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하는 사람이 정상에 올라 느끼는 느낌은 성취감이며 만족감 입니다. 또 정상에는 올라오는 동안 흘린 땀을 식혀주고 말려주는 바람이 있고, 답답하던 속을 후련하게 뚫어주는 확 트인 시야가 있습니다.
그리고 발 아래 세상을 내려다 보는 기분은 너무 좋습니다. 게딱지같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마을에는 개미같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음을 보면서 나는 그들과는 다른 차원의 어떤 존재인듯 착각하고 그야말로 눈아래로 보입니다.
단지 몇시간 전에는 나도 그들 중의 하나였다는 사실을 잊은 듯 합니다. 하긴 먼저 올라왔다는 것 만으로도 나중에 올라오고있는 사람들이 눈 아래로 보이니 더 할말이 없습니다.
나도 현대인답게 한가지 병이 있는데 그 병은 무엇이나 비교하여 우열을 가리는 병입니다. 우선 내가 가진 것이나 누리는 것을 다른 사람의 것과 비교 합니다.
남의 집을 방문하면 그집 오디오나 TVF를 내가 가진 것과 비교해 봅니다. 해수욕장에서는 다른 사람의 사진기와 내 것을 비교해 봅니다. 사장님의 차를 얻어타고 가다가도 옆에서 지나치는 차들과 내가 탄 차를 비교해 보고 내가 탄 차가 더 좋은 차면 기분이 좋습니다.
신호대기를 위해서 차가 섰을 때도 옆에 버스를 타고 있는 사람들 보다 내가 높은 사람처럼 느껴지고 비록 남의 차를 얻어 탔지만 마음이 넉넉해집니다. 새마을 열차를 타고가다 보면 앞서가던 무궁화호 열차가 내가 탄 차를 먼저 보내기 위하여 대피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내가 고급 사람이 된듯한 착각을 합니다.
또 내 능력과 다른 사람의 능력을 비교해 봅니다. 누구는 나보다 말을 잘하고 누구는 나보다 글을 잘 씁니다. 누구는 나보다 운동을 잘 하고 누구는 나보다 그림을 잘 그립니다.
세상에서 나보다 못하는 사람이 없을 것 같은 부분이 있습니다. 노래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만은 나는 누구에게나 열등감을 갖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사람은 목소리가 좋아 노래를 잘 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내가 노래 잘 부르기는 포기한지 오랩니다. 어쩔 수 없을 때에는 빨리 포기하는 것이 맘 편하게 사는 길입니다. 그러고 나면 스스로 위로할 방법이 생깁니다. 요즘 나더러 흰머리가 많이 생겼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내 주변의 대머리들을 생각하면서 흰머리칼이라도 없는것 보다 있는것이 낫다고 자위합니다.
이런 하찮은 것들을 비교하여 우열을 가리다 보면 결국 남는 것은 우월감 아니면 열등감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하찮은 것들 때문에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가져야 하는가 생각해 봅니다.
돈이 많다고 해서 또는 좋은 차를 타고 다닌다고 해서 더 훌륭한 사람도 아닐테고 더 행복한 사람도 아닐텐데 왜 가난한 사람은 부자들 앞에서 주눅이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가난하지만 훌륭한 사람들과 행복한 사람들을 얼마든지 만나고 있기 때문에 가난하다고 기죽을 이유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돈이 많다고해서 우쭐할 일도 없음을 알고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론이고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않은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래서 오늘 복음성서의 말씀을 이해할수 있습니다.『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고 지금은 첫째지만 골찌가 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루가 13. 30). 하찮은 것들을 비교해서 우월감을 가진자의 그것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 드러 날때가 있을 것입니다.
비교함으로써 우열을 가리는 습관은 현대 경쟁사회의 특징일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이나 우열을 가릴 것이 아니라 비교함으로써 차이를 발견하는 노력도 필요할 것입니다. 우열을 가림에는 첫째와 꼴찌가 있지만 차이를 발견함에는 우월감도 열등감도 있을수 없기 때문입니다.
서로 다름은 그 고유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그 다양함에서 전체의 조화를 이루어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산 정상에 먼저 올라가고 어떤 사람이 등산하는 동안에 어떤 사람은 밭에서 일을 합니다.
식당에 갔을 때에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고 주문 받는 사람의 지체가 주문하는 사람보다 낮거나「사람이 못나서」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식당을 찾아온 손님에 대한 봉사로 그렇게 하며 그도 다른 식당에 갔을 때에는 꼭 같은 봉사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단지 주문하는 사람과 주문 받는 사람의 차이일 뿐입니다.
학창시절에 공부를 일등 했다는 추억 속에 계속 살다 보면 어느날 인생의 꼴찌가 되어 있음을 발견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므로 정상을 정복한 우월감에 계속 머물러 있음은 미구에 열등감을 장만하는 재료가 됨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모든 등산객은 땀흘려 올라간 그 산을 애써 올라간 자신의 바로 그 발과 다리로 다시 내려와야 함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첫째가 된자들 중에 스스로 겸손할 줄 아는 자만이 꼴찌를 면하고 끝까지 첫째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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