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매년 수만 명에 달하는 태아의 생명이 부모들의 이기적이고 타산적인 삶의 결단으로 인해 살해되고 있는 이때 자궁암을 앓던 가를라 레바티(Carla Levati)라는 한 이태리 여성이 태아를 살리기 위해 죽음을 선택해 사회귀감이 되고 있다.
특히 레바티 여사는 『자신과 똑같은 처지로 1962년 4월 뱃속의 아기를 위해 기꺼이 죽음을 택해 금년 봄 「엄마들의 주보」로 시복될 쟌나 베레따 몰라(Gianna Beretta Molla)의 모범에 감화돼 아기를 낳기로 결심했다』고 전하니 한 여인의 숭고한 죽음이 얼마나 큰 생명의 결실을 맺는지를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두 어머니의 숭고한 죽음에 관한 기사와 논평을 번역, 종합해 소개함으로써 자신의 이익과 관련, 하느님이 주신 생명을 무참히 살해하는 오늘날의 병든 부모들의 마음에 경종을 울려 생명의 존귀함을 일깨우고자 한다. 이번 외신 특집을 통해 낙태반대운동으로 기나긴 여름 한철을 보낸 한국교회의 모습을 상기하고 낙태종식을 위한 대대적 홍보운동을 다시 한 번 기대해본다.
이 글은 로마 유력지인 「IL NOS-TRO TEMPO」지 93년 1윌10일자와 2월7일자에 게재된 것을 주교회의 가정사목위원회 총무 송열섭 신부가 번역한 것이다.
가를라 레바티
가를라 레바티(Carla Levati), 이태리 베르가모 여인, 아들의 출생을 위하여 목숨을 바쳤다.
그녀의 뱃속에 있는 스테파노 아르덴기(Stefano Ardenghi)의 운명은 경각에 달했다. 베르가모 병원에 입원한 28세의 가를라 레바티 아르덴기는 자신의 생명과 태어날 아기의 생명 중 하나를 선택할 기로에 섰다. 가를라는 자궁암에 걸렸기 때문이다. 그녀는 태아의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낙태하고 치료를 받으라』는 주위의 권고를 거절하고, 엄청난 고통을 받으면서 귀여운 아들을 낳고 8시간 만에 세상을 떠났다. 엄마의 희생적 사랑으로 스테파노는 이 세상에 태어났고, 한 어머니의 숭고한 사랑은 길이길이 남을 것이다.
가를라의 가족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해 『벗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라며 가를라의 사망소식을 알리면서 『아기 스테파노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가를라는 쟌나 베레타 몰라(Gianna Beretta Molla)의 모범을 따라 자신의 목숨을 바친다』고 유언했음을 공포했다. 쟌나 몰라는 1962년 4월 40세의 나이로 태어날 네째 아기를 위해 목숨을 바친 소아과 전문의로서 금년 봄에 시복될 예정이다.
가를라 레바티는 1964년 5월5일 이태리 베르가모지방의 세리아테(Seriate)에서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된 가를라는 언니 루시아나와 함께 숙모의 보살핌으로 자랐다. 어릴 때부터 상점에서 일한 가를라는 발레리아 아르덴기(Valeria Ardenghi)와 결혼했다. 일년후 지금 국민학교 5학년에 다니는 10살짜리 리카르도를 낳았다.
가를라가 암에 걸린 것을 안 것은 3년 전이었다. 외과수술을 받고 계속 치료를 했기 때문에 초기의 위기를 극복한 것 같았다. 그리고 6개월 전쯤에 가를라는 둘째 아이를 임신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남편에게 그 사실을 알린 가를라는 『건강상 위험한 임신이지만 잘 받아들이자』고 서로 다짐했다. 그녀는 남편에게 『이것이 마지막 임신이란 것을 당신도 알거예요』라며 운명적인 선택을 시사했다.
