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출판물의 활성화와 함께 신자들의 독서 분위기를 고취시키자는 취지로 본사가 처음으로 마련한 독후감상문 공모가 9월 15일 마감 결과 1천3백여 편의 원고가 접수되는 성황을 이뤘다. 영예의 대상을 받은 일반부 김회권씨의「화폭에 사랑을 실은 하느님」과 학생부 김범준군의 「제르트루트와 눈 먼 벌치기」의 독후감 내용을 심사평과 함께 전문 게재한다.
◆ 김회권 <일반부 대상> - 김인중 신부 저「이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읽고
화폭에 실은 하느님 사랑
주님 사랑 몸소 실천하는 신앙인의 진솔한 삶 느껴
물질적인 여유가 생겼다고 행복이 보증되는 것이 아님을 이제야 나는 서서히 뉘우쳐가고 있는 중이다.
그러면서 인생이 성실하면 현실은 정직해지고 현실이 정직하면 서로 믿고 살 수 있다는 것을 오늘「이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이라는 책을 통하여 비로소 깊게 깨달았다.
이것은 마치 지금껏 스치듯이 느끼곤 했지만 이내 잊어버렸던 사실들이 내 뇌리에 날카로운 섬광처럼 비쳐들었다.
「이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은 절대적 신념과 가치가 붕괴된 시대에 있어서 과연 진정한 의미의 삶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면서 고난의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와 더불어 현대적 육화를 이룬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생생하게 튀고 꿈틀거림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저자는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보통사람들의 작은 행복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내게 함으로써 우리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는 남을 사랑할 수 없으며 자신의 인생을 소중히 할 수도 없고 또 그렇게도 도울 수도 없다는 것을, 결국 사랑의 원천이신 하느님을 통하여 자신을 자각하고 발전시켜 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저자 자신도 그림은 단순한 소일거리 이상의 구실이라 했고, 그것은 전에는 자신이 가지고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세상만물을 보고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내 안의 능력을 개발해 주었다고 하면서 그림을 시작하고부터 자신은 주위의 모든 것을 유심히 관찰하게 되었고 저녁 노을의 오묘한 빛깔에서부터 하늘로 솟아오르는 새의 날개짓에 이르기까지 주님의 섭리와 사랑, 그리고 아름다움을 받아들이는 원숙한 감각이 내 안에서 밖으로 흘러넘쳤다고 했다.
사실 이것은 어느 생애의 어느 때보다도 더 느긋하게 행복을 만끽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인간은 모든 욕구를 벗어나서 허식이 없는 알몸의 생존으로 되돌아와서야 비로소 인간 행복의 기초를 이루는 마음의 안정을 조금이나마 얻을 수 있는 것처럼 자신의 삶에 대해 밝은 세계의 전망을 확고히 다져서 스스로 어린 아이처럼 순수성을 살펴보아야 하는데 이는 아무 것도 지니지 않은 그 순수성을 살펴보아야 함이다.
결국 우리는 이 지상에 태어난 보람을 이 세상에 한 알의 소금이 될 수 있다는「베풂」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저자는 이를 모든 근원은 사랑으로 올라가는 것, 성심성혈의 줄기가 비 개인 하늘처럼 청명할 수 있다면 나도 끊임없는 사랑의 기도를 통해 남들을 용서함으로써 내가 용서받고 그런 사랑의 그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저 고요한 숲 속의 평온으로 접어드는 새들처럼 내 마음도 그분께로 날개를 달고 날고 싶어라고 했다.
그러나 저자는 이미 남을 위한 삶, 남보다 낮은 자와 아파하는 자의 삶을 위한 헌신과 봉사에서 보람을 찾았고 또 누구보다 이를 실천하는 참 그리스도의 사도임은 우리는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오늘 우리는 이 책을 통하여 한 알의 밀알이 썩어서 결실을 거두는 일은 마치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것처럼 우리 사회의 뒷전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에 충실하고 더 나아가 함께 사는 밝은 사회를 구현하면서 주님의 사랑을 몸소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의 진솔한 삶의 체취를 느껴본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자의 말씀도 있지만 모름지기 아름다움은 나눠서 더욱 커지고 즐거움 또한 배가 되는 법이다.
