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주의란 일반적으로 경험주의와 합리주의로 대표되는 1600년대에 확산된 철학체계의 결실이다. 경험주의가 감각을 우리 인식의 유일한 원천으로 삼고 선천적인 관념을 거부하며 실험적인 방법에만 의존하면서 감각적인 방법과 관념적인 인식 사이의 모든 차이점을 부정하는 체계라면 합리주의는 감각을 신뢰하지 않고 이성적인 인식에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며 이성을 유일한 가치로 받아들이는 철학체계이다.
겉으로는 두 철학체계가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성을 초월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주관적인 판단에 진리의 기준을 두려는 자세는 공통된다 하겠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인간의 자립적인 능력을 과대 평가하는 계몽주의(라틴 IIIu―minismus : 영 Enlighten―ment : 독 Aufklarung)의 실체를 확인하는 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계몽」이란 말은 원래「빛이 들게 하여 어둠을 밝히는 것」을 뜻한다. 즉 암흑과 같은 무지 속에 있는 인간을 비추어 지식이라는 광명에로 해방시킨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는데 계몽주의란 무지몽매한 상태에서 살고 있는 인간들을 이성에 토대를 둔 지식을 갖추어 일깨우자는 사상운동이다. 이 사상은 영국으로부터 시작하여 프랑스를 거쳐 독일에까지 보급되어 급기야는 전 유럽에 확산되어 이 시대를 특징 짓는 사상으로 등장하면서 현대사의 각 분야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쳐 근대사의 새 지평을 열었다.
이 사상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여 실천하고 전파하는 자들을 계몽주의자들이라고 하는데 이들은 이성의 이름으로 정신의 자유를 쟁취하므로써 일체의 낡은 전통과 관습을 거부해야 한다고 주창하였다. 이 사상의 특성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이성을 인간 정신활동의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았다. 이 사상에 의하면 이성은 모든 시대와 모든 민족에게 있어서 동일한 길이요 진리의 절대적인 규범이라고 한다. 그리고 고정된 진리, 불변의 진리를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느님이나 계시, 또는 교회와의 연관관계를 배제한 상태에서 인간 이성의 힘과 절대성을 강조하였다.
② 인간 본성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드러냈다. 즉 인간은 그 본성 자체로 착하며 원죄로 인해 부패하지 않았기 때문에 위로부터 내려지는 인간 구원이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원죄나 원초적 행복의 상실이라는 것은 부정되거나 제2차적인 문제로 다루어졌다. 그리고 인간은 자신의 행복을 쟁취할 것이며 진리를 발견하여 좋다고 생각하는 자기 판단에 따르라고 하면서 신앙의 도움 없이도 인간 이성 자체로 인간이 궁극적인 자기 완성에 이를 수 있다고 하였다.
③ 과거의 가치에 대한 경멸이다. 계몽주의자들은 과거를 마치 어둠의 시대처럼 경멸하고 현재와 미래를 빛의 시대로 찬양하였다. 그들은 오늘날까지 사회를 지배하였던 어둠의 책임은 자유로운 인간을 초월적인 계시의 노예로 변형시킨 교회에 있다고 하였다.
④ 계몽사상의 지상론. 계몽주의자들은 예언자적 혹은 메시아적인 시대로 부를 만큼 인간 역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자부하였다. 자기네들의 사상을 따르면「모든 언덕은 평탄해지고 모든 계곡은 메꾸어져」모든 장애는 이성과 관용으로 없어지리라 장담하였다.
위와 같은 새로운 사상이 종교에 끼친 영향은 무엇인가?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모든 긍정적인 종교, 계시, 교의, 이와 연관된 제도가 거부되었다. 하느님의 존재를 순수한 이성에 의해서만 인정하지만 그리스도가 초자연적인 존재라는 것을 부정하는 이신론으로 축소된 자연종교를 제외하고는 신적인 본질을 인간이 알 수 없는 대상으로 보았다.
또「창조 후 그대로 방치된 세상」에 하느님의 개입을 부정하고 종교의 윤리적인 면만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이신론에서 무신론으로 쉽게 변화될 수 있는 요소를 안고 있다. 무신론자는 그 자신만이 정직하고 성실하고 순수하고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온전히 이성적인 사람이며 교회 성직자들, 특히 남녀 수도자들을 부패의 중심으로 부각시키면서 무익한 지식으로 은폐된 자들로 비난하였다.
계몽주의가 근세사에 끼친 영향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으로 구분되어 평가될 수 있겠다. 긍정적인 면은 타성화된 낡은 사고에서 벗어나고 새로운 사고를 촉진시켜 근대적 발전을 이루게 하였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의 구체적인 결실이 인권에 대한 자아의식이다. 예를 들면 1776년 미국의 독립선언과 1789년 8월 27일 프랑스 국민의회의 인권선언 등 근세문화의 본질을 이루었다. 종교적인 면에서의 긍정적인 면은 신앙 외적인 분야에까지 절대적인 권위로 군림하려는 의지를 지양하고 교회 학문에 있어서도 새로운 방법론을 도입하여 학문의 발전을 이루게했다는 점일 것이다.
부정적인 면에서 평가될 수 있는 점은 이성의 한계를 넘어 신앙의 차원까지도 소위 합리주의적인 방법론에 의거하여 검증된 내용만을 받아들이려는 유리주의적인 사고방식이라고 본다. 또「오늘」을 뒷받침하고 있는 과거의 긍정적인 가치의 많은 부분을 놓쳐버린 점들이라 하겠다. 빛없이 그림자도 생길 수 없고, 빛 또한 항상 그림자를 동반하기 마련이다. 모든 가치의 평가는 항상 양면이 공정하게 검토되어 상반된 가치의 긍정적인 면들이 상호보완되도록 조화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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