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소외받는 이들을 품어 안기 위해 인간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끝없이 병자와 죄인들을 찾아 길을 나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은 아마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지표가 되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은 과연 가난한 이들과 사랑과 나눔의 생활을 하고 있는지 선뜻 말하기는 어려운 사실이다. 지난호에서 노동자가 없는 교회의 모습을 개괄적으로 살펴보았고, 이번호에서는 가난한 노동자들이 마음 놓고 찾을 수 있는 교회공동체를 위해 그리스도인들의 역할과 전망을 엮는다.
『오늘날 예수님이 힘든 삶에 지쳐 살아가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되묻는 경기도 부천시 노동자들을 위한 「새날의 집」 노은숙(아녜스ㆍ예수성심회)수녀는 『이 사회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생명력이 없기에 오늘날 가난한 노동자들의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고, 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 중에 하나일 것』이라며 『노동자가 찾아올 수 없는 교회의 책임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있다 』고 말한다.
한국 천주교회가 비대해지면서 그리스도 신자들의 삶은 복음과는 거리가 먼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가난한 병자들을 위해, 과부와 소외된 이웃을 위한 예수의 표양을 따르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의무이자 존재이유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이것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노동자가 교회로부터 소외당하고 있는 현실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노동자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현세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가난한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가 되고 있는가? 하는 물음에 선뜻 대답하기는 어려운 것이 우리 교회의 현실이다.
이에 대해 노동사목과 관계하고 있는 많은 이들은 『그리스도인 하나하나가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말보다는 몸으로 살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현재 가톨릭이 운영하고 있는 모든 노동사목이 일반 노동자들에게도 개방되어야 하며, 이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분위기로 전환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한국 천주교회는 눈부신 성장을 거듭해 왔다. 성직 수도성소의 놀라운 증가와 신자수의 급증, 물적 양적인 성장을 거듭해온 한국 천주교회는 이제 스스로 무언가를 선택해야 할 전환점에 섰다.
역사적으로 노동자들을 멀리했던 불란서교회는 많은 신자들이 냉담했고 큰 성전이 텅텅 비었다. 세속적 권력을 갖추게 된 교회는 작은 사람들의 아픔과 애환에 귀기울이기보다 중산층 중심의 교회로 발전해온 것이 사실이다.
『오늘날 교회는 구체적 삶의 현장과는 멀어져가고 있다』고 강조하는 「새날의 집」 실무자인 홍성진(로사)씨는 『노동자들이 복음의 참 맛을 알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사목의 일차적 책임을 지고 있는 성직자들의 노력이 절실히 필요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아직도 성직자 중심의 한국 천주교회에서 이 같은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목의 책임을 진 성직자들이 중산층보다는 가난한 이들을 찾아나서야 하는 것이 노동자들을 교회로 이끌수 있는 우선적 방법이라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한편 지난 91년 3월10일부터 4월10일까지 노동헌장 반포 1백주년을 기념해 가톨릭 노동사목 전국 협의회에서 조사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노동자들의 13·2%(신자 15·1%)만이 「교회가 노동자 문제에 관심을 갖고 힘이 되어 주고 있다」고 응답했을 뿐, 66·4%(신자 69·9%)가 「몇몇 신부나 노동단체 외에는 그렇지 못하다」, 5·7%(신자 7·0%)가 「전체적으로 그렇지 못하다」, 12·1%(산자 6·5%)가 「교회가 노동자 문제에 관여하는지 들은바 없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현재 노동자들은 교회에 대해 반감(5·2%)보다는 호감(36·8%)을 가지고 있으며 종전의 박종철군 고문조작 폭로와 같은 사회부정 고발, KBS 시청료 거부와 같은 국민 불복종 운동 전개, 통일운동의 활성화, 노동조합 결정 지원 및 인권옹호 운동을 재개해줄 것을 일반노동자 및 신자노동자 85% 이상이 촉구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러한 조사결과로 볼 때 노동자들은 교회가 실제로 노동자 문제에 열성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다고는 보지 않지만 교회가 노동자들과 함께 해 줄것을 원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 신자노동자만 대상으로 한 바람직한 전교방법 문항에서도 신자들은 「모범적인 신앙 실천」(41·9%)과 「사회정의 선포」(37·6%)를 최우선으로 뽑았으며, 그 다음이 「입교 권유」(3·8%), 「홍보매체를 통한 선교」(1·1%), 「성지개발 및 대규모 기념성당 건립」(0·0%)순으로 나타나 세상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올바른 삶이 노동자들을 교회공동체로 오게 하는 중요한 이유로 드러났다.
신자노동자들의 미사 참여도 조사에서 절반 정도가 성실히 미사에 참례하고 절반 정도는 직장생활이나 생계 때문에 바빠서, 성당의 전반적 분위기가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 중심이라 소외감과 거부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지배적이어서 노동자에 대한 인격적 대우와 물적성장으로 인한 교회의 중산층화가 이들의 신앙생활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는 이유로 나타났다.
오랜 역사와 관습 등 변화가 어렵겠지만 노동자나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교회 문턱은 계속 낮아져야만 할 것이다. 그들이 교회 안에 평안한 마음으로 자기들 삶에 와 닿는 복음을 들을 수 있도록 그리스도인들이 노력할 때 우리는 정의와 평화가 흐르는 하늘나라의 꿀맛을 미리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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