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남매를 낳아 기르시느라고 그 많은 고생을 하시면서 애쓰시던 어머님이 살아 계신다면 얼마나 잘 모실 수 있었겠나…. 다하지 못한 효도에 대한 죄책감을 느낄 때마다 다른 어머니들을 위해서라도 애쓰기로 했다.
교회에서도 여러 가지 책임을 맡게 되었다. 우선 소속 본당인 여의도본당 내 중요한 일들을 맡게 되고 급기야는「조선교구 설정 150주년 기념 신앙대회」전례부장,「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 및 103위 시성식」행사 분과위원회 시설부장 등 중요한 일들을 떠맡게 되었다.
황공하옵게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앉으실 의자(103위 성인 공포시 사용된 교황 권위를 상징하는 의자)에서부터 제단에 이르는 행사장 시설일체를 책임 맡게 되었다.
행사 3개월 전부터는 회사 일을 중역들에게 맡기고 행사 준비에 혼신의 힘을 다하였다.
노력한 만큼 보람도 컸던 그때의 모든 일들을 어찌 다 소개할 수 있겠는가? 다만 교황님께서 제의실 안에서 칭찬해 주시며 등 두드려 주시던 일과 내가 휴게실에 모셔다 놓은 성모상에 서명해 주신 일은 일생의 큰 감동이었다.
교황님으로부터 성체를 받아모시고 다시 그 제의실로 내려가 한없는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모든 것을 청산하고 떠나리라고 굳게 결심했다.
이 같은 일이 있기 1년여 전부터 복잡한 과정이 있었다. 3박 4일의「제19차 남성 꾸르실료」이후 이어진 연속적인 봉사활동은 드디어 나를 미주지역 한인천주교회 꾸르실료 전수 팀에 선발되게 하였다.
80년 6월 27일 미주지역으로 출발한 임원은 서울대교구 총대리이신 김옥균 주교님(당시 수유리본당 주임), 황인국 신부님(노원본당 주임) 그리고 작고하신 김득재 신부님을 비롯 평신도 12명이었다.
「시카고 한인 남성 제1차 꾸리실료」를 성공적으로 마친 다음 우리 일행은 각 한인본당들을 순방했다. 본당마다 여러 단체가 많았으나 레지오 마리애가 구성되어 있는 본당은 드물었다. 평신도 선교 사도직 단체인 레지오 마리애가 귀하다는 것은 너무나 아쉬운 일이었다.
이듬해 81년 캐나다 토론토 한인본당 고종옥 신부님의 요청으로 또 한 번 임원 봉사차 북미 땅을 밟고 몇몇 한인본당들을 돌아보니 역시 레지오 마리애는 드물었다. 다만 시카고와 토론토에 각각 1개 쁘레시디움이 존재할 뿐이었다.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귀국했다.
그런데 82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안윤대(데이빗)씨가 레지오 마리애 창단을 지원해 달라는 편지를 보내 왔다. 기쁜 마음으로 관계 비품들을 한 가방 준비하여 떠났다.
전 신자를 대상으로 레지오 마리애를 홍보하고「창조주의 모후」쁘레시디움을 창단했다.
귀로에 LA지역 오렌지카운티 한인본당 명 프란치스꼬 신부님의 요청으로 한 주간 체재하면서 주일미사 강론 시간에 30분간 레지오를 소개한 결과 80명이 입단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지금 이 지역에는 18개 쁘레시디움이 활동하고 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부여한 모든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돌아오는 기내에서 감사기도를 드렸다. 묵상 중에, 하느님께선『바오로야, 이번 여행길은 너의 여생을 광영으로 비쳐 주는 것이었다. 이제부터 너는 북미대륙뿐 아니라 저멀리 남미대륙까지 성모님의 깃발을 꽂으러 다녀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과연 하느님이 원하시는 바란 말인가? 다시 한 번 되풀이하며 기억하고 또 기억했다.
하느님의 섭리 때문인지, 모든 일들도 나로 하여금 자꾸만 떠나가도록 엮어져가는 것 같았다. 두 가지 큰 사건은 나를 떠나도록 자꾸만 밀어내었다.
10여 년의 긴 세월 동안 가까이 모시던 여러 신부님들과 수도자분들께 상의를 드렸다. 『이토록 피땀 흘려 가꾸어 놓은「문태준 왕국」을 버리고 떠나야만 하는 것인가? 내가 왜? 사업 잘하고 교회 일 충실히 하고 성가정 꾸며 최선을 다해 살아왔던 내가 무엇 때문에 내 조국, 내 고향 땅을 떠나 산 설고 물 선 낯선 땅으로 이주해야만 한단 말인가? 무엇보다 상승일로, 해마다 흑자를 내며 재벌의 꿈을 다져가며 이제 막「셀루나 텔레폰」기술 제휴를 끝내고 상공부에 승인 요청서까지 제출해 놓은 상태에서 이민이라…』생각조차 하기 싫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이 들면서도「떠나야 한다」는 강박감을 떨쳐 버릴 수는 없었다.
83년 봄 성주간 목요일 밤 무덤 제대를 지키면서 혼자서 철야기도를 바쳤다.『앞날의 길을 비추어 주소서』 새벽 5시경『떠나야 된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때까지만 해도「이민」에 대하여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고 들은 척도 아니 하던 아내가 이튿날 성 금요일 밤 십자가 친구 때 주님으로부터 강한 표시를 받았다 했다. 깜짝 놀라 자기 자리로 돌아와 장궤하고 고개 숙인 채 묵상하면서 조금 전 주님의 표시가 사실인가 착각인가를 골똘히 생각해 봤다 한다.
한참 묵상에 열중하고 있는데 바로 앞에 모셔져 있는 대형 성모상이 아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쳐다보게 하신 다음『바르짓따야! 바오로가 가는 길을 막지 마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성 금요일 예절이 끝난 다음 집으로 돌아온 아내는 나에게 떠납시다라고 하면서 소상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우리는 서로 포옹하고 눈물을 흘리며 앞으로 닥쳐올 어떤 고난과 역경에도 주 성모님께서 함께 하심을 굳게 믿고 의탁하여 헤쳐나가기로 결심했다.
■문태준 단장 연락처
Paul T. Moon 7250 yonge st. #606 Thomhill Ontario L4J7X1 CANADA TEL(905)881-8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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