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했던 갑술년 94년 한 해도 저물어가고 있다. 금년 한 해는 교회와 유엔이 정한「세계 가정의 해」로 생명과 가정문제에 사회 전체가 각별한 관심을 보여주었다.
특히 한국 천주교회는 교계적으로 3명의 새 주교를 탄생시켰고, 아시아 평신도 회의를 개최하는가 하면, 대 사회적으로는「형법 개정안 제135조 삭제」시위와 낙태 반대, 르완다 난민 돕기, 영광 핵발전소 3, 4호기 부실공사 진상 규명 조사단 파견 등 활발한 복음화 운동을 펼쳐왔다.
「결산 94년도 한국 교회」기획은 올 한 해동안 한국 천주교회가 추진해 온 교회 활동들을「생명」「사랑」「환경」「농촌」문제 등 총 4개 부문으로 구분, 종합적인 평가와 함께 이를 토대로 95년 한국 천주교회의 사목 방향을 미리 조명해 본다.
몇 해 전 모 자동차 회사가 자동차 선전 광고를 내면서 김수환 추기경이 티코 자동차를 탄다는 내용을 광고 카피로 사용, 정말 추기경이 티코를 타고 다니는지 확인하는 소동 아닌 소동이 벌이진 적이 있었다.
이처럼 김 추기경의 행동 하나하나가 가톨릭 신자들뿐 아니라 세인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그분이 바로 우리 시대의 영적 아버지라는 사실을 모두가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스컴뿐 아니라 국민 대부분이 김 추기경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으면서도 금년 3월 주교회의 춘계 정기총회가 끝나면서부터 김 추기경에게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감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
춘계 주교회의를 계기로 김 추기경에게 있은 커다란 변화는 바로「10주 된 태아의 발」배지를 그 이후로 지금까지 하루도 빠트리지 않고 가슴에 달고 있는 모습이다.
「태아의 발」배지를 김수환 추기경이 어느 장소에서든 항시 달고 있다는 것은 당신 자신이 생명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의지의 표현일 뿐 아니라 생명문제야말로 교회가 표명해 나가야 할 미래 사목의 지표임을 시사하는 표징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사실 김 추기경의 이러한 외적 변화뿐 아니라 94년 금년 한 해 동안 한국 천주교회는「가정의 해」에 초점을 두고「생명문제」특히「태아의 생명권 보장」문제에 총체적인 사목적 역량을 집결해 왔다.
인류 평화를 지향한 가정 복음화에 주력하고 가정 공동체의 쇄신을 모든 외적인 활동에 앞서 최우선적으로 실천해 나가기로 했던 전국 15개 교구 사목교서 내용들이 이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생명운동의 성과
올 한 해 동안 한국 천주교회가 전개해 온 생명운동의 백미라면 최창무 주교를 비롯한 한국 천주교 1천여 명의 신자들과 개신교 낙태반대연합 51개 단체 2백여 명의 회원들이 연합, 국회 앞에서「형법 개정안 제135조 삭제」를 요구하면서 벌인 가두시위를 손 꼽을 수 있다.
처음으로 개신교계와 연대해 벌인 국회 앞「낙태 반대 및 형법 개정안 제135조 삭제」가두시위는 시위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개신교계와의 연대 가두시위는 생명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신학적 입장도, 사상도, 종파도 초월할 수밖에 없다는 당위성을 사회 앞에 표명했다는 의미에서 새로운 성과라 하겠다.
올 한 해 동안 한국 천주교회가 전개한 생명운동에 대한 평가는 또한 가정의 해를 맞아 더욱 외적으로 표면화되고 활성화됐다는 것이지 결코 무엇을 기념해 한시적이고 일회적인 행사로 그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피력하고 싶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권리를 인정하고, 그 생명권을 보호하는 것이 교회가 지향하는 기본 사명이기 때문이다.
생명문제에 대한 교회의 이러한 기본 입장은 한국 천주교 주교단이 금년 주교회의 춘계정기총회에서「사랑과 생명의 공동체인 가정을 위하여」란 제하의 주교단 사목교서에서 명확히 엿볼 수 있다.
