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가14, 25~27: 마태10, 37~38)
지금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십자가의 언덕을 오르려는 여행길에 페레아지방에 머물고 계시다 복음전파의 마지막 단계에 하늘나라에 관한 교훈의 완성적인 마무리를 하시면서 무엇보다도 겸손한 마음가짐을 요구하셨다.
예수의 72제자들은 물론이고 주님을 따르기로 마음을 정한 많은 사람들은 이제야말로 하느님 나라가 곧 올 것이고 주님을 따라 가기만 하면 그 나라에 들어갈 것이라는 기대에 차 있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신 것을 보고 하느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 알고 있었다』(루가19, 11).
그러나 그들이 과연 예수의 마지막 예루살렘 여행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었을리가 없었다. 그 길은 예수의 일생을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으로 마감하는 길이었지만 그 영광은 수난과 죽음을 겪은 다음에야 돌아올 영광이었다.
주님과 함께 여행함은 곧 주님을 따름이다. 그러나 그 길은 순탄치만은 않다. 좁은 길을 가는데 온갖 노력을 해야하고 따라오라는 주님의 손짓에 순순히 따르는 온순함이 요구된다.
오늘 예수께서는 한층 더 어려운 조건을 제자들에게 요구하신다. 그들은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의 반대에도 이를 무릅쓰고 주님을 따랐다. 그리고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마음에 새기기로 하였다.
그러나 예수를 따름은 더 완벽한 마음자세가 요구된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요구한 사항은 이러하다:『누구든지 나에게 올 때 자기 부모나 처자나 형제자매나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수 없다. 그리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충격적인 말씀이다. 우리네 유교윤리에서는 부모 형제가 모든 생활의 첫째 자리에 오며 효가 모든 덕행의 으뜸 자리에 온다. 그 뿐이 아니다. 인간이 금수와 다른 점이 바로 부모에게 효도를 할 수 있다는데 있다. 부모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는 잘 때에도 칼을 벼개 밑에 깔고 자라고 공자는 말하였다. 부모의 원수 갚는 것은 효도의 의무이며 효를 하기 위하여는 살인도 무방하다는 이야기다.
조상의 핏줄을 귀하게 생각하는 유대아인들에게도 동양 못지않게 효는 중요한 사상이었다. 그래서 십계명 제4계명은 『부모에게 효도하라』고 못 박아 놓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불효도 무릅쓰고 나를 따르라고 했겠는가. 본뜻이 무엇이었는가를 살펴보자.
우선 자기 부모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했는데 여기서 「미워하다」라는 말을 원문표현법에 따르면 「뒤로 돌리다」, 「제2차적으로 생각하다」라는 뜻의 표현이다.
이 귀절과 병행되는 마태오(10, 37~38)와 마르꼬(8, 34)를 보면 알 수 있다:『부모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마태오)이라고 하였고 마르꼬는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자기를 버리고…』라고 되어 있다. 그러니 예수의 말씀의 뜻은 이러하다. 극한 상황에서 필요하다면 부모까지도 심지어는 자기 자신까지도 예수 다음 자리에 남겨 놓아야 한다는 뜻이고 궁극적으로는 십자가를 질 각오를 하라는 뜻이다.
극한 상황이란 진리를 따르느냐 효나 자애심을 따르느냐는 갈림길을 말한다. 후에 베드로는 이 말씀을 알아들은 듯 『저희는 가정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라고 하였다. 예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 자녀를 버린 사람은 이 세상에서는 여러 갑절의 상을 저 세상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라고 하셨다(루가18, 29~30). 주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림은 신명기의 레위의 헌신적 모범을 반영한다(신명33, 8~9). 주님은 이 말씀을 하시고 미구에 자기 생명과 세속 유대를 다 버리고 십자가를 지셨다. 부모, 형제, 처자를 세상에 남겨 놓고 십자가를 지는 것이 부모, 형제, 처자를 영원한 생명으로 구원하는 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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