확실히 인생이라는 것은 즐기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고 처리해야 하는가 보다.
고난을 치르지 않은 행복은 참된 고마움을 모르듯이 가장 아름다운 것일수록 지극한 슬픔이 그 밑받침이 된다는 진리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깨달아야만 한다.
이는 마치 하늘과 우리의 관계를 의지로 주고받는 것이 아닌「감사」하나로 그치는 것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고통이 있을 때 그 고통까지도 감사하는 것이 옳다. 그것을 거스리는 모든 행위는 종교에서 빗나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보다 좋은 것이 좋은 것의 적이다」라는 프랑스의 아름다운 격언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일반부 당선 소감 - “부끄러운 작은 글 선택에 감사”
우리 삶의 한 구석엔 언제나 허무가 존재하고 그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하여 사람들은 무엇으로든 노력하며 산다.
내게 있어 그 노력이라는 것이 좋은 책을 가까이 접하는 것이다.
좋은 책을 읽기 위한 조건이란 나쁜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인데 인생은 짧고 시간과 힘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일까.
그러면서도 오늘이라는 날이 단 한 번뿐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늘 잊은 채 살아온 것 같다.
하루하루가 인생의 중요한 부분이며 더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것을 잊고서 오히려 개체가 총체 개념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해왔다.
그런 내게 뜻밖에 접한 당선 소식은 마치 날카로운 섬광처럼 내 뇌리에 밝게 비쳐들었다.
그러나 곧 그것은 부끄러운 나 자신의 모습임을 알았다.
부끄러운 작은 글을 뽑아 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리며 더욱 노력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이 글의 무대가 된 배경처럼 하나가 아닌 함께 함으로써 서로 부대끼면서 피부로 뼈 속 깊숙히 모든 이와 함께 기쁨을 나누고 싶다.
우리가 함께 한다는 것은 가까이 있음이 아니고 따뜻한 정을 나누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김범준 <학생부 대상> 홍기 저「눈 먼 벌치기」를 읽고
부끄럼 없는 세상 만들자
깨끗하고 순결한 마음이 보이지 않는 세상을 아름답게 간직할 수 있었다
『나는 눈이 멀었지만 당신은 마음이 멀었어유』
마지막 책장을 넘기고 한참 동안이나 내 귀에 맴돌던 눈 먼 벌치기의 부르짖음에 나는 한참 동안이나 자리를 뜰 수 없었다.
나, 당신 그리고 우리네들 모두 눈이 멀기를 바라는 바보는 없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까지 멀어버리는 자신을 안타까와하는 것도, 마음이 멀어져가는 자신을 돌이켜보려 노력하지 못하는 우리네들은 바보라고 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을 눈 먼 벌치기는 알고 있었다.
눈 먼 벌치기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고 있었고 진정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두 눈을 멀건히 뜨고도 세상을 허위적대며 살아가는 우리네들보다 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눈 먼 벌치기가 사는 가리산에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었다.
「니마」.
가리산에서 오기로 약속되어 있는 전설 속의 사람이다.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눈이 뜨여 인생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다고 한다.
사실일까? 나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칠흙 같은 어둠.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다리를 못쓰시는 아버지와 산 속에서의 궁핍한 생활. 이런 그에게 삶의 활력을 불어넣은 것은「윙윙」소리를 내며 귓가를 스치는 한 마리의 벌이 날아들고부터다. 그는 벌치기를 시작한 것이다.
눈 먼 벌치기다.
벌은 날아날아 와서 벌통의 개수를 점점 늘려주었다. 그 사이 친구의 권유로 병원에 가서 눈을 진찰하고 시신경이 살아있어서 빨리 수술하면 치유된다는 말을 듣는다.
수술비는 2백만 원, 그는 벅찬 가슴으로 벌치기를 열심히 한다.
