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살때 부터 자신을 성폭행해 온 의붓 아버지를 남자친구와 함께 살인한 김보은 피고인이 14일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우리 사회에 충격을 안겨줬던 김보은ㆍ김진관 사건을 계기로 사회의 커다란 환부였던 성폭력 문제의 심각성이 다시금 제기됐다.
그동안 김보은ㆍ김진관 피고인의 무죄석방을 요구하는 서명운동 및 촉구대회가 각계각층에서 일어났으며「성폭력특별법 제정」을 위한 여성계의 움직임이 활발하게 진행됐다.
그러나 성폭력 특별범의 제정만으로는 가정에서, 직장 에서, 혼잡한 거리에서 조차 성폭력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는 2천만의 여성들을 구해줄 수는 없다.
성폭력이 없는 살기좋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법ㆍ제도적 장치를 비롯 여성들을 억합하는 사회-문화적 분위기를 청산하고 올바를 성문화 정착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 성폭력의 범위와 실태
1심에서 징역 4년이 선고됐던 김보은 피고인의 이번 집행유예선고는 12년동안 의붓아버지의 성적 노리개로 비참한 생활을 강요당해 온 피고인의 정상을 참작한 진보적인 판결이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러나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던 김진관 피고인에겐 성폭럭 피해의 제3자로 규정,징역 5년을 선고함으로써「김보은ㆍ김진관사건공동대책위원회」및 변호사 가족들은 상고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근친강간의 심각성을 제기한 김보은ㆍ김진관 사건과 함께△자신을 강간한 남자를 21년후 살해한「김부남사건」이나△두 딸을 10년이 넘도록 강간해 온 아버지가 지난 5월 21일 특수강간죄 등이 적용되어 징역 10년을 선고받은 사건 △의붓아버지와 삼촌이 중1, 국5년생인 딸과 조카를 2년에 걸쳐 상습 성폭행의 구속된 사건 등은 우리에게 커다란 충격과 함께 성폭행의 피해가 얼마나 극심한지를 다시한번 일깨워 주었다. 또한 근친강간에 대한 법적 장치의 미비를 드러내었다.
그래도 이렇게 세상에 밝혀져 재판에 부쳐진 사건들이라고 관계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성폭력의 심각성은 현재 한국 성폭력 발생율이 세계 3위라는 수치가 단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해마다 경찰-검찰에 고발보고되는 강간사건은 평균 5천여건. 그러나 법무부의「범죄백서」에 의하면 강간사건의 신고율은 전체의 2.2%라고 밝히고 있어 통계수치에 나타난 성범죄는 빙산의 일각임을 짐작하게 한다. 특히 신고한 2.2%중 60~70%가 성폭력으로 인정받지도 못할뿐아니라 성폭행의 책임을 뒤집어 쓰고 있는 실정이다.
많은 사람들이 성폭력이라하면 강간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겠지만 성폭력의 범위는 더 넓게 적용되고 있다.
성폭력은 강간뿐 아니라 추행, 성적 희롱, 성기노출, 어린이 성추행, 윤간, 아내 폭행, 강도강간, 등 여성에게 가해지는 모든 신체적, 언어적, 정신적 폭력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개념이다.
이러한 개념에서 볼때 강간은 일부분에 불과하며 추행이나, 성적 희롱 등 다른 성폭력에 시달리는 여성들은 부지기수일 것으로 추측되고있다.
89년의 한 조사는 2천2백90면의 응답 여성중 76.4%가 가벼운 추행을 경험한적이 있으며 심한 추행은 23.7%, 성적 희롱은 48.6%, 강간은 7.7%의 여성들이 경험한 적이 있다고 보고 이러한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 근친강간과 성폭력 특별법
남성중심의 뒤틀린 성윤리, 성폭력 피해여성에 대한 사회의 무관심 등에서 비롯된 김보은ㆍ김진관 사건은 보여주는 단적인 사건이다.
