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톨릭신앙생활연구소(소장=신치구)가 내놓은 한국 천주교 평신도의 신앙생활 실태 92~93년 제1, 2, 3차 조사 종합 보고서에 의하면 조사 대상 남녀 평신도 5천27명 중 40.3%가 하느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부정한 일을 하지 않으며 신앙에 따라 생활한다고 답한 것으로 드러났다.
반면 신앙생활의 장애 요인으로 가장 높은 응답률을 보인 항목으로는「복음과 생활의 일치가 어렵다」(29.4%),「교리 및 복음 지식의 부족」(26.8%) 순으로 답해 한국 천주교회의 평신도들이 신앙에 따라 생활하려고 노력하면서도 신앙과 생활이 상호일치되지 않는 데 대해 고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신자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실천 사항으로 조사 답변자의 20%가「윤리 도덕에 위배되는 일을 하지 않는 것」,「헌금 교무금 등을 정성껏 헌납하는 것」(17.4%)으로 인식하고 있는 반면「타인에게 복음을 전한다」(9.5%),「타인에게 언행의 모범이 된다」(8.2%)라고 생각하는 신자들은 전체 응답자의 10% 미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의 조사 결과만을 놓고 한국 천주교회 평신도들의 신앙생활 실태를 분석하면 한국의 평신도들은 자기 중심적 구원관에 근거한 교회 내적이고 소극적인 신앙활동에 치우치는 반면, 교회 외적인 사명 즉, 선교와 복음화, 사회정의 실천문제에는 별 관심이 없다고 지적할 수 있겠다.
평신도에게 있어서 물론 교회 안에서의 활동도 중요하고 뜻 있는 일이지만 정작 평신도활동의 고유 영역은 바로 세상이다.
따라서 가톨릭신앙생활연구소의 조사 결과대로 한국 천주교회의 평신도 활동이 교회 안에만 머물러 있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지 않는다면 한 마디로 본말이 전도되었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회 안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가장 적합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바로「평신도」들이라는 것은 교리를 배웠다는 신자들이라면 누구나 인정하고, 또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앎이 단순한 교리적 지식으로만 그치고 말뿐 삶과 직접적으로 일치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국 천주교 평신도사도직협의회는 이 문제를 깊이 인식한 나머지 금년 9월 제1차 아시아 평신도회의를 주최하면서 그 주제를「평신도의 사회교리 실천」으로 삼은 바 있다.
이 회의에서 아시아 15개국 평신도 대표들은 평신도들의 사명이 일반 사람들과 같은 환경에서 가정생활과 직장생활을 신앙생활과 일치시킴으로써 복음을 증거하는 데 있으며, 교회와 사회가 평신도들의 사회교리 실천 도장이 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교육의 기회가 마련돼야 한다고 결론 지었다.
따라서 평신도들의 사회교리 실천의 주요 관건은 평신도들이 개인적으로나 단체적으로나 간에 사회활동, 공직활동을 통해 자신들의 신앙과 일치하는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충분한 지원을 배려하는 데 있다 하겠다.
◆직장 사도직 -「믿음과 생활 불일치」걸림돌
교회의 모든 봉사는 결국 선교를 위한 사도직 활동에로 귀착된다.
평신도에게 있어서 직장은 가정과 교회와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활동 무대이다.
자신이 몸 담고 있는 직장 안에서 자기가 수행하는 업무 자체가 그 범위 안에서 최선의 것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직장인으로서 주님의 뜻을 받들고 물질에 관한 복음적 의미를 증거하는 것이다.
평신도 사도직을 올바르게 수행하려면 먼저 가정을 잘 영위하여 사회의 거룩한 세포가 되고, 직업에 충실하고 유능하게 돼 직장을 발전시켜야 한다. 즉 평신도에게 있어 직접적인 교회활동은 오히려 그 본질상 제2차적인 사도직이다.
가정이나 직업에는 등한하거나 무능하면서 늘 성당에서 살다시피하는 평신도는 결코 모범적인 신자일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자기 가정은 쪼들리고 자녀들은 문제 아이고, 직장인으로서는 손가락질을 받는 사람이 교회에 관한 일이라면 무엇이나 간섭하고 개입하는 사례는 없어져야 한다.
최근 교회 사설기관의 자료 조사에 의하면 전문직 종사자이건 사무직, 기능직 종사이건, 공무원이거나 서비스업이나 자영업을 하는 신자이건 간에 해당 직장에서 30% 정도가 신앙과 생활이 불일치로 고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한국 천주교회가 대규모 군중사목이 신앙과 생활의 일치에 큰 도움이 되지 않고 있는 만큼 계층별, 직업별, 직장별 사도직 공동체를 조직화하고 확산시켜 나가는 단계에서 그 구성원의 3분의 1이 신앙과 생활과의 불일치로 고민하고 있다는 것은 상당한 걸림돌이 아닐 수 없다.
