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중동여행의 마지막 목적지인 터이키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 텔아비브의 이스라엘 공항으로 들어섰다.
항공사 카운터로 가서 비행기표와 좌석권을 바꾸려고 줄을 서 있었다. 까다로운 이스라엘 여자 검사원이 까탈을 부리는 것이었다. 왜 이렇게 오래 머물러 있었느냐는둥, 말도 안 되는 일 가지고 트집을 잡는 것이었다.
배낭은 있는 대로 다 뒤집어놓고 먼지 하나 안 빼놓고 탈탈 털어서 검사를 하는 것이었다. 공항 검사대에 마구 엉켜져 있는 나의 짐을 보니 화가 치밀었다.
그 여자는 한국어를 모르고 나는 히브리어를 모르고 서로의 영어 실력은 고만고만하니깐 이 여자가 답답했는지 나보고 일본어를 할 줄 아느냐는 것이다. 가뜩이나 화가 난 상태인데 웬 일본어?
1시간여에 달하는 실랑이 끝에 나는 무사히 출국할 수 가 있었다. 나를 담당했던 그 여직원은 미안했던지 비행기 타는 곳까지 따라왔다.『미안하다. 국가 보안상 어쩔 수가 없으니 이해해 달라』며 용서를 구했다.
터어키의 안탈리아로 향해 가는 비행기 안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이스라엘을 바라보았다. PLO 평화협정으로 이제 조금은 부드러워졌을지도 모를 머나먼 이스라엘, 그러나 그들에게 그런 강인함이 없었다면 이스라엘은 존속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안탈리아에 도착한 시간은 밤 9시경으로 밖은 캄캄했다. 에어컨 때문에 추위에 떨었던 비행기를 빠져나오니 역하고 더운 기운이 나를 덮쳤다.
터어키는 우리와는 노비자협정을 체결하고 있어서 당당하게 심사대에 섰다. 심사원은 나의 여권을 보더니 처음에는『재팬?』하는 것이었다. 내가 코리아라고 하자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이었다.
『네가 사는 코리아가 남쪽이냐 북쪽이냐』하는 것이었다. 나는 남쪽 한국에 살고 확실한 민주주의 나라라고 말을 해주었다.
터어키인들은 한국에 대해서 잘 몰랐고 더군다나 어느 쪽이 공산주의이고 어디가 민주주의인 줄을 모르고 있었다.
이 심사원은 여기저기 확인 전화를 해보고 고참 심사원을 불러 몇 번이고 민주주의 한국에서 왔다고 다짐을 받은 후에야 입국을 허락해 주었다.
공항을 빠져나오니 이미 어둠이 도시를 점령하고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앞이 막막하기만 했다.
저만치 입국 심사대에서 본 적있는 일본인이 공항 앞에서 서성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일본인은 오늘밤 이스탄불로 갈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귀가 번쩍 뜨였다. 사실 나도 이스탄불이 최종 목적지였지만 너무 늦은 지라 내일 가기로 마음 먹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염치불구하고 동행을 요청했다. 그러자 그는 선뜻 응해 주었다. 어두운 안탈리아의 거리는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다. 높은 건물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고 잘 포장된 시골 도로를 달리는 기분이었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매표소로 돌진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오늘 막차는 벌써 떠나 버렸다는 것이었다.
이 시간에 숙소를 잡는 것은 돈이 아깝고 그렇다고 다른 방법도 뽀족히 없다. 하는 수 없이 일본인과 나는 대합실에서 밤을 세우기로 한 것이다.
배낭을 베고 쪼그린 채로 잠을 청했지만 불편하니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겨우 잠이 들라치면 파리가 윙윙거리고 그렇지 않으면 모기가 몸 이곳저곳을 물어뜯는 통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조차 없었다.
거기에다가 청소부가 대합실 청소를 해야 한다며 모두 내쫓는 바람에 땅 바닥에 주저 앉아 밤을 지새워야 했다. 고국에 계신 부모님은 이런 나의 모습을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드디어 이스탄불행 버스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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