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연중 제33주일로서 전례력으로 봤을 때 이제 마지막 시기의 절정에 이르고 있습니다. 다음주에는 세상 끝날에 왕으로 오실 그리스도를 상기하면서 긴 연중시기는 막을 내립니다. 오늘 성서의 내용은 그래서 마지막 시기, 즉 종말에 대한 메시지가 전달되고 있습니다.
끝날은 옵니다. 분명히 옵니다. 이것은 개별적인 운명의 종말뿐만 아니라 세계 전체의 보편적인 종말도 마찬가집니다. 오늘 예수께서는 묵시문학적인 표현을 빌어 주님의 구름을 타고 권능을 떨치며 영광에 싸여 올 것이며 그때에 사람의 아들은 천사들을 보내어 땅 끝에서 하늘 끝까지 사방으로부터 뽑힌 사람들을 모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본래 유대인들은 역사 안에서 건설될 하느님의 나라를 꿈 꿔 왔습니다. 그것은 역사와 지상을 초월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날 때가 되면 다윗의 후손에서 메시아가 등장하여 이상적인 세상, 즉 지상왕국이 바로 이 땅 위에서 영광스럽게 세워지리라 믿었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예언적 종말론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도 그와 같은 이상적인 지상왕국은 희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유대인들은 참담한 유배생활과 모진 식민생활을 거치면서 이제 그들의 미래가 얼마나 암담하고 절망적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한 마디로 다 틀렸습니다. 역사 안에서 기대했던 지상왕국은 영원히 비관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등장된 것이 묵시적 종말론입니다.
묵시적 종말론이란, 우리가 기대했던 이 세계가 우주적인 대 재난에 의하여 완전히 파괴되고 붕괴된 후에 사람의 아들이 구름을 타고 세계 밖으로부터 권능을 떨치며 와서 초역사적이고 초지상적인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도 이 표현을 쓰셨지만 그러나 이 종말론은 많은 오해를 일으켰습니다.
사람들은 종말에 대한 묵시문학적인 표현에 대해 성서의 원문이 말하는 그 이상으로 해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초기 교회에서도 예수님이 살아계실 당시에 종말이 오리라고 믿었고 적어도 그들의 세대가 눈 감기 전에는 사람의 아들이 구름을 타고 올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종말은 오지 않았습니다. 종말에 대한 혼란만이 있었습니다.
종말론에서 항상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그날」이 언제냐 라는 것입니다.
『선생님,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마르 13, 4)라는 질문은 2천년 전이나 오늘이나 항상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기는 모릅니다. 다만 끝날이 분명히 있다는 것만 확실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소위 시한부 종말론이 19세기 중엽, 미국에서부터 등장하더니 급기야는 우리나라에까지 번져 벌써 십여 차례 사회를 떠들썩한 혼란 속에 몰아넣기도 했습니다. 특히 1992년 10월 28일에 세상 종말이 온다고 외쳤던 다미선교회는 그 대표적인 예였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천주 성부만이「그날」을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가짜 하느님들이 득실거렸던 것입니다.
시한부 종말론을 외치는 이들의 속 마음은 뻔합니다. 신도들에게 위기의식을 불어넣어 단시일 내에 교세를 확장시키고 또한 재산을 헌납 받음으로써 부를 축적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도들은 그 속내용을 모릅니다. 오히려 사이비 교주의 기만에 따라 순교라도 하겠다는 각오들을 드러내니 그 어리석음에 한심스러울 뿐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모든 상황들은 종말이 이미 벌써 시작되엇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거짓 예언자들의 출현은 물론 심각한 환경오염과 그리고 낙태로 인해 살해되는 수많은 무구한 생명들을 바라볼 때 세대가 이미 마지막 시대에 와 있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징조가 뚜렷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래서 시대의 징표를 깨닫고 회개해야 하며 그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1독서(다니 12, 1~3)에서 다니엘은 착하게 산 사람들은 끝날에 영광을 받고 악하게 산 사람들은 단죄를 받는다는 내용을 전하면서 따라서 인생이 죽음으로 아주 끝장이 나는 것이 아니라 어느날엔가 모두 다시 살아나 영원한 행복과 불행을 각각 차지하게 되리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먼지로 돌아갔던 인생은 다시 일어납니다.
구약에서 부활신앙은 크게 진전된 것이 없지만 그래도 오늘 다니엘서를 보면 부활에 대한 최초의 믿음이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끝날은 있고 심판도 있으며 우리는 우리가 행한 대로 상이나 벌을 받게 됩니다. 지금은 감춰져 있지만 그날은 다 드러나게 됩니다. 계절적으로도 반성과 다짐의 시기입니다. 부활에 대한 희망으로 종말을 향해 당당하게 걸어갑시다.
끝날을 잘 맞이하는 것이 세상을 잘 산 사람이고 또한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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