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1독서(신명 6, 2∼6)에서 신명기 6장의 4절과 5절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유다인들은 이 대목을「쉐마」라고 합니다. 쉐마는「들어라」라는 뜻입니다.
『너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의 하느님은 야훼이시다. 야훼 한 분이시다.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바치고 힘을 다 쏟아 너희 하느님 야훼를 사랑하여라』(신명 6, 4∼5)
경건한 유다인들은 하루에 두 번, 아침과 저녁에 꼭 이것을 외웁니다. 이것은 그들의 기도이며 또한 신앙고백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쉐마」를 적어서 손에 매달고 다니기도 하며 이마에 붙이고 다니기도 합니다. 그만큼 그들은 하느님의 법을 사랑하면서 하느님의 법과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도 합니다.
유다인들에게는 많은 율법이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613조목이며 이 중에 무엇을「하라」는 명령이 248조목, 무엇을「하지 말라」는 금령이365조목입니다. 율법이 이처럼 너무 많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을 다 지킬 수가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느 것이 더 중요하고 어느 것이 덜 중요한지도 잘 몰랐습니다. 소위 율법학자라는 사람들도 율법의 핵심을 몰랐습니다. 율법의 모순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오늘 율법학자가 체면 불구하고 예수님께 와서『어느것이 첫째 가는 계명입니까?』하고 묻습니다. 이 사람은 아주 솔직한 사람이고 겸손한 사람입니다. 학자들이 그 당시에 많이 있었지만 말만 서로 요란했지 핵심은 몰랐습니다. 그저 껍데기만 가지고 왈가왈부했으니 그들이 얼마나 큰 모순에 빠져 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항상 명쾌합니다.
『첫째 가는 계명이 이것이다.「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느님은 유일한 주님이시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라.」또 둘째 가는 계명은「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다. 이 두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마르 12, 29∼31).
율법의 613조목을 짜고 또 짜서 소쿠리로 걸러낸다면 바로「사랑」이라는 두 글자가 남게 됩니다. 그런데 이 사랑은 인간 세상의 신앙인들에게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앞면은 하느님 사랑이요 뒷면은 이웃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별개의 얼굴을 가진 듯이 보이지만 근원은 하나며 또한 내용도 결국은 같습니다.
예수님은 당신 생애 자체가 사랑이셨습니다. 그분은 사랑을 떠나서는 말씀하신 적이 없으며 사랑 밖에서는 무엇을 행하신 적도 없으십니다. 사랑으로 오셨다가 사랑으로 사셨으며 그리고 사랑으로 가셨습니다. 우리도 그 삶을 본받아야 하고 또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나 애매할 때가 많습니다.
사랑이라고 해서 다 같은 것은 아닙니다. 사랑에도 여러 가지가 있고 또 차원이 높은 것도 있고 낮은 것도 있습니다. 여기서 이웃 사랑이라는 것도 하느님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라야 가치가 있지 이해타산이 결부된 사랑, 조건이 물린 사랑은 문제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외교인이나 심지어는 강아지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려워도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 때문에 그 사람을 살랑할 때 그는 큰 사랑을 하는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사랑을 실제로 하는 것입니다.
얼굴이 예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또 나에게 도움을 준 이를 사랑하는 것도 쉬운 일이요 권력이 있거나 돈이 있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오히려 안 믿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그 사랑은 더 뜨겁게 합니다. 그러나 못난 사람, 병든사람,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하느님 사랑 때문에 그들을 사랑할 때 우리는 큰 사랑을 하는 것입니다.
사랑보다 좋은 것이 없습니다. 하느님이 바로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부자요 아무리 큰 학식과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가 사랑을 못하고 있고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 그는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받는 것도 기쁘지만 사랑을 하고 베푸는 것은 더 기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사랑을 통해서 하느님을 만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을 때나 누구를 미워할 때나 주님은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해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그분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기 힘든 사람도 하느님 때문에 그 사람을 사랑하기 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사랑을 할 때 우리는 바로 율법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합시다. 이것이 사랑 받는 길이요 또 하느님을 만나는 비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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