의사는 암이 재발한 것을 알고 가를라에게 『낙태를 하고 특수치료를 해서 생명을 보존하든지, 아니면 생명을 잃을 위험을 안고 아기를 출산하든지』양자택일을 제안했다. 가를라는 아이를 선택했다. 부수적인 치료는 계속됐지만 작년 12월 그녀의 병은 더욱 악화돼 베르가모 병원으로 옮겨졌다.
93년 1월25일 혼수상태에 들어간 가를라는 『자신이 죽는 한이 있어도 아기를 포기할 수 없음』을 간곡히 호소해 의사들은 태아를 살리기 위한 제왕절개 수술을 시도했다. 이로써 26주된 스테파노가 태어났다.
아기는 건강했고 곧장 신생아실로 옮겨졌다. 가를라도 알바노 산 알렉산드로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옮겨져 그곳에서 밤 9시30분경에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일기장에는 남편과 아기에 대해 『성모님이 둘째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나에게 시간을 허락해 주실거야. 그런 다음 나를 치료할 수 있을거야』라고 쓰여 있었다.
가를라는 28세에 세상을 떠났다. 사람들은 그녀에 대해 이런저런 말들을 많이 한다. 그녀가 아기를 위해 죽음을 선택한 것이 잘한 일인가? 영웅적인 행동인가 아니면 무모한 행동인가? 꼭 그렇게 해야만 했는가? 엄마 없이 자랄 10살 난 아들을 생각해서 살아야 옳았지 않았는가? 잘한 일이었느냐 아니면 잘못한 일이었으냐는 판단은 잠시 묻어두자.
많은 사람들은 이미 그녀를 성녀로 간주하고 있고 낙태지지자들은 낙태반대자들이 이것을 이용하거나 혹 젊은이들이 그녀의 행동을 모방할까봐 염려하고 있다.
가를라는 사람들에게 조건 없이 사랑하는 인간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오늘날 조건 없이 사랑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그녀는 인간에 대한, 그리고 생명과의 관계에 대한 종합적인 몇 가지 근본진리들을 우리에게 다시금 제시해주었다.
이 젊은 부인은 생명이란 오직 사랑으로만 보장된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그녀는 사랑을 제한이나 척도 없이 자신을 내어주는 것임을 각성시켰다. 이는 기술, 진보, 정의 자체만을 신뢰함으로써 실패한 사회가 다시 인간성을 조속히 되찾아야 함을 가르쳐준 것이다.
가를라는 태중에 있는 아기를 사랑으로 느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거절하지 않는 법이다. 그녀의 마음상태는 일기장에 잘 묘사되어 있다. 『새 아침이다. 하루하루가 나보다는 내 사랑하는 아기를 위해서 보다 좋은 날이길 바란다』 간단한 말이지만 여기서 우리는 참된 사랑의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
아기의 존재에 대해 가를라는 태아의 생명을 이미 「너」(tu)라고 여기면서 「그래」(si)라고 응답한다. 아기가 생명보호를 청하고 가를라는 아기를 희생할 위험이 있는 치료를 거부하고 「그래」라고 응답했다. 아기의 청을 거부하고 자신을 살릴 수 있었지만 가를라는 아기를 죽게 하는 수술을 거부하고 「그래」라고 응답했다. 가를라는 모든 것을 다 주었다. 왜냐하면 태아는 그녀에게 사랑하는 아기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벗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제로 따른 것이다.
참 사랑은 참으로 드물다. 사람들은 항상 베풀어준 사람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되받으려 한다. 즉 보상을 기대한다. 무상으로 내어주는 사랑의 논리학을 받아들이는 사람을 찾아보기란 어렵다. 점점 더 드물어지고 있다. 이제 부모의 사랑에서만이라도 다시 회복되어야할 것 같다. 이러한 사랑만이 진정한 사랑의 모습, 인간지평으로부터 사라진듯이 보이는 그 참 모습을 다시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생명은 자신 안에 생명권뿐만 아니라 더 높은 차원의 것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생명을 수호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는 용어 중에서 보다 습성화된 것이 「생명권」이다. 그런데 생명을 이야기함에 있어서 그 권리가 인식되어야 한다는 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생명은 하나의 선물이고 선물의 논리 안에서 인식되고 실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에서 말의 표현과 생명자체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이다.
