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은 예언자 이사야와 그리고 마리아와 함께 대림절 전례에 등장되는 중요한 세 인물 중의 한 분이십니다. 그의 역할은 주님이 오실 길을 닦는 데 있었으며 그는 또 그 임무를 성실히 수행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종교도 창설할 수 있는 추종자들도 있었으며 또한 예수님을 능가하는 백성의 많은 인기를 얻고 있었으나 그러나 그는 야심을 품지는 않았습니다.
자신을 분명하게 안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모릅니다. 먼저 자기 자신을 알아야 이웃을 알고 세상을 알게 됩니다. 자신을 모르면 참으로 답답하고 암담한 세상을 살게 됩니다. 예수님은 그 요한을 가리켜『일찌기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었다』(마태 11, 11)고 극찬했으며 또한 요한이야말로 구약이 예언한(말라 4, 5) 주님보다 먼저 오기로 된 옐리야라고 했습니다(마태 11, 14).
오늘 그 세례자 요한이 주님의 길을 닦는 최고의 방법으로서「회개」를 역설했습니다. 요한이 말하는 길은 아스팔트나 시멘트 길이 아니며 바로 우리 마음의 길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회개에 대해서 묵상해 보겠습니다.
회개라는 말의 의미가 성서에 몇 가지 나오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나함」이라는 말과「슈브」라는 말이 있습니다.「나함」은「뉘우친다」「슬퍼한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슈브」는 「돌아간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것을 종합하면 회개란 자기 죄를 뉘우쳐서 하느님께로 돌아감을 의미합니다.
탕자의 비유(루가 15, 11~32 참조)에 보면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돌아올 유산을 가지고 집을 나가서 몽땅 탕진해 버립니다. 그리고 그가 알거지가 되었을 때 비로소 자기가 아버지께 죄를 지은 줄 알고 뉘우치게 됩니다. 이것이 나함입니다. 그러나 나함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부족합니다.
작은 아들은 마침내 집으로 돌아갑니다. 돌아가면 아버지로부터 혼날 것이며 아마 당신 아들도 아니라고 내쫓을 것입니다. 그래도 작은 아들은 돌아갑니다.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머슴이라도 좋으니 아버지께 사정하기 위해서 돌아갑니다. 이것이 슈브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주님께로 돌아갈 때 이루어집니다.
어떤 사람이 대전에서 서울을 가기 위해서 기차를 탔는데 한참 가다 보니 대구가 나왔습니다. 기차를 잘못 탄 것입니다. 그럴 때는 얼른 역에서 내려서 기차를 바꿔 타야 합니다. 그래야 서울로 갑니다. 만일에 기차를 바꿔 타지 않고 부산행 열차 안에서 아무리 선행을 베풀고 기도를 한다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잘못된 줄을 알면 뉘우쳐서 방향을 바꿔야 합니다. 술에 중독이 된 젊은이가 있는데 마치 폐인처럼 몸이 아주 쇠약해 있었습니다.
술만 먹으면 밥을 먹지 못하니까 영양실조가 돼서 멀쩡한 사람이 폐인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가 하는 말이 술을 하루라도 참으면 밥맛이 나고 기운이 나는데 술이 나쁜 줄을 알면서 끊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나함은 되는데 슈브가 안 됩니다. 이런 분들이 많습니다.
알면서도 돌아가지 못하는 것보다 안타까운 일도 없습니다. 또한 알면서도 돌아가지 않는 것보다 처량한 것도 없습니다. 요한은 회개하지 않는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 학자들에「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큰 죄인이라도 돌아가면 아름답게 됩니다.
신자도 아닌 어떤 형제가 하루는 저를 찾아와서 자기 인생 고백을 했습니다.
그는 많은 방탕한 생활로 자기 인생과 가정까지도 다 파괴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모든 것을 고백하고 새 사람이 될 수 있는 길을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는데 그 모습이 너무도 아름답고 순수하게 보였습니다. 자신을 알고 뉘우쳐서 돌아선다는 것은 장미처럼 아름답고 백합처럼 깨끗한 일입니다.
하느님께는 우리의 죄가 얼마나 크고 또한 얼마나 많으냐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돌아가기만 하면 그 모든 것이 순식간에 씻겨집니다. 또 하느님께서는 회개해서 돌아오는 죄인을 그토록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길을 모르면 돌아가지 못합니다.
주님이 동쪽으로 오시는데 우리가 서쪽으로 가서 길을 닦는다면 그는 주님을 영접하지 못합니다.
어떤 형제가 고해성사를 보는데 냉담한 지 3년이나 됐다고 했습니다. 그러냐고 신부는 반가와서 죄를 고백하라고 하니까 그 사람이 그랬습니다. 성당만 안 나왔지 별 죄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신부가 그래도 3년이나 됐으니 죄를 생각해 보라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죄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영혼이 흐려져 있으면 자신을 알지 못합니다. 마음이 흙탕물이면 자기 죄가 안 보입니다. 죄를 모르면 고칠 수가 없고 자신을 알지 못하면 평생 불구자처럼 됩니다. 따라서 이 좋은 대림 시기에 진정한 회개를 통해서 주님이 오시는 길을 아름답고 깨끗하게 닦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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