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교회는 물론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생활의 새로운 상황은 특별히 평신도들의 행동을 절실하게 촉구하고 있다. 무관심이란 언제나 용납될 수 없는 것이지만, 지금은 더욱 비난을 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저 빈둥거리기만 하는 무관심은 어느 누구에게도 허용되지 않는다」(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회칙「평신도 그리스도인」제3항). 평신도들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권유하고 있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이 말은 평신도들이 교회와 사회 참여에 무관심할 때 바로 직무유기죄를 범하는 것임을 일깨워주고 있다. 또한 이 경고의 말은 오늘날 살고 있는 한국 천주교회 평신도들에게 자신의 삶을 총체적으로 반성할 것을 묵시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구조화된 불신의 뿌리가 갖가지 모순과 부조리로 매일같이 드러나고 있는 오늘의 사회 현실을 감안할 때 한국 천주교회 3백만 신자들이 과연 교회와 사회에서 무엇을 했는지 자성하지 않을 수 없다. 가톨릭신문은 평신도 주일을 맞아 국가와 사회의 총체적 위기를 극복하는 데 실천해 나가야 할 평신도들의 역할과 자세를「3백만 평신도 깨어나야 한다」를 주제로 3편의 기획을 연재, 교회와 가정, 사회 안에서의 평신도의 소명과 사명을 재점검해 본다.
얼마 전 한 사회여론 조사기관이 조사한 자료에서 우리나라 국민 총인구보다 종교 인구 수가 훨씬 많은 수치를 기록해 화제가 된 바 있다.
또한 공신력을 최고로 하는 정부의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국민 전체 인구 수의 약 54%가 어떤 형태로든 종교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토록 대다수 국민들이 종교와 신앙을 갖고 있는데 사회 전체에서 부조리와 날림이 판치고 인면수심의 흉악범죄가 늘어가는 까닭은 왜일까?
한 마디로 선을 지향하고 사회를 순화시켜 나가야 할 개개의 종교인들이 자기 역할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책임 지울 수 있다.
특히 교회와 세상 안에서 하느님 나라를 구현할 사명을 직접적으로 부여 받은 한국 천주교회 평신도들은 그 책임을 더욱 통감해야 한다.
결국 평신도들이 교회가 자기 정화와 사회 쇄신을 위해 변죽만 울려왔지 실제 생활에서는 일반 사회인들과 다를 바 없이 살아왔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만 경우가 됐다.
오늘의 평신도들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일상에서 신앙과 생활이 유리돼 있다는 점이다.
교회가 활기를 찾고 사회를 쇄신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신앙 따로 생활 따로」라는 이원론적 사고방식을 극복하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한 평협 위원은『평신도 스스로가 자신의 신원에 대해 깨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교회에 속해 있을 뿐만 아니라 평신도 자신이 바로 교회라는 분명한 의식을 깊이 숙지하고 있어야지만 삶의 현장 안에서 역동적인 교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들 평신도 지도자들은 지난번 한국 평신도사도직협의회가 주최한 제2차 아시아평신도대회에서 앞으로의 평신도사도직 활동 방향이 도출됐듯이 평신도들의 사회교리 교육과 실천 여부가 미래 교회와 사회를 지탱할 버팀목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따라서 교회 사목자들과 평신도 사도직 단체, 교회 언론들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어릴 적부터 교회와 사회에 제 몫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도록 교육과 미래의 교회 지도자 양성에 총력을 모을 필요가 있다.
◆평신도 단체 - 사목자 의견 집행기구 “전락”
교회의 여러 단체 안에서의 평신도 활동은 극히 필요한 것이며, 이것 없이는 사목자들의 사도직도 효과적으로 수행되지 못하는 수가 많다.
그러나 이들 평신도 단체들의 교회 안에서의 활동을 본다면『교회의 친교와 사명에 능동적으로 참여한다』는 본래의 취지와는 달리 사뭇 그 활동이 변질돼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평신도 단체의 사도직 활동을 대표하는 평신도사도직협의회와 사목위원회가 각 본당과 교구에 구성돼 있지만 솔직히 이들 단체들이 사목자들의 사목 방침을 실현시키기 위한 일개 조직으로서 수동적 기능과 역할만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 유수의 평신도 사도직 단체들이 교회적 친교를 반영하기는 커녕 서로 갈라져 대립하고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
아울러 본당뿐 아니라 교회 전체적인 분위기가 성직자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고, 성직자가 주인이고 평신도들은 사목의 대상일 뿐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는 경우를 흔히 본다.
이는 원천적으로「참여와 친교」를 표명하는 교회의 본질을 평신도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교육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 평협 위원의 말처럼 평신도들의 교회 안의 역할을 따질 때 단지 본당 안에서 발언권이 없다거나 본당 활동이 소극적이라는 평가가 아닌 평신도들이 교회에 관해 왜 문외한이 됐는지를 먼저 되짚어 봐야 한다.
