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따라서 걷다가 바닷가 마을 지날 때 착한 마음씨의 사람들과 밤 새워 얘기하리라. 산에는 꽃이 피어나고 물가에 붕어 있으니 돌멩이 위에 걸터앉아 그곳에 쉬어 가리라」
이광조의 노래「나드리」처럼 살아가고 있는 이가 있다. 초대교회 때 예수가 길 잃은 어린 양을 찾아 떠났던 길을 2천 년이 지난 오늘 그 길을 따라 나들이라도 나온 것처럼 살아가고 있는 황명훈(요왕마타ㆍ35세)씨와 하계옥(모니카ㆍ34세)씨 부부 선교사가 바로 그들.
◆나들이와 같은 생활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전주교구 순창본당 복흥공소. 기차로 정주시에 내려 차로 내장산을 넘어서면 고지대 평야가 한 눈에 들어오는 한적한 곳에 이들은 따뜻한 마음의 공소 신자들과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다.
7년 전부터 선교사로서 활동해온 황명훈씨는 지난 90년 10월 결혼, 부부가 선교사로 나섰다. 하계옥씨는 선교사는 아니지만 선교사로서 신명 나게 살아가는 남편의 모습을 늘 가까이서 지켜보면서「준 선교사」가 되었다.
이들이 부부가 되어 첫 부임한 곳이 전라남도 해남 우수영공소다. 밤 11시가 넘어 우수영에 도착했지만 묵을 집이 마련되지 않아 짐도 못 풀고 집을 구하러 다녀야 했던 이들 부부는 첫날 부둥켜 안고 밤새 울어야 했다고. 신혼의 단꿈을 꾸기에 현지 상황은 너무나 삭막했다.
◆전곡본당서 첫 활동
척박한 해남 땅에서 황명훈씨는 2년 동안 머무르면서 우수영공소를 완벽한(?) 공동체로 만들었다. 50명 정도의 예비자들을 세례시키고 어디다 내놔도 부끄럼없는 공소로 만들기 위해 피땀을 쏟아부었던 이들 부부는『더 이상 우리가 할 일이 없다고 느껴질 때 과감하게 우수영을 떠났다』며 회상에 젖었다.
경기도 전곡본당 공소에서 첫 선교사 활동을 시작한 황명훈씨는 그동안 진도 우수영을 거쳐 현재의 복흥공소에 이르게 됐다.
올 초 이곳에 부임한 황명훈씨는 복흥공소에서 아이까지 낳게 됐다. 생후 6개월이 지난 보나를 업고 이들 부부는 복흥공소는 물론 인근 쌍치마을 5개 공소를 하루도 빠짐없이 다니고 있다.
매일 저녁에 있는 예비자 교리, 가정 방문, 신자 재교육 프로그램 등을 실시하기 위해 바삐 살고 있는 이들 부부는 얼마 전 프라이드 승용차를 새로 마련 온 가족이 선교사로 나서고 있다.
황명훈씨는『항상 부족하고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만 하느님께서 어떻게든 채워 주신다』고 말하고『아이가 생겨 더욱 걱정이 됐지만 아이가 순하고 저 혼자 크는 것 같아 더할 나위 없이 편하다』며『이 아이는 우리들이 낳았지만 복흥공소 구성원 모두의 아이처럼 자라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황명훈씨는『선교사 생활이 얼핏 보기에는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고 어렵게 느껴지지만 생각보다 그렇지 않다』고 전제하고『성직자나 수도자 못지 않게 선교사의 삶도 중요한 성소로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오늘날 공소문제는 심각한 농촌 경제문제와 맞물려 선교사들에겐 단순한 신앙 전파를 넘어 그들의 아픔을 달래야 하고, 그들과 함께 어려움을 헤쳐나가야 하는 새로운 임무가 맡겨져 있다고. 황명훈씨 부부가 살고 있는 복흥면 역시 여느 농촌 마을처럼 먹고 살기에 허덕이고 있다.
복흥공소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순창본당 신부의 배려로 얼마 전「순창본당 김치」란 상표로 김치를 생산하고 있다. 순창면의 배추와 무, 파, 마늘 등을 무공해로 길러 전량을 수용할 수 있는 이 공장의 탄생으로 이곳 신자는 물론 주민들은 요즘 저절로 신명이 난다.
◆난생 처음 농촌생활
이들 부부 역시 공장에서 배추를 나르고, 주민들과 함께 김치 담그는 일에 동참하면서『이렇게 좋아할 줄은 몰랐다』고 토로한다. 자신들이 피땀 흘려 일궈 놓은 수확물을 눈물을 머금고 버려야 했던 이곳 주민들은 가톨릭교회가 세운 김치 공장에 모든 희망을 걸고 있다.
