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는 2월27일부터 4월3일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 5시 명동성당 문화관 2층에서 열리는 93년도 사순절 특강을 지상중계한다. 다음은 「사순절, 그리스도인」을 주제로 27일에 있은 김수환 추기경의 강연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사순절의 의미는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면서 수난하신 그리스도께서 가신 길을 따라감으로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이 되는데 있습니다.
사순절에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예수님의 모습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렇다면 참으로 죄 없으신 그리스도께서 왜 이렇게 처참하게 죽게 되었습니까.
복음성경에 의하면 직접적으로는 대사제와 율법학자 및 바리사이파들의 모함에 의해서였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닙니다. 예수님 자신이 이 죽음을 이미 내다보고 계셨습니다. 공관복음을 보면 당신 스스로 세 번이나 예루살렘에 올라가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넘겨져 많은 고난을 받고 죽으리라』고 예언하셨습니다(마태16, 21).
예수님의 수난은 직접적으로는 인간이 즉 유다인들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분의 착한 일을 오히려 질시하고 죽이고자한 미움 때문이지만 예수님은 이를 아시고도 그것을 피하거나 당신의 능력으로 이를 막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전 생애를 통하여 이를 바라보고 사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은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이미 오래전에 예언자들에 의해 예언된 것이었습니다. 복음서에서 수난에 관한 기술에 있어 시편의 암시가 많은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럼 하느님은 왜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이런 고통을 원하셨습니까.
그것은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가 지은 죄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그것은 생명이신 하느님을 거스리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무시하고 자기를 앞세우는 것입니다.
인간은 참으로 하느님이 사랑으로 지으신 최고의 걸작품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이렇듯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등졌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뜻을 거스려 죄를 범했습니다. 하느님의 존재 부인, 오만불손, 우상숭배 이 얼마나 큰 불경죄입니까.
그밖에 수많은 살인죄, 그 중에서도 어리고 약한 생명을 죽이는 낙태, 전쟁과 대량학살 강도 강간 약탈 등 인간유린과 생명경시의 죄를 상상해 보십시오. 우리 사회가 오늘 이 시간에 범하고 있는 죄도 얼마나 크겠습니까.
하느님은 결국 당신을 거스린 범죄로 죽게된 인간을 구하시려 당신 아들을 보내시어 사람이 되게 하시고 그 아들을 시켜 온 세상 모든 이의 죄를 대신 짊어지신 속죄의 제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죄는 인간이 지었는데 그 죄의 속죄의 짐은 하느님 편에서 지셨습니다. 이런 모순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여기서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의 어리석음, 십자가의 어리석음의 깊은 의미를 생각치 않을 수 없습니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죄로 말미암아 겪게 된 인간 고통과 죽음의 한가운데까지 들어오셨습니다. 그래야만 인간을 그 고통과 죽음에서 구하실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 이렇게까지 하셨습니까. 그것은 한마디로 사랑 때문입니다.
참으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러나는 하느님의 사랑은 인간의 지식을 완전히 초월합니다. 사도 바오로는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이 큰 사랑을 깊이 묵상하고 깨달은 나머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당신의 아들까지 아낌없이 내어주신 하느님께서 그 아들과 함께 무엇이든지 다 주시지 않겠습니까.…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생명도, 천사들도, 권세의 천신들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능력의 천신들도 높음도 깊음도 그 밖의 어떤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나타날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로마8, 32~39).
우리 역시 이 믿음을 굳게 가져야 합니다. 신앙이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이 사랑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이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러나는 이 사랑을,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신 주님의 이 사랑을 본받고 사는 것입니다.
사순절에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면서 보속하는 뜻으로 재를 지키거나 술 담배를 끊는 것도 좋고 십자가의 길 기도를 매일 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가장 좋은 것은 참으로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먼저 이웃과 마음 상한 것이 있으면 풀고, 용서를 청해야 할 일이 있으면 진심으로 용서를 청하고, 나아가 가난한 이웃 소외된 이웃 고통 중에 있는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사순절은 이렇게 『그리스도께서 지니셨던 마음을 간직하여』(필립2, 5) 이웃사랑을 참으로 사는 시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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