이 대목에서 나는 제발 무사히 수술을 받아 눈을 떴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다음 책장을 넘기기가 무서웠다. 왜냐하면 별로 좋지 못한 일이 생길 것 같아서다. 눈을 뜨면 먼저 보드라운 감촉으로 손 끝에 와닿는 벌부터 실컷 보아야겠고 그 다음에는 개울가에서 향기로운 풀꽃의 모습을 보아야겠다는 그의 마음에 상처를 입을까 책을 읽는 내 자신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책장을 넘기기가 무섭게 그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크나큰 슬픔에 잠기고 눈 수술을 위해 마련한 2백만 원 가량의 돈을 장례비로 써버린다. 눈 먼 벌치기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한 말을 되새기며 또 열심히 벌을 친다.
『잡된 마음을 품으면 벌은 영물이라 너의 뜻을 따르지 않을 것이다. 무엇이든 정성을 다해 대하거라. 해치고자 하는 마음이 없으면 독사를 만지더라도 결코 해롭지 않으리라』
벌통은 벌써 백여 통이나 되었고 돈도 제법 많이 모았다.
그러나 그 돈을 쥐고 눈을 뜰 수 있다는 벅찬 마음으로 병원을 가지만 시신경이 이미 죽어버린 그를 수술할 수는 없었다. 그동안 흐른 세월을 그는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흘러가버린 세월을….
완전히 사그라든 불빛. 불빛을 생각하며 그는 절망하며 통곡의 울음을 터뜨린다. 얼마나 마음이 저미겠는가!
귀머거리는 소리를 듣는 것이 그의 제일의 소망일 것이고 앉은뱅이는 멋지게 서서 걸어보는 것이 평생의 희망일 것이고 눈 먼 장님은 앞을 보는 것이 그들의 절대적인 희망 아니겠는가?
그 희망을 잃어버린 눈 먼 벌치기의 심정을 헤아린다는 것이 어찌 보면 그의 슬픔에 비해 위선이나 가식이 될 것 같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의 눈물겨운 이야기는 라디오를 통해 전파를 타고 사람들에게 전해졌고 그의 이야기에 감동을 받은 한 처녀가 결혼할 뜻을 밝혀 둘은 결혼했고 눈 먼 벌치기는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는 아내에게 몸과 마음을 바쳐 헌신했다. 하늘에서 내려준 천사라고 생각했으므로….
아내를 보며 그는 이 세상은 아직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다고 스스로 자위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 행복도 잠시 아내는 셋째 아이를 낳다가 하혈이 심하여 그만 숨지고 만다.
아! 또 이런 큰 슬픔이 왜 하필이면 눈 먼 벌치기에게 찾아오는가 싶어 하느님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나의 눈엔 어느덧 굵은 물줄기 하나가 볼을 타고 내려오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또 그는 절망하고 만다. 그 절망 속에서 생의 의욕을 불어넣어 준 것이 있었다. 천사의 선물인 아이들과 결혼 후 떠나버린 벌이 돌아온 것이다.
『오셨네유, 돌아오셨네유』
『고마워유, 정말 고마워유』
눈 먼 벌치기는 수백수천의 친구를 다시 얻은 기쁨에 연신 이 말을 되풀이한다.
지금 그는 세 아이들과 그의 작은 세상인 벌과 함께 가리산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예전에 감명깊게 읽었던「앙드레 지드」의「전원 교향악」에 나오는 장님 제르트루트가 떠올랐다.
알프스의 위용과 아름다움을 눈 먼 그는 알 수 있었고 백합의 향기로 그 생김새를 묘사할 줄 알았다. 흰 빛과 검은 빛의 색깔뿐만 아니라 그 뒤에 감춰진 빛깔들의 진실들까지도, 우리가 읽지 못하는 그 어떤 것까지도 보고 있었다. 아마도 그녀의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세인들과 달리 때 묻지 않은 그런 깨끗하고 순결하고 순수한 마음이 보이지 않는 세상 모두를 그렇게 아름답게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고 느끼지도 못하는 세상의 아름다운 면을 눈 먼 벌치기와 제르트루트는 진정으로 알고 있었다.