『선교문제를 단순히 신앙적인 면에서 접근할 수 없는 게 오늘날 우리나라의 현실』이라고 말하는 황명훈씨는『선교지역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삶의 형태를 파악하고 그들과 함께 같은 고민과 삶을 살아갈 때 진정한 의미에서의 선교사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에서 출생, 서울 토박이인 이들 부부는 농사 일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성인이 될 때까지 서울을 떠나보지 않았던 이들, 특히 황씨의 부인 하계옥씨는 결혼과 함께 남편을 따라 우수영을 거쳐 현재 살고 있는 곳에서 생전 처음 농촌생활을 하고 있다.
부인 하계옥씨는『평소에 생각한 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농촌생활에 처음에는 당혹감을 금할 수 없었다』고 심정을 토로하고『그러나 모든 것이 하느님의 뜻대로 이루어 지리라는 강한 믿음을 갖고 하루하루 살다보니 이곳 만큼 살기 좋은 곳이 없다』며 활짝 웃었다.
이들 부부는『우리가 이곳에서 큰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치 않는다』고 겸손해하면서『그러나 신자들과 일체감을 느낄 때 삶의 큰 기쁨을 느끼게 된다』고 털어놓았다.
또 이들 부부는『요즘 한국 교회에서「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이란 말을 자주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바로 공소 신자들을 위한 말인 것 같다』고 전제하고『교회가 가난하고 고난 받은 현장에 함께 하는 그 역할을 다하기 위해선 선교사 파견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귀중한 성소의 삶
이처럼 이들 부부는 매일매일을 가난의 현장에서, 정신적인 황무지에서 보내고 있다. 복흥 인근에 위치한 쌍치마을에 성 한원서의 직계 후손들이 살고 있지만 이들 대부분이 냉담 중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 첩첩산중으로 들어온 조상들 때문에 못 배우고, 가난에 허덕였기 때문이다.
교회가 순교 성인의 후손들을 위해 해준 게 무엇이 있는가 라고 반문이라도 하듯 이들과 처음 만날 때 힘들었다는 황씨. 글씨를 모르고 성가 한 소절도 부르지 못하는 이들 성인의 후예들을 대하면서 이들 부부는 심한 괴리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러나 다행히도 순창본당 권이복 신부의 열정적인 공소 사목으로 이곳 신자들의 신앙은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다고 한다.「주일미사 참례와 묵주알만 돌리면 신자냐」라는 권 신부의 가르침 때문에 이들은 주변에서 함께 고생하는 이웃을 돌볼 수 있었고 그 결실이 김치공장으로 맺어지고 있다고 한다. 살아있는 신앙이 이들의 삶을 적극적으로 전환시킨 것이다.
「선교사」라는 단어가 쓰여진 것이 얼마 안 된 한국 교회에서 선교사 1세대인 황명훈씨는 7년 여의 선교활동 경험을 토대로 이젠 후배들이 자신들의 소신을 펼칠 수 있는 토양을 만들기 위해 신경을 쓰고 있다.
선교사로서 오지에 나가 활동을 하고 싶어도 여러 가지 걸림돌(경제적인 문제가 가장 큰 이유) 때문에 주춤하는 후배들에게 용기를 심어주기 위해 힘들지만 기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얘기다.
『복흥에서도 어려운 본당 살림 속에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는 본당 신부님 때문에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전하는 이들 부부는『선교사들을 위해 교회가 경제적인 측면에서 도움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 선교사들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관심을 가져줘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국서 30여 명 활동
현재 전국 각지에 흩어져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이들은 30여 명 정도다. 이들은 대부분 본당 사제의 도움과 자신들끼리 서로 도와가며 살고 있다. 그러나 선교사들, 특히 가정을 꾸리고 살면서도 선교활동을 하는 이들 부부 같은 경우 자녀 교육문제는 물론 노후대책도 막연한 실정이다.
그러나 이들은 이런 것에 굴하지 않는다. 물론 이런 외적인 조건이 이들의 활동을 힘들게 하지만 모든 것이 하느님의 역사 안에 있다는 믿음이 삶을 지탱해 주는 지렛대가 된다.
복흥에서 첫 아이 보나를 얻어 더욱 정감을 느낀다는 이들 부부는『우리들이 이곳에서 넉넉하게 살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의 보살핌과 농촌마을 특유의 공동체적 사랑 때문』이라고 말했다.「직업이라고 내세울 수 없는」선교사 황명훈씨가 부인 하계옥씨와 결혼할 때도 장모의 신앙심 때문에 이루어질 수 있었다.
◆주님 도구로서의 삶
『하느님의 일을 하는 사람인데 하느님이 돌봐 줄 것』이라는 장모의 믿음이 이들의 결혼을 성사시켰고 그 믿음에 벗어나지 않게 현재 그들은 하느님의 도구로서 살아가고 있다.
털털한 웃음소리가 백암산 자락에 걸린 노을 속에 잔잔히 번져가듯 교회와 사회로부터 버림(?) 받은 오지 사람들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살고 있는 황명훈씨와 부인 하계옥씨의 삶은 현대인 특히 도시 본당 신자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악조건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모상대로 살아가려는 이들 선교사들. 어쩌면 이들의 존재가 가톨릭교회의 미래를 밝게 하는지도 모른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