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앞을 못보는 소경은 참으로 비참했습니다. 소경의 원인이 아무리 순수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일종의 하느님의 벌로써 간주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나병환자나 귀머거리 소경 등은 신체적인 어려움과 함께 하느님의 벌을 받고 있다는 죄책감과 수치심 때문에 세상이 더 참혹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은총은 바로 그 비참한 상태에서 빛나게 됩니다.
오늘 거지 소경은 나자렛 예수가 지나간다는 말을 듣고는 온 힘을 다해 외칩니다. 누가 뭐라 하거나 말거나 죽자사자식으로 외칩니다. 제발 좀 살려 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다윗의 후손」이라는 말과「자비를 베풀어 달라」는 말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본래「다윗의 후손」이라는 말은 메시아를 가리키는 칭호며「자비를 베풀어 달라」는 말은 오직 하느님께만 드릴 수 있는 간청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못난 거지가 예수님을 향해서 믿음을 드러냅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런 내용을 몰랐습니다. 그저 눈 먼 거지가 소리를 외치니까 무시하는 투로 조용히 하라고 나무라기만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소경은 굽히지 않고 예수님께 매달렸습니다. 믿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이때 물으셨습니다.『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소경은 바로 그 기회를 만나 애원합니다.『제 눈을 뜨게 해주십시오.』그때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가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예수의 말씀이 떨어지자 소경은 눈을 뜨고 예수를 따라 나섰습니다. 눈 먼 거지는 드디어 소원을 성취했습니다.
오늘 복음 내용은 우리에게도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어떤 의미에서 눈 먼 소경이요 또 어찌 보면 구제불능의 비참한 처지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특히 우리는 영적인 면에서 닫혀진 경우가 많습니다. 감사의 눈이 닫혀져 있고 사랑과 용서의 눈이 감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삭막한 세상을 살기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도 눈을 떠야 합니다. 그래야 새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수도원에 갔더니 현관 입구에「사랑하면 보게 될 것이고 보게 되면 더 사랑할 것이다」라는 글이 쓰여 있었습니다. 참으로 좋은 말입니다. 올바른 것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으로 보는 것입니다. 즉, 사랑을 하면 마음으로 볼 수 있지만 사랑을 하지 못하면 닫혀진 눈으로만 보기 때문에 혼자 답답해서 짜증을 부립니다.
며느리를 몹시 미워하는 시어머니가 있었는데 며느리가 뭘 잘못하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공연히 시집살이를 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며느리가 주눅이 들어서 자꾸만 실수를 합니다.「못한다」,「못한다」하고 뒤따라다니며 나무라니까 더 못하게 됩니다.
한 번은 이 할머니가 성사를 볼 때 그 사정을 잘 알고 계시던 신부님이 보속을 엉뚱하게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루에 열 번씩 일주일 동안 며느리를 칭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할머니로서는 큰 일이었습니다. 보속을 안 하자니 영성체를 할 수가 없고 매일 미사에 나오자니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며느리를 칭찬해야만 했습니다. 속이 터질 일이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이튿날 새벽이었습니다. 부엌에서 며느리를 만난 시어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피곤할 텐데 일찍도 일어났구나』목에서 억지로 그 말이 나왔는데 그 소리를 들은 며느리는 그만 감복하게 됩니다. 새벽 아침이 갑자기 환하게 밝아지고 있었습니다.
식사 때의 일입니다. 시어머니가 밥 한 수저를 입에 넣더니만 또 한 마디 했습니다.『오늘 아침밥이 참 잘 됐다. 며느리는 밥을 맛있게 하는구나』그러자 며느리 가슴에는 작은 꽃이 피게 되었습니다. 청소를 하면 청소를 칭찬해주고 빨래를 하면 빨래를 칭찬해 줍니다. 그렇게 칭찬해주다 보니 하루에 칭찬을 열 번도 더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밤의 일이었습니다. 시어머니가 잠을 자려고 누우니까 갑자기 며느리가 이쁜 생각이 났습니다. 며느리나 자기나 이 집에 고생하려 왔는데 당신이 너무 했구나 하는 반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일부터는 더 칭찬을 해주고 더 사랑해 줘야겠다는 마음을 먹습니다.
며느리도 그날 밤은 잠이 쉽게 오지 않았습니다. 시어머니를 그동안 오해했던 것이 죄송했으며 더 잘 해드려야겠다는 결심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사소한 고생에 대해 너무 쉽게 불평을 가졌던 것을 후회했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 따뜻한 사랑을 갖자 아주 다정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사랑을 하면 보게 되고 보게 되면 더 사랑하게 됩니다.
세상을 올바르게 바라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렵습니다. 그 때문에 닫혀진 세상에서 소경처럼 캄캄한 인생을 살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래서 자주 예수님께 간청해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서만이 생이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주여, 제 눈을 뜨게 해주십시오.』오늘 소경의 외침은 바로 우리 자신의 외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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