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제2의 도시 레닌그라드는 물의 도시다. 상트페테스브루크. 개방, 개혁과 함께 첫 이름을 되찾아 활기를 띠고 있는 상트페테스브루크의 역사는 불과 3백년이 채 되지 못한 젊은 도시다. 그런데도 페테스브루크는 그 3백년 격동의 역사를 그대로 도시 전체에 담고 있어 고풍스런 멋을 자아내고 있다.
페테스브루크에서 페트로그라드로, 그리고 레닌그라드에서 다시 본래의 이름으로 환원된 이 도시의 다양한 이름은 다양한 역사의 증명서나 다름이 없다. 서유럽의 문화 흔적을 곳곳에서 풍기고 있어 모스크바보다 오히려 친근하게 다가오는 레닌그라드, 상트페테스브루크로 가는 길은 낭만이 넘쳐흐르는 야간열차를 택했다. 그것도 다름 아닌「붉은 화살호」로.
◆유럽문화 유적 산재
모스크바에 있는「레닌그라드 역」에서 (주: 러시아 도시의 기차역들은 모두 도착지 도시 이름이 붙여져 있어 혼돈을 일으키기가 쉽다) 침대특급「붉은 화살호」를 타고 모스크바를 출발한 시간은 밤 11시 55분, 다음날 아침 8시 25분, 우리는 레닌그라드에있는「모스크바 역」에 무사히 도착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러시아 최고의 침대열차를 이용하면서 무사히라는 단어를 굳이 붙인 이유는 간단했다. 빈번하게 나도는 소문과 더불어 실제로 겪은 사람들의 충고와 경고 때문이었다. 모스크바 유학생으로 우리를 페테스브루크까지 안내한 배수환씨의 극성과 조치에 따라 우리는 낭만과 호기심을 일찌감치 버려야 했다. 시건장치만으로는 모자라 노끈으로 별도의 문 단속을 철저히 해야 했던 우리는 붉은 화살호의 특제 홍차 한 잔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러시아까지 와서 도둑이나 강도를 당할 수는 없었으니까….
◆“으슥한” 야간열차
우려 반 흥분 반으로 어정쩡하게 보낸 침대열차 여행이었지만 상트페테스브루크의 아침은 활기 차고 상쾌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어둡고 칙칙하고, 그래서 왠지 우울한 분위기의 모스크바와는 전혀 다른 얼굴이었다.
정말, 페테스브루크는 물 위에 세워진 도시였다. 도심 중앙을 흐르는 네바강 양편으로 펼쳐진 이 도시의 다리는 교외에 있는 것을 포함 모두 6백23개. 네바강 분류, 지류, 운하 등 65개의 강줄기가 흐르는 이 도시에서 이들을 연결해 주는 다리는 모두 독특한 개성으로 페테스브루크의 아름다움을 빛내주는 명물들이었다.
1918년 수도가 모스크바로 옮겨가기 전까지 2백여 년간 제정 러시아의 수도로서 전 정치 경제 문화 예술의 중심지로 발전했던 레닌그라드에서 볼거리가 너무나 많다는 사실은 우리를 행복한 고민에 빠지게 했다.『도대체 무엇을 먼저 볼까』라는 행복한 고민도 잠시 작은 배 한 척을 빌어 떠난 운하여행에서 우리는 너무도 아름다운 성당을 발견하고 탄성을 지었다. 이름하여 스파산 나크라비,「구속성혈성당」이었다.
5개의 각기 다른 모양과 색깔의 돔이 묘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이 성당은 모스크바 붉은 광장의「바실리성당」과 비유되기도 한다. 실제로 바실리성당을 본 떴다는 이 성당은 운하 옆 또다른 명물「이사악대성당」과 함께 목하 수리 중이었다. 금빛 둥근 돔이 웅장함을 뽐내는 이사악대성당은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길이가 111.2m, 폭이 97.6m, 높이가 101.5m에 이르는 매머드급 성당 중 하나이다.
◆많은 볼거리에 고민
1만4천 명을 수용하는 30층 높이의 빌딩과 맞먹는 이사악성당은 22명의 예술가가 그린 성서의 장면과 성인화 등 1백50여 장면의 명화와 화려한 내부 장식으로 우리를 압도했다.
푸른빛과 흰색이 완벽에 가까운 조화를 이루는 스몰리니 수도원과 성당, 그리고 네프스키 대로 마지막 부분에 자리한「네프스키 수도원」역시 빼놓을 수 없는 레닌그라드의 자랑거리인 듯했다. 귀족의 딸들을 위한 여학교로 설립된「스몰리닌 수도원」은 1917년 10월 혁명이 일어나자 혁명작전본부가 설치된 바 있으며 1918년 수도가 모스크바로 옮겨갈 때까지 소비에트 정부가 설치되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현재는 콘서트 홀로 사용되고 있는 이곳은 레닌이 잠시 생활했던 곳이라는 점에서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도스트예프스키, 차이코프스키, 무소르그스키, 루빈스타인 등등 세계적 문호와 음악가의 무덤이 즐비한 네프스키 대수도원은 그 자체가 관광 명소였다. 노란색과 흰색의 단순한 돔의 트로이츠가 키(삼위일체) 성당 내부에는 성 베드로, 바오로의 대형 이콘과 성모 관련 이콘이 유난히 많아 눈길을 끌었다.
◆예술 보고 이사악성당
페테스브루크에서「카잔성당」은 놓칠 수가 없는 장소다. 무신론을 선전하는「무신론 박물관」으로 변신, 역사의 순환과 숙명을 음미하게 하는 이 건물은 양쪽으로 늘어선 94개의 고린트식 기둥이 볼거리 중의 볼거리에 속한다. 로마 바티칸 대성전을 본 떴다는 이 기둥 앞 광장은 10월 혁명 당시 학생들의 집회 장소였다는데 현재는 시민들의 휴식처로 한가하고 평화로운 모습으로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했다.
바실리에프스키섬의 강변에 서서 네바강 건너 레닌그라드에서 가장 오래된 페트로파볼로프스키 요새와 성당, 겨울궁전과 「에르미타주 국립 미술관」을 바라보는 것은 레니그라드 관광의 정석. 특히 소련 최대의 미술관 에르미타주 국립 미술관은 1천50개의 전시실에 총면적이 4만6천 평방미터에 이르며 전시실을 모두 이으면 총 길이가 27킬로메터에 달한다.
2백50만여 점에 이르는 소장품을 잠깐만이라도 보기 위해 무려 5년이란 세월이 필요하다는 에르미타주 미술관은 미의 궁전이라는 애칭이 참으로 걸맞는 러시아 최대 관광 명소가 틀림없었다.『에르미타주를 보지 않고는 러시아를 보았다고 하지 말라』던 모스크바의 안내자 마리아씨의 자랑이 저절로 떠올랐다.
러시아를 비롯 이집트 그리스 로마 페르시아 터키인도 중국 비잔틴 등 세계 고대 유물과 미술품에 팔려 있다가는 서유럽 미술품 관람을 놓치게 된다. 러시아에서 그 일을 놓치게 된다. 러시아에서 그 일을 놓친다는 것은 이른바「아주 어리석은 행동」으로 불리게 된다. 에르미타주와의 만남은 그 의미를 곧바로 풀리게 해주었다.
에르미타주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2대 걸작 리타의 성모, 꽃을 든 성모를 비롯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엘그레꼬 벨라스케스 고야 반다이크 루벤스 렘브란트 모네밀레 르노아르 세잔느 고흐 고갱 드가 쿠르베 등등 세계 화단을 주름 잡은 대화가들의 진품들을 전시실마다 가득가득 보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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