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강론의 주제는 「유혹」 이다. 이런 얘기가 있다. 북방 라마교의 고명한 라마(Lama)에게 남방 라마교의 라마로부터 불도 수행자를 모아 가르칠 슬기롭고 거룩한 스님 한 분을 보내 주십사 하는 간곡한 전갈이 왔다. 북방의 대사는 후보 스님을 다섯이나 보냈는데 사람들이 의아해서 까닭을 물었다. 그러자 대사는 『그들 중 단 하나라도 남쪽의 라마에 도착할 수 있다면 우리는 운이 좋은 걸세』라고 대답했다.
다섯 스님이 길을 가던 어느 날, 지나가던 마을에서 심부름꾼이 달려와 길을 막았다. 『우리 마을 절의 주지 스님이 입적하셨는데, 후임자가 꼭 있어야겠습니다』. 보아하니 마을이 꽤 편히 살만한 곳인데다가 주지의 보수도 제법 두둑한 편이었다. 다섯 가운데 한 스님이 중생을 염려하는 마음에 사로 잡혔다. 『내 진정 불자일진대 마땅히 여기 남아 이 마을 사람들을 섬겨야겠지』. 이리하여 그는 일행에서 빠졌다. 며칠 뒤 일행은 왕궁에 머물게 되었다. 그 중 한 스님이 유난히 왕의 눈에 들었다. 『우리와 함께 머물러 주시오. 그렇게 한다면 내 딸과 당신을 결혼시켜 주겠소. 그리고 내가 죽은 후에는 당신이 왕이 될 것이오.』 스님은 왕관에 너무 탐이 나서 이렇게 말했다. 『왕이 되어 다스리는 것 보다 그 무엇이 이 왕국의 백성들에게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겠소? 내가 만약 종교의 뜻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이 기회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불자가 될 자격이 없소.』 그래서 그도 떨어져 나갔다. 이제 세 스님이 갈 길을 재촉했다. 그러던 어느 날, 호젓한 산족 외딴 오두막집에 이르렀다. 그 집엔 아리따운 처녀가 살고 있었는데 스님들을 보자 처녀는 하늘이 보내셨다고 고마워하며 지성껏 모셨다. 산적들에게 양친을 잃고 혈혈단신으로 두려움에 차있던 참이었던 것이다. 이튿날 떠날 시각이 되자 한 스님이 말했다. 『난 이 처자와 함께 있겠네. 내 진정 불자일진대 마땅히 자비심을 궁행해야겠지.』 그는 셋째로 일행에서 빠졌다. 나머지 두 스님은 어느 불교도 마을에 이르렀는데 알고보니 가공하게도 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받들어 온 불교를 버리고 힌두교 세력아래 들이가 있었다. 넷째 스님이 말했다. 『난 여기 남아 이 가엾은 중생을 참 종교로 되돌아오게 할 의무가 있다고 이 사람들과 부처님 앞에 느끼네.』 다섯째 스님만이 결국 남방에 이르렀다. 북방의 대사가 필경 옳게 생각했던 것이다.
좋은 의미의 유혹과 나쁜 의미의 유혹이 있다. 지난해 교황님의 성소주일 담화문에서「젊은이들은 하느님의 유혹에 넘어가 성소에의 길을 가달라」고 말씀하셨다. 이런 것들이 좋은 의미의 유혹일 것이다. 좋은 의미의 유혹에 빠짐은 곧 은총을 뜻한다. 좋은 유혹은 안 보이는 것이며 영혼적인 것이고 하느님께로부터 온다. 그런 유혹은 「주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 유혹에 빠지기가 어렵다. 그러나 나쁜 의미에서의 유혹은 세속적이고 현세적이며 눈에 보인다. 그러고 육체적이다. 이 유혹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찾는 것」이다. 그 주동자는 악마이다. 그러니 어느 누구도 유혹에 안 빠질 수 없다. 일반적으로 유혹이라 하면 후자의 나쁜 의미로 해석된다.
오늘 독서 말씀들(제3독서인 복음 포함)은 모두 「유혹」에 관한 것이다. 제1독서에서 뱀이 여자를 꼬이는 장면이 나오고, 복음은 광야에서의 악마의 유혹사건을 전하고 있다. 예수님 앞에서 악마가 세 가지로 유혹하고 있는데 빵의 유혹, 명예의 유혹, 권금력의 유혹이다. 이 유혹은 2천 년 전의 예수님에게 뿐만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도 끊임없이 주어진다. 그리고 쉽게 넘어간다. 그야말로 잘 나가다 삼천포로 빠진다. 대학입시 부정사건이나 사회 전반에 걸친 뿌리 깊은 부정부패는 결국 악마의 유혹에 넘어간 결과이다.
악마의 유혹 방법은 특이하다. 절대로 한 순간에 꺼꾸러뜨리지 않는다. 시간을 끌면서 끈질기게 달라붙는다. 오늘 제1독서의 애와(Eve)와의 대화에서 보듯 자꾸만 말을 걸어오면서 시간을 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결국 여자는 넘어가고 말았다. 예수님은 다르다. 유혹의 말을 단 한마디로 단호하게 거절하신다. 더 이상의 대화가 필요 없다. 우리도 악마의 유혹에서 헤어나려면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야 한다. 우리는 악마의 유혹에 빠지기 보다는 하느님의 유혹에 빠져야 한다. 그래서 그분의 품안에서 지내야 한다.
사순절이 시작되었다. 이번 사순절은 하느님의 품안에서 안겨 지낼 수 있도록 그분의 유혹하심에 빠져보자. 그리하여 심지어는 사람으로 계속남아 있기로 하자. 남방에 다다른 스님처럼 말이다. 『너희가 오늘 하느님의 음성을 듣거든 반역하던 때처럼 완고한 마음을 품지 말아라』(히브리서3, 15) 『악한 일을 일삼는 자는 누구나 자기 죄상이 드러날까 봐 빛을 미워하고 멀리 한다』(요한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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