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가14, 28~33)
예수의 제자 되는 조건은 모든 것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자기 목숨까지 버려야 했는데 조건은 이에 그치지 않고 맡은 일을 추진하는데 심사숙고를 요구하는 진지함과 어떤 난관도 참고 견디어야 하는 인내심이 요구된다. 그것은 제자들이 개척해야 할 하느님 나라가 그만큼 귀중하다는 뜻도 된다.
예수께서는 그만한 값어치가 있는 하느님 나라를 여러 가지 비유로 설명하신다. 값비싼 진주에 비기기도 하고 숨겨진 보화에 비기기도 하며 그 나라를 얻는 데는 무진 애를 써야 한다고 가르쳤다.
오늘은 탑의 비유와 전쟁의 비유로써 신중한 작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가르치신다. 먼저 포도원을 가지고 있는 주인이 자기 포도원을 잘 지키려면 망대가 필요할 것이고 그 망대는 보통 원두막과는 다른 튼튼한 방위용탑이어야 한다.
그런데 탑을 가지려는 의욕만으로 일이 되는것은 아니다. 탑을 짓는 데는 용의주도한 계산이 먼저 있어야 한다. 그러고 그 계산은 그만한 돈이 요구된다. 이런 일에 예산도 없으면서 무턱대고 일에 착수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며 일을 시작만 해놓고 끝내지 못한다면 사람들의 웃음거리만 될 것이다. 하물며 하느님 나라를 개척하는 주님의 제자들이야 세속일의 낭패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두번째 비유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말씀인데 다만 청중의 생활에서 취한 이야기 내용이 아니고 국민을 다스리는 중책을 지닌 왕의 이야기이다. 아마도 이 이야기는 당시 유대아의 왕 헤로데 안티파스가 형수인 헤로디아와 결혼하기 위하여 인접국 나바테아의 왕녀와 맺었던 결혼을 파기한 것이 기화가 되어 일어난 전쟁을 배경으로 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 전쟁에서 헤로데는 패망하였다.
이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했다면 적국의 임금이 강력한 군사력을 거느리고 쳐들어오는데 공격을 받고 있는 왕은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이 싸움을 쳐 이길 수 있는 수단이 나에게 있는가를 먼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만일 역부족이라고 판단되면 그에게 남은 일은 일이 늦기 전에 사신을 보내어 화평을 요구하는 것뿐이다. 이 경우 항복은 자멸보다 낫다. 그러나 항복은 굴욕을 참아 받아야 한다. 굴욕의 대가로 나라를 파멸에서 구한 것이다.
탑을 지으려는 한 농부의 이야기와 전쟁을 치러야 하는 한 왕의 이야기를 든 쌍 비유는 같은 교육적 목적을 가진다. 이 쌍 비유가 가르치는 교훈은 일을 시작할 때에 먼저 생각하라. 그 다음에 행동에 옮기라는 신중성이다.
예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하느님 나라를 이룩하고 개척하는 일을 맡는다는 것이며 이 일은 일시적인 기분에 흥분되어 일어 달려드는 모험과는 다르다.
그 일은 탑을 세우는 포도원 농부의 치밀하고 합리적인 예산 탐색이 필요하며 강한 적군을 요리해야 하는 현명성과 재치 있는 판단력이 필요하다. 사단은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일을 망가뜨리는 것을 목적으로 활동하며 사람들에게 개인적인 자존심을 건드리고 명예심을 부추기며 가장 좋아 보이는 것을 내밀고 그 뒤에 숨어 있는 독소를 감추고 있다.
예수의 제자된 사람은 모름지기 일의 진행을 꿰뚫어 보는 형안을 가져야 한다. 이렇게 하느님의 일을 해내는 원동력은 자기를 비우고 예수를 따르는 마음자세이다. 예수를 따르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자기 죄를 뉘우치고 예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믿음을 가지는 사람, 세상일을 처리하는데 자기 판단에만 의지하지 않고 예수의 정신을 따르는 사람, 일생을 예수의 일에 몸 바치는 사람, 이 사람들은 다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의 유형이다.
사도들은 맨 나중 부류에 속하는 제자들이다. 주님의 포도원에 탑을 짓고, 주님의 전쟁에서 백성을 보호하는 일에는 현명과 사랑이 동시에 필요하다. 자기를 버리지 않으면 현명과 사랑은 나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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