생명에서 비롯되는 요구에 대한 응답은 물량적으로 측정할 수 없다. 「생명의 요청」(bisogno di vita)은 한계를 갖지 않는다. 바로 이 점 때문에 그 권리에 의해서 생명은 마땅히 보호되어야 한다. 만일 위반한다면 정의가 실현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생명은 사랑을 목적으로 사랑을 통하여 낳은 사람과의 관계 하에서 삶의 요청을 드러낸다. 이 필요성은 도움을 청하는 자신 모두를 포함한 생명자체인 것이다.
사랑만이 이 임무를 충만하게 유지할 수 있다. 가를라는 그녀의 행동을 통하여 그 점을 보여준다. 그녀는 생명을 선물로 주었고 생명을 내어주는 것을 계속하고 있다. 그 생명이 그녀의 살 권리라는 측면에서 보상받기 때문이 아니라 그 생명이 사랑의 선물이었고 사랑의 선물은 영원히 사는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의 논리학에 응답한 것이다.
쟌나 베레따 몰라
한편, 가를라에게 사랑의 모범을 보여준 쟌나 베레따 몰라(Gianna Beretta Molla)는 「엄마들의 주보」로 금년 봄에 시복될 예정인데 21년 전 1962년 4월 임신한 네 번째 아이를 탄생시키기 위해 자신의 죽음을 선택한 장한 여성이다.
밀라노의 소아과 전문의였던 쟌나 몰라는 신앙과 삶과 직업사이에 훌륭한 조화의 모범을 보인, 극히 보기 드문 여성이었다. 그녀는 한 평신도이며 직업인이고, 동시에 아내요 어머니로서 모범적인 삶을 살았기에 이제 시복을 통하여 하느님 백성들의 공경을 받고 신앙인의 모범으로 추앙될 것이다.
쟌나 베리따는 밀라노의 마젠타에서 1922년 8월4일 13형제 중 10번째로 태어났다. 오빠 쥬셉베와 알벨토가 신부가 되고 언니 비르지니아가 카노씨아노회의 의사수녀가 된 신심 깊은 가정에서 자라났다.
엄격한 교육과 가톨릭 청소년 단체에서 사도적 활동을 훈련받은 쟌나 베레따는 의과대학에서 의학공부를 시작해 52년 소아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 의사로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쟌나는 가톨릭 여성청년회 회장직을 맡아 피난민을 위한 구호사업에 심혈을 다하였다.
그녀는 가톨릭 의사로서 『생명은 인간에게 신성하고 불가침적인 것』이라고 신념을 밝히고 『두 생명 사이에 갈등이 발생할 때, 두 가치가 대치될 때, 보다 나은 가치를 위한 선택이 필요하다. 그런데 제삼자가 누가 더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판단할 수 있겠는가? 아기의 생명권은 어머니의 생명권과 똑같은 것이다. 의사 자신도 결정할 수 없다. 태중의 아기를 직접 죽이는 것은 치료 목적상의 낙태라도 중죄』라고 소신을 피력했다.
1955년 9월24일 삐에뜨로 몰라와 결혼한 쟌나는 40살 되던 61년, 네 번째 아기를 임신하면서 자궁암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됐다.
아기를 낳기로 결심한 쟌나는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62년 4월21일 성 토요일 몬자병원에서 딸 쟌나 엠마누엘라를 출산했다. 출산후 몇 시간동안 암에 따라오게 마련인 끔찍한 합병증이 나타났다.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감당한 쟌나 몰라는 4월28일 임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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