평신도 단체, 특히 평협과 사목위가 구태를 벗고「교회의 친교와 일치」의 표지가 되려면 우선 단체의 본질을 규정 짓는 교회성의 기준을 새로이 마련해야 한다. 친교와 일치는 말 그대로 높고 낮음, 잘남과 못남이 없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사랑의 영원한 일치와 친교를 반영하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평신도 단체들을 평가하는 기준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잘 말해 주고 있다.
첫째로「모든 그리스도인이 성화 소명을 으뜸으로 삼는 우위성」둘째로「가톨릭 신앙고백의 책임」, 셋째「확고하고도 진정한 친교의 증거」, 넷째「교회의 사도직 목적에 대한 순응과 참여」, 다섯째「인간 사회에서 교회의 현존을 위한 투신」등이 그것이다.
평협을 위시한 본당 사목위와 각 사도직 단체들은 교황이 제시한 이 기준들을 쇄신의 틀로 삼고 재무장해야 한다.
원론적인 지적이지만 평신도 사도직 단체는 더이상 사목자들의「보조적인 팔」로서가 아닌 진리에 갈증을 느끼는 모든 사람들이 찾아드는「동네 샘」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불목의 대상이었던 각 단체들의 화해가 선행돼야 할 것이다.
◆여성의 참여 - 근로봉사에만 주력
교회 안에 여성들이 없다.
3백만 한국 천주교회 신자들 중 65%가 여성들인데 무슨 소리냐고 반문할지 몰라도 교회의 생활과 사명이 있어서 여성의 참여는 너무나도 부족하다.
더욱이 교회의 일상적인 행사 참여와 단체활동을 제외하고는 교회 안에서 마땅히 설 만한 여성들의 지위와 자리가 마련돼 있지 못하다.
남녀 평등과 여성의 존엄성이 부각되는 사회와는 달리 교회에서만은 여성의 역할이 보장 받지 못하고 있는 까닭은 왜일까? 각 본당 사목위에 여성분과가 있고 교구와 전국 차원의 여성연합회가 사도직 단체로서 존재하지만 그 역할이 인력 동원과 근로봉사에만 한정돼왔고 여성들의 역량이 소원했던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다.
여성들이 만년 교회 안에서 보충역 노릇을 해오고 있지만 남성에 비해 좀체로 그 활동의 폭이 진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교회 역시 신자의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여성들의 역량을 어떻게 교회 안으로 끌어들이느냐가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교회 안에서 여성의 존엄성을 신장시키는 임무를 누군가 맡아야 할 사람이 있다면 그는 바로 여성 자신이다.
여성 스스로가 자신들의 고유한 존엄성을 의식하고 교회의 공적인 활동에 참여의 폭을 넓혀나갈 기회를 개척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가정과 교회 문화분야에 여성 사도직의 영역을 넓혀야 할 것이다.
교회는 또한 윤리 도덕의 가치가 전도된 사회에 여성의 고유한 감수성을 가지고 인간성을 회복하고, 생명의 문화를 건설해 나가는데 여성들이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충분한 배려를 해줘야 한다.
여성들 또한 스스로를 교회생활에 있어서 보잘 것 없는 사람으로 여기고 있는 소극적 자세에서 탈피하기 위해 여성 사도직 지도자 양성에 심혈을 기울여 나가야 한다.
◆청년단체 - 교회 내 담당 역할 실종
교회가 고령화되고 있다.
지난번 한국 평협이 주최한 제2차 아시아 평신도대회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듯이 한국 천주교회를 이끌어갈 젊은 지도자들이 없다.
본당 사목회를 대표하는 위원들 전체가 40대 이상이다.
전국의 30대 청년 신자들이 본당에서 설 자리가 없어진 지가 이미 오래됐다.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교회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면서도 교회가 젊은이들의 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은 젊은이들의 교회 이탈율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사회적으로 왕성한 활기를 뿜어내는 30대 청년들이 사목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것은 교회의 사목 대상과 언로가 얼마나 편중돼 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본당 사도직 활동이 다양한 연령층이 아닌 일정 연령층에 편중되는 현상은 한국 평신도 운동의 취약점이며 시급히 개선해 나가야 할 과제 중의 하나이다.
일각에서는 젊은이들을 단순히 교회의 사목적 관심의 한 대상으로만 간주하고 있는 것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젊은이들은 실제로 복음화의 주역으로서 그리고 사회 개혁의 참여자로서 교회를 대신해 행동해야 할 사람이고 또 그렇게 행동되도록 격려 받아야 될 사람이다.
젊은이들이 교회 정신에 따라 교육되고 양성되지 못한다면 이들의 능동적인 교회와 사회 참여를 기대할 수 없다고 평신도 지도자들은 강조한다.
교회의 젊은이들이 유년기 소년기에서부터 교회 사도직 활동에 대한 귀중한 가능성을 인정 받고 교육됨으로써 훌륭한 평신도 지도자로 양성될 수 있도록 세심한 관심과 배려, 기회가 더욱 요청된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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