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어떤 점잖은 바리사이파 사람의 초청을 받아 그집에서 이루어진 일은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에 대한 한탄스러운 불행을 알려 주었다.
이제 그 집을 나왔다는 루가의 보도는 문맥상 그럴듯 하지만 원문대로는「그곳을 떠나」로 되어 있어 다음 전개되는 일이 반드시 앙화선언과 연결된다고 보지 않아도 된다.
하여간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몰인정한 사람들이며 외부적인 허영만을 추구한다는 힐책을 했고 율법학자들에게는 백성들에게 불필요한 규정으로 양심에 굴레를 씌울뿐 아니라 자기들만 옳다고 주장하며 진리의 문을 닫아 버렸다고 힐책했다.
그러니 이어지는 일들은 바리사이파 사람의 집에서 일어난 일과 연결시켜도 아무 무리가 없다. 하여튼 루가는 이제부터 예수의 적대자들이 예수께 대한 적개심이 폭발직전에 와 있다는것을 강조하려고 한다.
그들은 예수께 대하여 몹시 화가 났다. 그들은 말로 사람을 때려 잡는 기술이 출중한 간교한 자들이다. 그래서 이것저것 상대자로 하여금 말의 실수를 하도록 유도한다.
그들이 예수를 잡아 죽일 음모를 시작한 것은 이미 전에 안식일 논쟁때 시작되었다 (마르 3. 6: 마태12. 14: 루가6. 11). 그리고 이 음모는 앞으로 더 강하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루가19. 47: 마르 11. 18).
예수는 예수대로 그들에 대한 실망스러운 판단이 굳어진다. 그들은 시대의 징조를 보지 못하며(루가12. 56) 열매를 따보려고 3년동안이나 키웠지만 열매를 맺지 못하는 구제불능의 무화과나무와 같은 족속들이다 (루가13. 7). 그들에 대한 예수의 직언적인 고발은 일반 백성들도 느끼고 있던 공감대였지만 그들이 무서워서 할 말을 못하고 있었다 (요한 7.48~49: 9. 24~34).
예수의 말씀을 듣고있던 사람들 중에는 절대 권력자들을 드러내 놓고 비판하는 이 젊은 나자렛 시골 뜨기가 어떻게 될 것인가 호기심에 찬 사람도 있었고 자기들의 할 말을 서슴없이 말하는 이 예언자와 동감하여 마음속에 속시원한 느낌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하여튼 군중은 예수를 에워싸서 밀치락 달치락 저희끼리 짓밟힐 정도였다.
적대자들에 대한 고발발언이 어조가 짙어짐에 따라 군중의 수가 많아진다는 것에 (루가11. 29)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구원은 진실을 따르기 때문이다.
무수히 많은 군중들에 예수를 에워 쌌지만 루가복음서는『우선 제자들을 향하여 말씀하셨다』고 하였다. 그것은 일반 군중들도 필요하겠지만 다음 말씀은 우선 제자들의 정신무장에 절대 필요한 말씀이었기 때문이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누룩을 조심하고 그들의 위선을 조심해야 한다』.
이 훈계는 전에 제자들이 먹을 것을 걱정할 때 예수께서 너희가 걱정할 것은 먹을 것이 아니라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누룩이다라고 말씀하신 일이 있다 (대목124참조: 마태 16. 6).
신약성서에는 누룩이라는 말이 여러번 나온다 (루가13. 21: 마태13. 33: 16. 12: Ⅰ고린5. 6: 갈라5. 9). 모두 파급효과를 가진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제자들이 조심해야 할 누룩은 위선이다. 그들은 경건과 괴로움을 다른 사람 앞에서 과시하지만 겉과 안이 다르게 속마음은 불경건하고 불의에 차 있다. 더 한탄스러운 일은 겉으로 의로운체하면서 이것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 하는 일이다 (위선자에 대하여 대목 70참조).
제자들은 이런 누룩에 오염되어서는 안된다. 위선자는 자기 자신의 본색을 감추어야 한다. 그래서 요주의 사항이 된다.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본색이 드러나는 것이다.
겉으로, 입으로 성서의 율법과 거룩한 성조들을 들 먹이는 바리사이파 시작이었다.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본색이 폭로되는 일이었다. 나쁜 것이든 좋은 것이든 언젠가는 드러나게 마련이다.
세상에 있는 것치고 백일하에 나타나지 않을 것은 없다. 나쁜 것을 감추고 겉으로 좋게 드러내는 위선은 결국에 가서는 모두 있는 그대로 드러나서 효과가 무디게 될 것이다. 그러니 제자들은 이 위선적 누룩을 조심해야겠지만 두려워할 것은 없다. 감추어졌던 것도 드러나고 비밀도 알려지고 말겠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사실대로가 가장 떳떳하다. 너희들 (제자들) 은 내가 말하는 것을 마음속에 받아 들이고 세상 두려움때문에 비밀리에 간직하고 싶겠지만 그래서는 안된다. 나쁜 비밀도 드러나거든 하물며 사실인 진리가 감추어져 있어야 되겠는가. 너희가 지금 어두움속에 듣는 것, 귀에 대고 이야기한 것을 당당하게 밝은데서 큰 소리로 외치고 지붕 위에서 세상에 대고 외쳐 울려 퍼지게 해야 된다. 이렇게 되는데는 희생이 뒤따른다.
스승이신 예수께서는 장차 진리선포에 따르는 박해를 내다 보신다. 예수께서 당할 백해와 죽음이 하느님의 뜻이라면 그 제자들도 같은 일을 하면서 박해를 감수해야 한다. 이런뜻에서『제자가 스승만큼 되고 종이 집주인 만큼 되면 그것으로 넉넉하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사람들이 집주인을 보고 베엘제불이라고 악담을 했으니 그 집식구들인들 가만이 둘것같은가.
<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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