그렇게 복기를 고집하느냐」고 물었더니「자기가 맨 처음 갈 때 이 길을 갔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내가 이보다 편한 길을 잘 아니까 나하고 한번 같이 가보자」고 했더니「그렇게하자」고 대답은 했지만 그분의 표정에서 어떤 갈등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마치 천주교가 좋다고는 말하는 사람도 막상 성당에 가자고 하면 난처해 하고 당혹스러워 하듯이…
사람이 어떤 습관에 길들여져있으면 그것이 제일 편합니다. 때로는 나쁜 습관인 줄 알면서도 쉽게 헤어나지 못합니다. 이런 습관으로부터 헤어나기 위해서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어떤 때는 그런 습관을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후의 상황에 대하여 불안한 마음이 있기도 하므로 오히려 지금까지 익숙해 있는 생활습관에 머물러 있을 때 마음이 안정되어 있음을 발견합니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들만 봐도 습관이 다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유난히 경적을 열심히 울리며 다니는 사람, 다른 차가 앞서 추월해가는 것을 참지 못하는 사람, 상체를 앞으로 바짝 구부린 사람 또는 뒤로 제친채 운전하는 사람, 계속 무슨 말을 중얼거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습관들을 본인도 고치고 싶지만 막상 운전대를 잡으면 쉽게 고쳐지지 않고 또 처음에는 신경쓰며 운전하다가 어느새 평소 습관대로 하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어떤 일에 익숙해 있으면 그것이 제일 편안하며 그렇지 않을 땐 불안합니다.
하루는 내가 고행성사를 주고있을 때 어떤 아주머니가 들어왔는데 남편과 아이들이 교대로 병치레를 해서「어디 가서 물어보고 왔다」고 말했습니다. 내가「물어보니 잘 가르쳐줍디까?」했더니「세상에 누가 시원하게 말해 줄 수가 있겠습니까?」그랬습니다.
내가「그런데 뭣하러 물어봤습니까?」했더니「그 사람들도 모르는 줄은 알지만, 하도 답답해서 전에 하던대로 물어보러 갔더랬습니다」. 내가「앞으로 또 가실거예요?」그랬더니「장담은 못 하지만 지금 생각에 다시는 헛수고 안할랍니다」그랬습니다.
그 부인이 점장이한테 간것은 신자가 되기 전에 자주 그런데 가서 물어보곤 했기 때문에 신자가 된 후에도 무슨 답답한 일이 생기면 물어보러 가고픈 충동이 생기고, 또 물어봤자 별 수 없는 생각에서 갔다가 역시나 하면서 돌아왔습니다.
말하자면 물어봐도 별 뾰쪽한 수가 없음을 돈들여 확인하고 돌아 오는 셈입니다. 그래도 또 새로운 무슨 일이 생기면 물어보러 가지 않고는 불안한 마음이 됩니다. 그래서 소위「철학」하는 사람들도 다 밥 먹고 살겠지요.
지금까지 하던 것 처럼 그냥 다 하고 살면 제일 편한데 이것을 바꾸어야 하는 것은 우선 자기 자신이 갈등을 극복하고 선택을 해야하며 지금까지 함께 행동하던 사람들과는 행동을 함께 할 수 없으므로 소외되던지 그들을 설득시켜야 하므로 큰 부담이 되며 또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엊그제 주먹세계에 대한 비디오를 봤습니다. 부두목급인 한 사나이가 여자를 사랑하게 되자 그 단체에서 이탈하여 정상인으로 살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이 세계에서「손을 씻는 다는것」은 배신 행위로 간주됩니다. 이는 분명히 그 단체를 분열 시키고 와해시키는 배반 행위입니다.
신의를 지키지않고 단체를 배신한 그는 결국 사랑하는 여자와의 약속을 지키며 옛날 부하의 칼에 맞아 죽었습니다. 여자의 사랑을 몰랐더라면 오히려 평화롭고 단체의 분열도 죽음도 없었을 것을…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내가 이 세상을 평화롭게 하려고 온 줄로 아느냐? 아니다. 사실은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고 하신 말씀의 뜻을 알아 들을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악의 세력에 속해있던 인류를 구원하는 과정에서 치루어야할 분열과 긴장을 말합니다.
참으로 역사 안에서 그리스도는 너무나 많은 분열과 긴장을 조장해 왔습니다. 로마 3백년 박해를 필두로 해서 우리나라도 1백년동안 국사가 흔들릴만큼 나라 전체가 시끄럽고 그리고 수많은 가문이 쪼개지고 가정이 파탄을 일으키고 또한 수많은 생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가 세상에 왔기 때문에 생긴 사건들이었습니다.
이러한 분열은 오늘 이땅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때문에 인권을 위해서 투쟁도 하고 인간의 고귀한 생명 특히 연약한 태아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세상을 시끄럽게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악의 세력과 공조하는 세상살이에 익숙한 나, 이러한 습관과 타성에 젖은 나 자신의 생활을 그리스도 때문에 하나씩 바꾸어 나가야겠습니다. 이것이 지속적인 회개입니다.
제발 세상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색대로 살도록 나를 그냥 좀 내버려 두면 편안하고 좋겠는데, 나의 생활속에 거푸 새로 오시는 그리스도 때문에 마음에는 갈등이 생기고 몸은 고달픔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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