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란(45ㆍ루치아)씨네 집의 자랑거리는「가족이 모두 성서를 한 권씩 갖고 있다」는 어찌 보면 조금은 소박한 것이다.
그러나 성서를 갖게 된 이유는 특별나다. 가족이 함께 성서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각자 자신의 성서를 한 권씩 갖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일이었다.
『성서는 바로 신앙의 안내자요, 핵심이 아닌가요? 나름대로 본당활동에 열심이던 우리 가족들은 신앙의 성숙을 위해서는 먼저 성서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새삼 눈 뜨게 됐어요. 목적없는 활동은 의미를 잃기 쉽거든요.』
남편 이통원씨(47ㆍ라파엘)와 큰딸 민정이(18ㆍ체칠리아), 아들 철준(16ㆍ사도요한), 막내딸 민선(14ㆍ엘리사벳)가 류승란씨가 성서를 함께 공부하게 된 계기는 본당에서 실시한「주일 말씀 공부」에 적극적으로 참가하면서부터였다.
서울 구파발본당(주임=이영춘 신부)이 사목 방침의 하나로 지난 봄부터 진행해오고 있는「주일 말씀 공부」는 다음 주의 복음과 독서에 대해 문제지를 작성, 배포해 신자들에게 성서 읽기를 유도하기 위한 프로그램이었다.
본당에서 레지오 단원, 구역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류승란씨는 물론 부인과 함께 부부 성가대에서 노래 봉헌을 하고 있는 이통원씨, 본당 중고등부 주일학교 학생회장인 큰 딸 민정이, 복사 출신인 아들과 막내딸도 처음에는 의무 반, 필요성 반으로 성서 읽기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여자들만 시작했어요. 가족들이 모두 함께 해야 하는데 사실 자녀들이 중고생이다 보니 우선 모일 시간이 없었죠. 남편은 또 직장 일이며 모임이 많아 저녁시간에 함께 자리하기가 여간 쉽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주일날 성당에 가서 문제지를 받아오면 각자 나름대로 자신이 편한 시간에 성서를 읽고 해답을 찾아내기로 했다.
『같은 문제지에 답을 쓰다 보니 서로 비교도 해보고 풀기 어려운 문제는 서로 상의도 했어요. 그러나 보니 성서를 읽고 난 느낌도 함께 나누게 됐죠.』
입시공부에 여념이 없을 고 2임에도 불구하고 큰딸 민정이는『점차 성서 읽기에 재미가 붙어 초창기에는 토요일 오후에 꼭 시간을 내어 성서를 읽었다』면서『오히려 지금은 소홀하다』고 말한다.
토요일 저녁이면 부득이한 사정이 없는 한 함께 성서를 읽고 느낌과 체험을 나누며 문제의 답을 맞춰보는 시간을 갖게 된 류승란씨 가정에는 적지 않은 변화가 생겼다.
무엇보다 부모와 자녀, 형제 간의 대화가 많아지고 우애와 사랑이 두터워졌다.
『가족 간에 다툼이 있거나 한 사람에게 화가 날 때면 우리는 성서에서 읽는 사랑과 관용, 용서의 귀절을 떠올려요.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화를 자주냈던 저는 요즘 점차 화를 내는 횟수가 월등히 줄어들었거든요.』
이러한 류승란씨의 변화 이외에도 아들 철준군은 학교에서 친구들이 모여 딴 친구를 험담하면 나의 행동이나 모습들을 돌이켜보고 반성하며 남을 이해하는 태도를 갖는 변화를 맞았다.
그러나 성서 공부의 참여율이 제일 저조한 류씨의 남편 이통원씨는『성서 공부에 열심인 가족들의 변화에 내심 부끄러운 마음을 갖고 있다』고 한다.
『우연히 가족이 함께 성서 공부를 하게 됐지만 이제는 의도적으로 함께 성서의 복음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도록 힘과 용기를 달라는 가족기도를 한 번 시작해도 되겠지만 한 마음으로 가정 성화를 이뤄가야 할 우리 식구들이 서로 다른 지향을 갖고 기도할 수는 없는 일 아니냐』고 반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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