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을 모을 수 있다는 것은 운도 따라야지만 특히 오늘과 같은 과학적 산업시대에서는 하나의 재주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아무나 재산을 모을 수는 없다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서에서는 재산에 대한 태도가 늘 문제시되고 예수께서는 이에 대한 적절한 교훈을 내리신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 가기보다는 낙타가 바늘 귀를 뚫고 나가는 것이 더쉽다』 (마태19, 24 : 마르10, 25) 라든가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 (루가6, 20) 라는 말씀을 들을 때 부자가 되는 것 자체가 불행하고 나쁜 일인 것처럼 들리지만 복음성서의 교훈은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복음서에서 경고하는 부자는 탐욕스러운 부자, 돈에만 모든 것을 걸고 있는 인생관의 소유자를 규탄한다. 그래서 『마음으로 가난한 이는 행복하다』고 하였고 특히 제자된 사람들은 가난의 정신으로 살 것을 권고하였다. 오늘 대목에서 바로 그 가난의 정신이 무엇인지를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로써 설명한다. 한마디로 인생을 돈에 걸지 말고 하느님께 걸라는 종교적 교훈이 그 가난의 정신이다.
부자에는 세가지 종류의 부자를 들 수 있다. 악한 부자 (탐욕스러운 부자), 어리석은 (바보) 부자, 그리고 똑똑한 부자가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가난뱅이에도 세가지 종류를 꼽을 수 있다 악한 가난뱅이, 인생을 악하게 살면서 무책임하게 방탕하는 자를 가리킨다. 둘째는 무능한 가난뱅이, 게을러서 제 밥을 찾아먹지 못하는 자를 말한다. 셋째는 마음으로 가난한 이가 있다. 마음으로 가난한 것은 복음서의 용어이지만 돈이나 재물에 집착하지 않고 그 보다 더 귀중하고 높은 가치를 바라보며 사는 사람을 말한다.
우리의 개념으로는 마음으로 부자이다. 없어도 아쉬워하지 않는 사람이다. 물론 똑똑한 부자는 아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어리석은 부자를 놓고 말한다. 비유 이야기의 도입구로서 군중의 어떤 사람이 예수께 유산분배에 개입해 줄 것을 요청하는 사건으로 시작된다.
이 이야기는 루가복음서에만 있는 것으로 지금까지 위선자가 되지 말고 하느님의 섭리에 굳게 의지할 것을 제자들에게 훈시하는 대목으로 이어지다가 느닷없이 재산문제가 끼어드는 것이 좀 이상지하만 위의 문맥과는 상관없이 세상살이하는 지혜를 가르쳐주시는 독립적인 단화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유산분배에 관하여서는 유대아인들은 라삐들을 법적인 판결자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은 전통적으로 모세율법을 해석하는 법관이나 다름없었다. 모세법에 따르면 유산분에는 형이 두몫을 가지고 남은 몫을 동생에게 주도록 되어 있었다 (신명21, 17).
예수께 호소하는 사람은 이 법을 이행하지 않는 자기 형을 타일러서 자기 몫을 가지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예수를 라삐라고 불렀다. 아마 유대아인들의 라삐들이 판결을 불공정하게 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예수님을 난처하게 만들려는 잔꾀였을까.
하여튼 이 세상 재물이 인생의 가치를 둘 만한 것이 못된다는 것을 설파하러 오신 예수께 이런 청을 하는 것은 잘못된 요청이었다는 것을 예수님의 대답에서 알 수 있다.
예수는 그에게 자기가 요청하는 것 이상의 것을 제공하고 있다. 성 아우구스띠노의 말대로 『이 사람은 세상 재산의 절반을 찾아 달라고 요청했지만 주님은 그에게 천국의 재물전체를 제공하셨다』라는 해석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재산분배자로 세웠단 말이야』. 예수의 이 대답은 동족끼리 싸우는 히브리인들을 책망하는 모세를 보고 그 싸움꾼이 던졌던 말과 비슷하다 (출애 2, 14).
예수께서 임명받은 일은 가난한 이에게 복음을 전하고 죄인들을 불러 사하여 주고 (루가5, 32) 길 잃은 이를 도와주고 (루가19, 10),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마태10, 45) 이 세상에 생명을 주어(요한 6, 33) 사람들이 그 생명을 더욱 풍성하게 가지게 하려고 오셨다 (요한 10, 10).
세상 사람들은 우선 오래 살려고 애쓴다. 장수를 바라는 만큼 물질생활의 기본이 되는 재물에 무관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재물은 어디까지나 살기 위한 수단이지 삶의 목적일수는 없다. 이러한 뜻에서 예수께서는 사람들에게 물욕에 빠져 들지 말라고 조심시켰다.
사람이 제아무리 부요하다 하더라도 재물로써 제 생명을 어떻게 달리 할 수는 없다. 재산이 생명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는 것은 웬만한 지성인이면 다 알고 있는 진리이다.
『너희들이 조바심을 한다고 수명을 한 자라도 늘릴수 있느냐』 (마태 6, 27:루가12, 27) . 재물뿐이랴. 사람들이 그토록 탐하는 명예, 권력, 이 모든 것은 결국 생명을 단축시킬지언정 생명을 보장하지 못한다. 결국 재물ㆍ명예등이 사는데 어느 정도는 필요할지모르나 끝내주는 사항은 못된다.
전도서의 지혜는 이 진리를 가르치고 있다.
『헛되고 헛되다. 세상만사 헛되다. 하늘 아래서 치르는 모든 수고가 결국은 사람에게 무슨 이익이 있을 손가…보고 싶은 것 다 보아도 실컷 보지 못하고 듣고 싶은 것 다 들어도 만족이 없으니, 세상만사 속절없이 되풀이 되어 하늘아래 새것이란 있을 리 없다』 <가톨릭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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