한국 주교단은 이 사목교서에서『참다운 진리에 입각하여 가정의 본래 모습을 회복하는 것은 사회와 교회의 미래를 건설하는 토대』라고 강조하면서『생명문화의 창조, 사랑과 생명의 가정 공동체 건설을 위해 우리 모두가 기도하고 투신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올 한 해 동안 펼쳐 온 한국 천주교회의 생명운동에 대한 평가를 내리자면 첫째로 교회의 노력으로「가정의 해」를 맞아 과거 그 어느 때보다 가정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됐고 그 중요성이 부각됐다는 점이다.
「가정 성화」에 따른 구체적인 대안 제시와 사목적 노력이 앞으로의 과제로 남아 있지만 한국 천주교회가 단기간에「가정이 가정다워야 사회가 바로 서고 윤리 도덕성이 회복된다」는 진리를 세상 사람들에게 각인시켜 주었다는 사실은 이미 교회가 추진하고 있는 생명문제가 결실을 맺고 있다고 평가 내릴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천주교회의 94년도 생명운동에 있어 또 하나의 성과는 생명운동이 단순한 사회운동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기도운동을 토대로 전개돼 왔다는 점이다.
기도운동이 일어나지 않고는 생명운동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간파한 주교회의 가정사목위원회가 금년 초부터「가정 성화와 생명 수호를 위한 묵주기도 1백 만단 봉헌운동」을 전개했다.
이 기도운동은 전국의 신자들의 적극적인 호응과 가정 사도직 단체와 레지오 마리애 단체들의 체계적인 주도로 일찌감치 목표를 초과했을 뿐 아니라 이제는 일상기도로 정착할 만큼 보편화되어 한국 천주교회의 생명운동을 추진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은 앞으로 생명운동이 얼마나 활발하게 전개될 것인가 하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생명운동 추진 방향
금년 한 해 동안 한국 천주교회가 전개해 온 생명운동은 크게 두 가지 줄기로 구분할 수 있다. 그 하나는「형법 개정안 제135조 삭제운동」이며 다른 하나는「낙태 반대를 위한 10주 된 태아의 발 배지 달기 운동」이다.
이들 운동은 모두 전국가정대회를 정점으로 이루어 냈으며 전국 가정대회에서는 결의문을 통해『인간 생명은 잉태되는 순간부터 자연사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존중되고 보호되어야 함』을 선언했다.
「형법 개정안 제135조 삭제운동」은 국회 법사위 공청회에서 주교회의 가정사목위원회 송열섭 신부가 한국 천주교회의 입장을 밝히고 또 형법 개정안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자료집「엄마 아빠 나 여기 있어요」를 발간하면서 본격화됐다.
이 운동은 마침내 개신교 낙태반대연합과 연대해 국회 의사당 앞에서 형법 개정안 제135조 삭제를 요구하는 가두시위를 낳았고, 주교회의 의장이문희 대주교가 주교단이 만장일치로 채택한「형법 개정안 제135조에 관한 주교단 국회 건의문」을 국회 의장에게 전달, 낙태의 허용법을 반대하는 교회 측의 입장을 강력하게 표출했다.
이 형법 개정안 제135조는 국회가 공전됨에 따라 국회 인준이 불투명해지고 있지만 이 법률안이 완전히 삭제될 수 있도록 더욱더 힘을 결집시켜 나가야 하겠다.
「태아의 발 배지 달기」운동은 전국 각 교구에서 수 차례 가두 캠페인을 통해 일반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질 만큼 홍보 효과를 거두고 있는 중이다. 태아의 발 배지 달기 운동은 보이지 않는 태아라 할 지라도 똑같은 인간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운동이다.
태아의 발 배지가 가두 캠페인을 통해 많이 홍보됐다고는 하지만 당초 목표인 1백만 개 보급에는 아직 그 수가 미치지 못하고 있어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95년도 전망
생명운동은 94년 한 해 동안 교회의 제도적 조직에도 많은 변화를 안겨 주었다.
