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로서는 새해 새 날이 시작되는 대림 제1주일입니다. 교회는 이제 4주간 동안 이 세상에 오실 주님을 기다리면서 그분을 모실 준비를 합니다. 옛날 유다인들이 기다렸던 메시아, 그들 백성의 힘의 원천이었던 희망의 메시아를 우리도 함께 기다리게 됩니다.
오늘 1독서(예레 33, 14~16)에서 예레미아는 유다 왕국이 패망하여 참담한 유배생활에 빠져있을 때 그들을 구해줄 메시아가 온다는 소식을 전해주면서 백성들에게 큰 희망을 북돋워주고 있습니다. 다윗의 정통 왕손 중에서 메시아는 분명히 온다는 것입니다. 그가 와서는 비참하게 무너지고 폐허된 나라를 다시 건설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메시아 사상은 유다 민족을 받쳐주는 기둥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절망에 빠졌을 때 새 희망을 만날 수 있습니다. 죽음에 다다랐을 때 비로소 삶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용기와 힘을 가져야 합니다. 특히 지난 1년 동안 고생하고 눈물 흘렸던 분들, 뭔가 노력해도 자꾸만 넘어지고 실패를 하셨던 분들, 그들에게는 이제 희망이 있습니다. 분명히 구원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을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린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즐거운 일입니다. 소망스런 일입니다. 소풍 날을 기다리는 어린이들의 눈망울, 혼인 예식을 기다리는 신랑 신부의 얼굴들을 보면 세상의 아름다움과 기쁨이 거기에 다 있는 듯합니다. 좋은 분을 기다리고 좋은 일을 기대한다는 것은 참으로 신이 나는 일입니다.
그러나 기다린다고 해서 누구나 다 만남의 기쁨이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준비가 안 된 사람은 만남을 두려워합니다. 오히려 무서워서 도망칩니다. 그리고 오실 그분을 잘못 착각하는 수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예쁘고 착한 사람, 힘 있고 돈 있는 사람만을 기다릴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주님을 세속적으로 기다린다면 그는 실패합니다. 유다인들이 그랬습니다.
유다인들은 오랫동안 메시아를 기다려왔지만 그러나 정작 메시아가 왔을 때는 그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다윗의 왕손 중에서 잘나고 똑똑한 인물이 왕관을 쓰고 씩씩하게 와야 하는데 웬일로 기대했던 예수가 현실적인 힘은 하나도 못쓰고 오히려 저주 받은 십자가에 매달리자 그들은 자존심이 상해 예수를 죽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지금도 예수가 메시아라는 사실을 믿지도 않고 인정하지도 않습니다.
이처럼 잘못 기다리면 스스로 재앙을 만나게 됩니다. 따라서 오실 분이 어떤 분인지, 그리고 그분이 내 인생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이 백 번 오신다 해도 우리는 그분을 만나지 못합니다. 그리고 준비를 해야 합니다. 단정한 마음과 깨끗한 생활로 그분을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림이 성실치 못할 때 그는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여러 해 전의 일입니다. 어떤 형제가 중동에 가서 열심히 일해 돈을 벌었습니다.
서울에는 아내와 자녀들이 있었는데 이제 내 집을 장만해서 남 부럽지 않게 살아보겠다고 열심히 벌어서 부인에게 송금을 했습니다. 그리고 3년 만에 그 남편이 귀국할 때는 꿈과 희망이 컸었습니다. 그동안 너무도 외롭고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서울에 와 보니 그 돈이 없었습니다. 아내가 춤바람이 나가지고 뭇 남자들과 함께 다 탕진해 버렸습니다. 남편은 오직 함께 만날 날만을 기다리며 열심히 일했는데 아내는 기다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저 먹고 마시고 흥청거리면서 남편을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만날 날이 가까와지자 여자는 도망쳤습니다. 이처럼 한 쪽은 기다렸는데 다른 한 편이 기다리지 않았을 때 상대는 배신감을 크게 느끼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교회가 대림절을 만들어 주님을 공적으로 기다린다고 하지만 우리가 진심으로 기다리지 않을 때 우리는 오실 주님에게 큰 상처를 안겨드리게 됩니다.
아니, 다시 한 번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는 죄를 범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보다 진지하고 경건한 자세로 주님을 기다려야합니다. 존경과 애정을 가지고 그분을 맞이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마지막 날에 오실 주님을 어떻게 기다려야 하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실 대림절은 아기 예수로 오시는 주님과 마지막 날에 왕으로 오실 주님을 동시에 기다리며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준비의 자세는 첫 번 오심과 마지막 오심에 있어서 차이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항상 회개와 믿음이 요청되기 때문입니다.
『몸을 일으켜 머리를 들어라』(루가 21, 28).
우리는 이제 넘어진 삶에서 몸을 일으켜야 합니다. 잘못된 것이 있으면 죄다 뉘우치고 고백하여 머리를 들어야 합니다. 얼마나 많고 큰 죄를 지었느냐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뉘우치며 고백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주님이 이미 출발하셨습니다. 우리를 향해서 걸어오십니다. 따라서 우리도 서둘러 그분을 향해 걸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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