생활 현장 중심의 직장 사도직 단체들이 그 목적을 제대로 수행해 나가기 위해선 교회의 사목적 지원이 필수적이라 하겠다.
『평신도들이 자기 직업에 관한한 세속적 영역에 대해선 누구 못지 않게 전문적이지만, 그 전문성을 복음의 정신에 비추어 재조명하는 활동에 있어서는 상당한 어려움이 뒤따른다』는 한 직장신우회장의 솔직한 고백과 같이 직장 전담 사제의 확충과 같은 사목적 대안이 시급히 시행돼야 한다고 본다.
또 한 가지 제안으로 한국 교회 전체 차원의 종합적인 선교사목 전담 연구기관이 설치, 평신도 지도자 양성, 분야별 사회교리 실천 교육 자료 연구 등을 추진해 나갈 것을 교회 당국에 요청한다.
◆사회교리 실천 - 부조리 척결에 노력 쏟아야
오늘의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철저한 불신과 실망은 그 어느 때보다 평신도들의 사회선교 사명의 실천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총체적인 부조리 앞에서도 평신도들은 신앙을 기초로 이 문제를 쇄신해 보려는 노력과 움직임이 부족한 실정이다.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가톨릭 신자들의 무관심은 대부분의 평신도들이 신앙생활을 개인적인 문화적 사생활의 일부 정도로 이해하고 있는 데서 오는 결과라고 신학자들은 진단하고 있다.
신앙생활을 개인적으로 오염된 마음을 정화하는 데 치중하고 가급적이면 신앙을 현실로부터 멀리 떨어뜨려 놓으려는 것이 오늘날 한국 평신도들의 속성이라고 신학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사회 과학자들은 이러한 풍조의 배경에는 신자의 4분의 3 이상이 최근 10년 안에 입교하여 신앙 경력이 부족한 상태이며, 신자의 72.6%가 고졸 이상의 고학력자이고 직업의 화이트 칼라화 및 도시화, 우리나라 전체 세대의 자택 보유율 63%(93년 현재)보다 훨씬 웃도는 73.3%의 자택 소유율 등 교회의 급속한 중산층화에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교육을 받았으며 확실한 직업을 갖고, 생활이 안정된 신자층이 두텁게 자리잡고 있는 현실에서 신앙을 일상생활로 수용하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돌출된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따라서 오늘을 사는 평신도들의 사회 참여를 유도하는 우선적인 길은 신앙과 믿음을 본질적으로 현실적 사회문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초월적인 것으로 이해하려는 잘못된 신앙 태도를 바로 잡는 데 있다고 신학자들은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제 양성을 위해 교회가 쏟는 정성 못지 않게 평신도들의 평생교육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또 교육 내용으로는 교회의 사회교리를 특히 강조해야 한다. 공의회 문헌, 최근의 교황 회칙 및 교황 문헌들을 교육 내용의 기본으로 이용해야할 것이다.
◆사회교리 실천 현안 - 인간 존엄성 회복이 “과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당신의 사도적 권고「평신도 그리스도인」에서 미래의 세계에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평신도들의 복음적 사회 참여가 더욱 절실한 과제로 등장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교황은 아울러 예견되는 미래 세계에서 가장 요구되는 평신도들의 사명으로 다른 어느 분야보다도「인간의 존엄성」을 옹호하는 문제가 현안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평신도 그리스인 38항 참조).
따라서 평신도는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일이 오늘을 살고 있는 자신의 사명임을 인정하는 데 무관심할 수 없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당신의 여러 문헌들에서「인간의 존엄성이 회복되고 인정받는 첫 단계는 바로 불가침의 생명권이 존중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는 한국 천주교회를 이끌어가고 있는 주교단의 태도에서도 잘 나타난다. 특히 김수환 추기경이 한국 주교단이 선도한 92년 태아의 생명권 수호와 낙태반대운동을 시작한 이래로 하루도 빠지지 않고「태아의 발」배지를 달고 생활하고 있는 그 묵시적인 삶에서 한국 천주교회의 사회 복음화 운동의 토대가 바로「생명권 수호」에 있음이 확연히 엿볼 수 있다.
그러므로 한국 천주교회 평신도들의 사회 참여 현안들은 바로 인간의 존엄성 회복과 생명권 수호에 집약돼야 한다.
한국 평협이 벌이고 있는 도덕성 회복운동도 바로 생명의 문화, 인간 문명을 창조하고 재건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모든 인간이 지닌 불가침의 존엄성을 재발견하는 것은 교회와 그 안에 사는 평신도들이 인류 가족을 섬기도록 부름 받은 봉사의 근본 임무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핵심적이고도 통합적인 임무』라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말씀은 21세기를 준비하는 모든 평신도들이 깊이 새겨야 할 가르침이라 하겠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