서울과 대구대교구를 비롯한 수원 인천교구 등 교구 산하 일부 본당에서 가정, 생명분과가 사목회 내에 설립, 운영되고 있는 것은 생명운동에 대한 사목자들과 신자들의 관심이 얼마나 높아지고 있는가를 잘 반영해 주고 있다.
특히 각 교구 교구장들이 발표한 95년도 사목교서가 대부분 94년 때와 마찬가지로「가정 공동체와 생명운동 활성화」에 초점을 두고 있어 앞으로 한국 천주교회의 생명운동이 한층 더 체계화돼 나갈 전망이다.
교구장들의 95년도 사목교서를 보면 특히 교육을 강조하고 있어 생명운동과 가정 사도직 활동에 대한 다양한 교육이 신자들을 대상으로 전개될 조심이다.
이러한 예상은 주교회의 가정사목위원회가 94년도 마지막 교육사업으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가정교서」를 번역, 출간함에 따라 더욱 신빙성을 갖게 해주고 있는데, 앞으로 교황의「가정교서」가 생명운동의 지침을 설정할 주요 텍스트가 될 것으로 추측된다.
◆생명운동 일지
▲93.12.7 주교회의 가정사목위 정총. 가정 성화와 생명 수호를 위한 묵주기도 1백만 단 봉헌운동 전개 및 태아의 발 배지 달기 운동 실시 결정
▲94.1.29 마산 산청본당 낙태 반대 캠페인 연초 첫 가두선교 실시
▲94.1.31 주교회의 가정 사목위「파킨슨병 환자에 태아의 뇌세포 이식-과연 윤리적, 법적으로 전혀 문제되지 않는가」성명서 발표
▲94.3.19 주교회의 춘계 정총「사랑과 생명의 공동체인 가정을 위하여」사목교서 발표
▲94.3.27 가톨릭대 이동익 신부「생명의 관리자」출간, 생명교리 구체적으로 제시
▲94.4.21 가정사목위 총무 송열섭 신부「형법 개정안 제135조에 관한 국회 법사위 공청회」서 교회 입장 발표
▲94.5.21 가정사목위 위원장 박 토마 주교 가정의 달 담화문 발표
▲94.5.27 주교회의 정평위「생명공학과 생명 윤리」세미나 개최
▲94.7.10 정평위 낙태 반대 홍보 자료「엄마 아빠 나 여기 있어요」발간
▲94.7.24 최창무 주교「가톨릭계 병원 의학윤리 사례에 따른 교회의 가르침과 통일된 신학적 견해」자료집 발표
▲94.8.6 가정사목위 꽃동네 서울 명동서「태아의 발 배지 달기」가두 캠페인 전개
▲94.8.15 가정사목위 카이로 세계인구개발회의 관련「우리는 생명 사랑 가정을 지지한다」성명서 발표
▲94.9 전국 교구「태아의 발 배지 달기」 가두 캠페인 동참
▲94.9.1 가정사목위「가정 성시간」전례 안내서 처음으로 배포
▲94.9.5 송열섭 신부, 맹광호 교수 한국 천주교 대표로 카이로 인구회의 파견
▲94.9.8 가정사목위 전국가정대회 관련「모든 가정이 사랑과 생명의 성역이 되게 하소서」담화문 발표
▲94.10.1 전국가정대회 준비 위한 가정 성화 9일기도 전국에서 실시
▲94.10.9 전국가정대회 개최, 서울 서초동 가톨릭 의대 마리아홀
▲94.10.13 주교회의 추계 정총「형법 개정안 제135조에 관한 국회 건의문」만장일치로 통과
▲94.10.13 주교회의 의장 이문희 대주교 황낙주 국회의장에게 주교단 건의문 전달
▲94.10.26 천주교, 개신교 낙반연 연대,「형법 개정안 제135조 삭제」 국회 가두시위, 서울대교구 최창무 주교 주도
▲94.11.16 정평위 정총 인간생명수호운동 95년 주요 활동사업으로 선정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