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전례의 주체는 기쁨입니다. 주님께서 오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며 구원의 날이 가까이 왔기 때문에 기뻐하는 것입니다. 신앙 안에서 그 무거운 십자가를 우리가 용기 있게 짊어지는 것도 부활이라는 엄청난 기쁨을 미리 맛 보기 때문입니다. 대림절은 통회와 보속의 시기이면서 동시에 큰 기쁨의 시기입니다.
제1독서(스바 3, 14~18)에서는 구원의 은혜에 기뻐하는 인간의 모습과 그리고 인간을 지켜보시는 하느님의 기쁨이 동시에 나왔습니다. 여기서 기뻐하는 것은 원수를 쫓아주셨기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며 또한 그 하느님께서 항상 우리 안에 계시어 구원해 주시니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 내용이 바로 우리 각 사람에게도 그대로 해당이 됩니다.
우리의 원수는 누굽니까. 우리는 우리 힘으로 원수를 물리칠 수 없습니다. 번번이 원수 앞에 무릎 꿇은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원수를 주님께서 꺾어 주십니다. 오실 그분께서 쫓아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탄생하시고 우리 곁으로 찾아오신 그 분께서 우리를 새롭게 지켜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래서 믿음과 희망을 가지고 그 분을 기다려야 합니다.
제2독서(필립 4, 4~7)에서도 주님께서 오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기뻐하라고 바오로 사도가 외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쁘니까 너그러운 마음을 모두에게 보이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기쁘다면 기쁘다는 표시가 우리에게서 나와야 합니다. 기쁘면 누구에게나 너그러운 마음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특히 대림 3주일은 우리의 너그러움이 요청되는 주일입니다.
복음에서는 회개의 표시로서 가진 것을 서로 나누라고 요한이 외치고 있습니다. 기쁘면 나누게 됩니다. 그리고 나누는 것이 바로 회개의 표시이며 또한 주님을 영접할 수 있는 최상의 준비입니다. 세상에 나눌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사람은 없습니다. 한 사람도 없습니다. 만일에 그 누구도 나누기를 거부한다면 그는 인간이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특히 자선주일입니다. 기쁜 날이기 때문에 이웃에게 자선을 베풀라고 교회가 정한 날입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는 우리가 자선을 베푼다고 하지만 결국은 우리가 그것을 모두 되돌려 받게 됩니다. 그래서 자선은 여러 사람을 풍요롭게 합니다. 주는 사람도 풍요롭고 받는 사람도 풍요롭습니다. 주님이 풍요롭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실 때 비천한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가난하고 외롭고 병들고 슬퍼하는 사람들 곁에 평생을 머물러 계셨습니다. 그 분의 이웃은 밑바닥 인생들이었으며 밑바닥 인생들의 이웃은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때 당시 잘나고 똑똑하고 가진 것이 많았던 자들은 그래서 예수님을 무시했습니다. 업신여겼습니다. 예수님이 밑바닥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잘나고 똑똑하고 있는 사람들 하고만 사귀면 오시는 주님을 만나지 못합니다. 그 분은 그쪽으로 오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을 통해서 주님께서는 오십니다. 그러면 그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란 도대체 누굽니까. 그것은 붙잡을 것이란 오직 주님밖에 없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천국을 차지합니다. 예수님을 차지합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불우한 이웃들이 많습니다. 우리에게 손을 내미는 주님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절대로 그들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언젠가 본당에서 불우 이웃을 위해서 2차 헌금을 할 때 한 사목회 임원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본당도 어렵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말에 어이가 없었습니다. 막말로 기가 찼습니다.
세상에 나눌 수 없을 만큼 가난한 본당은 없습니다. 한 군데도 나누기를 거부한다면 망치로 부숴야 합니다. 무너뜨려야 합니다. 도대체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그들이 그 안에서 무슨 짓거리를 하겠습니까. 최후 심판에서는 우리가 갈라지는 기준도 어떻게 나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마태 25, 31~46 참조).
예수께서는 재물을 하늘에 쌓으라고 하셨습니다(마태 6, 7~21 참조). 땅에 쌓으면 좀먹거나 녹슬어서 못쓰게 되며 또 도둑이 훔쳐간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하늘에 쌓는 것입니까. 그것은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에게 나누고 베푸는 것입니다. 없는 사람을 돌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만이 진정으로 내 것이 됩니다. 땅에 쌓은 것은 아무리 쌓아도 내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 쌓은 것만이 비로소 진정한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기쁘기 때문에 나누고 또한 지난 1년 동안 잘못한 것이 많기 때문에 회개의 표시로 나누도록 합시다. 그리고 나눌 때 자기 것으로 채워지는 풍요로움을 얻게 되며 또한 바로 그 나눔 안에 주님께서 탄생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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