김진관국의 변호를 받은 암종인 변호사는『근본적으로 사회가 변화하지 않는 한 이런 일이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하면서『법이 마땅히 처벌해야 할 사람이 처벌하지 못하고 자신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으로 방어하기 위해 정당방위를 한 사람들은 어떻게 처벌할 수 있겠느냐』면서 진관이의 무죄를 주장하고 성폭력범에 대한 강력한 처벌기준을 마련할 것을 강조했다.
현행 강간법은 △피해자가 직접 신고해야 하는 친고죄이며 △공소시효가 6개월로 짧고 △16세이하는 증거로 채택되지 않아 어린이 성폭행의 경우 증거제시가 어렵다는 점 등 많은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또한 근친강간의 경우 직계비속이 직계존속을 고소하지 못한다는 현행법은 친고죄와 상호모순돼 최근 성폭력의 10%를 차지하고 있는 근친강간사건의 해결에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현행 성폭력범죄가「정조에 관한 죄」로 되어 있어 여성을 자기결정권을 지닌 인간으로 보지않고「지켜야할 정조」만을 지닌 대상으로 보도록 함으로써 성폭력을 사회적 법죄로 인식하기 보다는 개인적 차원의 불행으로만 인식, 결국 피해자로 하여금 피해사실을 은폐하거나 자살, 가해자를 살인하도록 하는 극한상황으로 치닫게 하고있다.
이번 김보은ㆍ김진관 사건을 계기로 여성계에서는 무엇보다 성폭력의 추방을 위해서는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올바르게 처벌하는 법규정 및 법집행이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성폭력 특별법 제정추진 특별위원회는△성폭력의 법적 개념을「정조에 관한 죄」에서「성적 자기 결중권에 대한 침해죄」로 △성폭력 범죄의 유형화의 세분 △친고제 폐지 △비공개 수사니 재판 등을 새로이 규정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성폭력의 추방이 비단 법규정을 강력히 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성폭력을 방지할 강력한 법규와 동시에 사회일원들의 의식변화, 향락ㆍ퇴폐산업의 척결이 이루어져야 한다.
■ 의식전환의 필요성
많은 피해여성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사회내에 성폭행의 심각성이 두드러지지 못한 것은 무엇보다도 성에 대한 잘못된 통념때문이다.
가부장적인 구조속에서 살아온 여성들은 순종과 아름다운 외모를 최고의 덕목으로 교육받아 왔다. 또한 여자에게 순결은 생명과도 맞바꿀수 있는 귀중한 것으로 가르치면서도 남성에겐 한때 저지를 수 있는 실수이며 이것은 용기있고 남성다운 행동으로 받아들여 지기도 한다.
이러한 이중적인 성규범속에서 성폭력은 대부분 여성들이 부주의하거나 유발했다는 식으로 인식돼 오히려 피해자인 여성이 사회적 지탄를 받아왔으며 이들 여성들의 신체적, 정신적 및 사회적 피해는 점차 심각해져 가고 있다.
요즘 미니스커트가 온거리를 휩쓸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미니스커트가, 여기에 따르는 아슬아슬한 장면과 야한행동들이 성폭력을 유발하고 있다』고 하나 이것은 당연히 여성의 성을 상품화하는 사회적 풍토가 만들어 낸 의식이다.
우리는 아프리카의 여인들이 거의 가슴을 드러낸 모습으로 자기나라의 거리를 돌아다녀도 성폭력을 유발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지 못하고 있다.
한국 성폭력상담소 최영애 소장은『70%의 성폭력이 대부분 아는 사람들에 의해서 또는 계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면서『남성과 여성이 평등한 주체로서 인간적 교류를 통해 이루어진 성행위만이 진정한 성으로 인정되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의식의 변호를 가져올 수 있는 체계적인 성교육을 실시, 청소년들이 이중적인 성규범에서 벗어나고 또한 향락ㆍ퇴폐문화에서 스스로가 유해환경에 비판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 향락, 퇴페문화의 만연과 성폭력
불법비디오나 서적, 퇴폐 이발소, 침실을 갖춘 레스토랑은 이제 이땅 어디서나 쉽게 구경할 수 있다.
