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경제의 위기로 도시로 상경한 이들이 형성한 대도시 주변의 슬럼가에 모여 사는 도시빈민. 이들은 나름대로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힘들지만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최근 도시 재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생겨난 임대아파트, 임시방편의 철거대책 등은 이들이 갖고 있는 특수한 공동체적 연대성을 파괴하고 이들을 분리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농촌경제 활성화를 도모해 도시빈민들의 고향을 찾아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게 일고 있다. 이번호에서는 도시빈민들이 서로 의지하며 나눔과 섬김의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 교회는 지금까지 어떤 역할을 했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최근 서울대교구 도시빈민 사목위원회 93년 정기총회 보고서를 중심으로 사목진단을 하고자 한다.
먹고살기 위해 도시로 무작정 상경해 도시의 슬럼가를 형성하는 도시빈민에 대한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은 이 나라의 「농촌을 살리는 길」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쌀 개방 압력과 수입농산물의 급증으로 날로 피폐해 가는 우리 농촌 경제를 이대로 방치한다면 도시빈민의 숫자는 계속 늘어날 것이고, 대를 이어 가난을 물려받게 될 도시빈민들이 발생할 것이라는 명백한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농촌, 도시빈민들의 고향을 살려 내지 않는 이상 도시빈민 문제는 계속적으로 발생할 것이라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 천주교회는 가난한 도시빈민들이 하느님 안에서 「나눔과 섬김의 공동체」를 형성, 인간답게 살게 하기 위한 조직과 기구를 설립하고 이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져왔다.
서울대교구 도시빈민사목 위원회(위원장=정일우 신부)를 비롯 천주교 도시빈민회, 주거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 등이 도시빈민들의 편이 되어 이들이 제대로의 권리를 쟁취하고 하느님의 자녀로서 인간답게 살게 하기 위한 일을 힘들지만 외롭게 해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조직와 기구들의 활동이 『전 교회적으로 확산 수용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도시빈민사목의 현실적인 어려움』이라는 것이 도시빈민 운동에 관련한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대형화 되어진 교회, 없는 자 보다는 가진 자의 편에 서있는 듯한 인상을 강하게 받고 있는 교회가 가난한 자의 편이 되어 가난한 사람들의 애환과 눈물을 감싸주기 위해 지금까지 어떤 노력을 해왔는가? 사목자들은 자기 본당, 자기 교구에만 안주하고 거시적으로 전 교회가 품어 안아야할 이들 도시빈민에 대한 사목적 배려를 과연 적절히 해왔는가? 사순시기를 지내는 그리스도교 신자인 우리 모두가 반성해봄직하다.
이에 대해 도빈위 실무간사 박성호씨는『우리 교회가 아직도 도시빈민에 대한 문제를 교회의 본질적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가난한 이들이 마음놓고 올 수 있는 교회, 가난한 사람들끼리 함께 모여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수 있는 도시빈민 지역의 「도시공소」설립문제를 적극적으로 검토해 봄직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또한 지난 1월에 개최된 서울대교구 도시빈민사목 위원회 정기총회에서도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과 「기초공동체 운동」을 통해 사회복음화를 위한 교회복음화와 교회쇄신을 이뤄 나간다는 목표를 세운바 있다.
특히 이 총회에서는 94년까지 기존 생산공동체에 대해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기초공동체 건설을 위한 사목기금 조성과 도시공소 기반을 마련해 나가기로 하면서 사목활성가(司牧活性家)를 양성해 나가기로 결의해 앞으로의 귀추가 주목된다.
도시공소 설립 문제는 서울대교구가 2천년대 복음화의 일환으로 내놓은 소공동체 운동의 확산에 그 맥락을 같이 하는 것으로서 도시빈민의 특성상 앞으로 활성화 되어야 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도시빈민사목 위원회 총무 이기우 신부는 『도시빈민사목의 존재 이유는 가난한 이들의 복음화에 있고 그것은 가난한 이들의 처지에서 판단 돼야 할 문제』라고 전제한 후『복지적, 종교적인 접근은 가난한 이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위로는 되지만 가난한 이들의 소외 추세를 막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사회구조적인 병리현상의 치료를 위한 예방차원으로 사회교리에서 권장하고 있는 협동조합 형태의 「생산공동체 운동」을 기초공동체적 차원에서 전개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가난한 이들이 함께 모여 살며 경제적 어려움에서도 독립할 수 있는 「생산공동체」의 제안은 앞으로 우리 교회 및 도시빈민 운동과 관계된 모든 조직과 기관의 핵심 운동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지난 2월5일 서울지역의 대표적 빈민지역인 봉천 5, 9동에 설립된「평화의 집」은 대부분이 빈민인 이 지역사람들의 쉼터이자 생산공동체로서의 역할도 담당해 「생산공동체」 모델의 좋은 케이스로 주목받고 있다.
이 평화의 집을 설립하는데 기여한 정봉수(미카엘ㆍ도빈위원회ㆍ봉천 5, 9동 지역 발전추진위원회 회장)씨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을 교회가 적극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 운동조직과 교파를 초월한 연대 등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시빈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시빈민들에게 고향을 찾아주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들의 고향인 농촌 경제를 살리기 위한 정책이 마련되어져야 할 것이다.
또한 모여 살지 않고 홀로 살기에는 등이 너무도 추운 사람들, 힘들고 고된 일 속에서도 떡 한 조각이라도 나누며 살려는 가난한 도시빈민을 위해 교회도 예수가 직접 가난한 사람, 가난한 현장을 찾아 나섰듯이 이들을 찾아나서야 하는 시대적 요청을 강하게 받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교회는 정부와 함께 말뿐인 하늘나라 선포가 아니라 정말로 젓과 꿀이 흐르는 도시빈민들의 고향을 찾아주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