아마도 우리가 추구하고 동경하는 세상에 이미 도달해 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부끄러워해야 한다.
눈 먼 벌치기와 제르트루트가 천국에서 내려다볼 죄와 탐욕으로 가득 찬 세상을 나는 보여줄 자신이 없다. 그들의 순수한 마음에 상처를 입힐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이여! 눈 먼 벌치기와 제르트루트에게 부끄럼없는 세상을 보여주도록 노력하자. 우리는 세상에 나와 각자 자기의 위치에서 자기 역할을 하며 살아간다. 나태하게 살건 충실하게 살건 그건 각자의 마음이겠지만 눈 먼 벌치기를 본다면 어찌 삶을 게으르게 살고 절망이란 말을 입에 올릴 수 있겠는가?
서두에서 언급한 가리산의 전설「니마」, 그는 분명 눈 먼 벌치기임에 틀림없다.
그의 삶에서 니마의 전설이 시작되었을 것이라 믿고 싶다.
「니마」즉 우리 삶의 구원자는 바로 우리네들 가슴 속에도 있을지 모른다.
다만, 우리는 니마를 바라기만 하지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니마는 인생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열쇠를 눈 먼 벌치기의 삶을 통해 가르쳐 줬다.
『가라! 그리고 섞여서 살아라!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은 자신에게 맡겨진 삶을 가장 열심히 사는 사람이다!』라고…….
▲학생부 당선 소감 - “미숙한 글 솜씨 아쉬움 남아
내가 쓴 글이 입상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이상하게도 입상에 대한 기쁨보다는 미소를 머금은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 글을 읽고 내 나름대로의 생각을 적으면서 나는 눈 먼 벌치기에 대한 미안한 감정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눈 먼 벌치기의 그 때 묻지 않은 인간 본연의 심성과 신체 장애를 극복하며 살아가는 인간 승리적인 삶의 모습을 미숙한 내 글 솜씨로 표현하기가 오히려 그의 삶을 때 묻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입상이라는 결과가 눈 먼 벌치기의 삶을 욕되게 하지 않았나는 내 나름대로의 생각에 이제는 안도의 한숨을 져버리고 기쁜 마음의 채비를 해야겠다. 나는 특별히 글 쓰는 형식이나 요령도 잘 모르고 그렇다고 글을 꾸미는 화려한 미사여구도 잘 알지 못한다. 다만 눈 먼 벌치기란 책을 읽었을 때 느끼는, 그 말로 표현하지 못할 것 같은 그 벅찬 감동, 그 감정에 단지 충실했다고 생각들고 그때의 그 감동을 그대로 원고지에 옮기지 못한 것이 아직도 아쉽기만 하다.
아무쪼록 이 독후감을 읽는 분들께 눈 먼 벌치기의 삶이 똑바로 이해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심사평
일반부 “하느님의 사랑 읽어내는 눈 놀라울 뿐”
학생부 “원고 쓰기 요령 등 기본 자세 터득 미흡
독서 감상문은 뜻 그대로 책을 읽고 느낀 자신의 감흥과 그 책의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능력을 보여주는 광의의 문학 행위라 볼 수 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자신의 감상을 기록하기보다는 책의 내용을 요악하는 데에 집중한 감이 없지 않다. 이 점에 있어선 다수가 텍스트로 정한「눈 먼 벌치기」의 경우가 두드러진다.
솔직히 말해서 일반부에선 입선작 편수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제외할 수밖에 없었던 글이 많아 안타까움을 떨칠 길이 없다. 다양한 독서의 선택과 거기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읽어내는 눈은 놀랍기조차 했다. 한국 가톨릭 신자의 신앙적 성숙도를 접하기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었다.
이에 비해서 학생들의 작품은 유감스럽게도 가까스로 편수를 채워야 하는 미흡감이 따랐다. 한 편의 글을 쓰자면 문장의 세련뿐만 아니라 구성의 짜임새 특히 맞춤법과 원고 쓰기 요령 등 기본 자세를 터득하는 일이 중요하다. 부디 학교 교육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문장력이 향상되고 글 쓰는 일이 생활화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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