범람하는 향락ㆍ퇴폐산업속에서 가장 피해를 당하는 사람들은 바로 청소녀들이다. 변태적이고 폭력적인 선행위 등의 내용을 담고있는 불법 비디오나 서적을 통한 반복적인 성에 대한 자극은 청소년들의 폭력적인 성행위의 충동을 잠재하게 한다.
인지적 발달이 완성되지 못한 청소년들에게 내재한 성충동이 종종 폭발돼 심각한 청소년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법무부의 범죄백서에 의하면 강간범중 34.9%가 19세이하로, 이들은『비디오나 잡지에서 본 남녀관계의 장면이 눈앞에 어른거려 참을 수가 없었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룸살롱, 카페, 요정, 안마시술소, 터어키탕, 러브호텔 등의 향락업소와 술 접대문화는 성이며 폭력적인 성행위와 성폭력을 부추기고 있으며 사회적 문제인 인신매매를 횡행하게 하고 있다.
불법 비디오 및 영화, 서적 등의 제작을 금지하는 법적 규제의 강화는 금지하는 법적 규제의 강화는 물론 이러한 퇴폐ㆍ음란물들이 발붙일 수 없도록 지속적인 캠페인을 벌여 나가 청소년들이 음란매체를 통해 왜곡된 성지식을 습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 성폭력위기센터와 성폭력 상담기간
성폭력의 방지와 함께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사업은 매년 25만명의 성폭력 피해자들을 보호하고 상담해 줄 상담기관 및 쉼터의 마련이다.
성폭력 피해자들은 대부분 불면증, 우울증, 무기력증에 시달리며 약물중독 및 자해행사회적 부적응 상태에 놓이기도 하기 때문에 신체적 손상에 대한 치료뿐만 아니라 정신적, 사회적 치료까지 병행해야 한다.
여성계에서는 성폭력의 피해자들을 의료적, 법적 보호를 지원해 줄 제도적인 장치로서「성폭력 위기센터」의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 가톨릭 여성연합회도 성폭력 위기센터의 설립에 동참하고 회원 개개인이 사업기금을 지원하고 있다.
가톨릭 여성연합회 이근자(로사) 총무는『김보은사건의 피해자들을 지원할 전문기관이 있었더라면 사람이 죽는 경우까지 갈 수 있었겠느냐』고 말하면서『여성연합회 사무실에 성폭력 위기센터 설립 회원신청서를 배치, 여성연합회 회원들도 함께 동참하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성폭력 위기센터는 성폭력패해 여성들의 인권보호를 위해 수사기관, 법원, 병원과 전문의료진, 변호사, 성폭력 전문상담원들과의 긴밀한 협조체제 아래서 신체적, 심리적, 법적 조치를 효과적으로 처리하게 된다.
현재 성폭력의 피해를 전문적으로 맡고 있는 상담기관은 지난해 4월 문을 연「한국 성폭력 상담소」 (소장ㆍ최영애) 이며 가톨릭의 경우 성폭력만을 전담하고 있는 상담기관은 없지만 가톨릭 사회복지회 (회장ㆍ이원규 신부) 의「나눔의 전화」가 상담업무를 실시하고있다.
▨한국 성폭력 상담소 (02) 522-1040~2
▨가톨릭 사회복지회 나눔의 전화 (02) 752-4411. 4413
이번 김보은ㆍ김진관 사건을 계기로 여성계에서는 성폭력의 추방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올바르게 처벌하는 법 규정 및 법 집행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현행강간법은 피해자가 직접 신고해야하는 친고죄이며 공소사효가 6개월로 짧고 16세이하는 증거도 채택되지 않는 등 문제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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