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카 전서 이외에 주님의 재림을 전하고 있는 복음서의 경우를 보아도 주님의 재림을 두번 나누어 설명한 것은 찾아 볼 수가 없다. 마지막 날 주님의 구절들은 마태 24, 29~31: 마르 13, 24~27: 루가 21, 25~28이다. 그러나 그 어느 구절에서도 주님의 재림이 두번 있을 것이라는 말이 없다. 오히려 이곳에서는 재난의 기간이 지나면 곧 사람의 아들이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권능을 떨치며 영광에 싸여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게될 것이며, 사람의 아들은 울려 퍼지는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어 그가 뽑은 사람들을 하늘 이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불러 모을 것이라고 한다. 이처럼 위의 구절들에서는 주님의 재림은 모든 환난이 끝난 다음 곧 세상의 종말과 연결을 갖고 있으며, 거짓 예언자들이 그리스도가 이미 왔다고 말하는 것에 대하여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데살로니카 후서 2장에서도 분명하게 주님의 재림은 모든 환난의 시기 다음에 오는 것으로 어느누가, 비록 성령의 도움을 받았다고 말하더라도, 주님의 날이 왔다고 하더라도 그 말에 현혹되지 말라고 경고를 하고 있다.
결국 우리들에게 있어서 확실한 것 한가지는 성서안에서 휴거라는 말은 현재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말하고 있는 식으로는 어느곳에서도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주님의 오심에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이나 모두 변화하여 (1고린 15, 52) 함께 그리스도를 맞이할 것이며, 이 후에는 공심판의 날이 될 것이다 (2데살 1, 7 : 2고린 5, 10 : 2디모 4, 1참조).
2ㆍ주님의 날
(1) 주님의 지상 재림의 해 :1999년
시한부 종말론자들은 주님 재림(지상 재림)의 해를 1999년으로 잡고 있다. 그들의 이 근거는 베드로 후서 3장8절에 의하여 창세기 1장을 해석함으로 생기게된 것이다. 2베드3, 8에 보면『사랑하는 여러분, 이 한 가지를 잊지 마십시오. 주님께는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 같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에 의하여 창세기 1장의 6일 창조설을 인간의 시간으로 환산을 한다고 한다. 즉 하느님 앞에서의 1일은 인간들에게 있어서 1천년에 해당한다고 하는 것으로, 6일 동안의 창조는 바로 인간의 역사를 말하는 것으로 우리들에게 6천년에 해당하는 기간이라고 하며 하느님께서 안식을 위하신 마지막 7일째는 천년왕국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류의 역사는 구약이 4천년이며, 인류의 역사 6천년에서 4천년을 빼면 신약의 역사는 2천년이 남게 되는 것이다. 다시말해 2천년에는 하느님의 창조 7일째에 해당하는 해로서 안식일 즉 천년왕국에 들어가는 해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인류의 역사는 1999년에 종말을 고하여야 하며, 이때가 바로 그리스도의 지상 재림이 이루어지는 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의 재림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 사도 베드로는 시편 90편 4절의『그의 눈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와 같다』라는 말을『주께서는 하루가 천년과 같다』라는 말로 인용하면서 독자들에게 인간의 시간 개념들이 하느님의 시간 계획을 이해하는 데는 전혀 쓸모가 없다는 것을 밝히고 있는 것이지,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계산하는 것과 같이 하느님 앞에서의 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닌것이다.
또한 우리는 창세기의 6일 창조 이야기도 하느님께서 우리가 생각하는 날자대로 꼭 6일 동안에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일곱번째 날에는 쉬셨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창세기의 창조 설화는 누구나 쉽게 암기할 수 있도록 배려한 종교교육적 의도와 예배에서 찬미가로 부를 수 있도록 전례적인 목적하에 만들어 졌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즉 창세기의 저자는 이 이야기를 통하여 모든 만물이 하느님의 말씀과 행위에 의하여 비로소 생겨났을을 우리들에게 말하여 주고 있는 것이지 역사적 사실을 확인하여 주는 것이 아니다.
(2) 대환난의 시작: 1992년
시한부 종말론자들은 다니엘 7, 24~27과 9, 24~27을 인용하면서 1992년을 적그리스도가 나타나는 해이며, 바로 대 환난이 시작하는 해로 말하고 있다.
다니엘은 예레미아서 25장 11절 이하의 70년을 70주간으로 이해하면서 이것을 7, 62, 1「주-해」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즉, 587~539, 539~170, 170~164). 여기에서 587년은 이스라엘이 바빌론으로 끌려가던 해이요, 539년은 바빌론이 멸망한 해이고, 170년은 대제사장 오니아스 3세가 살해된 해이며, 마지막 날짜는 유다 마카베오에 의해서 성전이 다시 헌당된 해이다. 그러기에 마지막 한 주간은 침략군의 장군에 의해 다스려지는 주간으로 햇수로는 7년이 되는 것이다. 즉 저자는 이곳에서 매일 바치는 제물을 금지시킨 안티오커스의 명령을 이 시기의 중간 지짐에 위치시킨다 (167년 기슬레우 월15일이나 25일). 비록 저자는 아직 그것을 알수 없었지만 이 그보다 조금 더 지난 기간동안, 즉 우리의 12월에 해당되는 주전 164년 기슬레우 월25일까지 계속 되었다. 유다 감정을 더욱 괴롭힌 것은 번제제단 모퉁이에 제우스 올림피우스에게 희생제를 바치기 위한 배틸 (baetyl) 을 세운것이다.
그러하기에 다니엘 9, 26의『기름부어 세운 이가재판도 받지 않고 암살 당하며』를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 시키기 위해 이 예언의 시작의 해를 기원전 444년 느헤미아에 의하여 예루살렘의 성벽이 재건되던 해로 잡는 것이나, 예수님의 공중재림 (1999년) 사이 7년이라는 환난을 말하기 위해 62이레 다음 1이레까지의 교회의 시기로 계산하여 내는 것은 성서적으로 해석한 것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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