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앙화는 맹세에 관하여 잘못 가르치고 있는「눈 먼 인도자들」에게 내려진다. 그들은 물론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기들을 당연히 백성들의 인도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께서 보기에는 그들은 소경으로서 남을 인도하고 있는 자들이다.
예수께서는 전통에 사로잡혀 외적인 형식에 치우쳐 종교생활을 인도하는 율법 학자들을 보고「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꼴」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한 바 있다(마태 15, 14). 그들 자신이 갈 길을 잃고 헤매면서 자기들을 믿고 따라가는 백성들을 헷갈린 길로 인도하고 있다.
구약성서 신명기에「소경을 엉뚱한 길로 인도하는 자에게 저주를」하고 외치면「아멘」하고 대답하라고 하였고(27, 18) 레위기에는『소경이 보지 못한다고 그 앞에 걸릴 것을 두지 말라. 하느님이 무섭지 않느냐』(19, 14)라고 한 말이 있다. 같은 뜻에서 예수께서도『너희 같은 눈 먼 인도자들은 화를 입을 것이라』라고 선언하신 것이다.
인간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말의 진실성을 지켜야 모든 사람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다. 특히 분쟁이 있는 곳에서는 말의 진실성을 보장할 수 있는 어떤 담보 같은 것이 필요하다. 고대 사회에서는 그 보증으로 맹세를 하게 하였고 그 맹세가 충분히 믿을 만하다는 표로 하느님의 이름을 불렀다.
구약성서에서 맹세가 처음으로 행해진 것은 이사악과 아비멜렉이 브엘세바 우물가에서 서로 맹세하고 평화조약을 맺은 사실이다(창세 26, 28). 그 후 맹세행위는 일상생활에서 법적인 효과를 내는 본질적인 조건이 되었고 빈번한 맹세는 헛맹세나 맹세의 남용을 낳게 되었다. 모세율법은 이에 맹세의 신성성을 지키는 규정을 명령하였다.
그러나 후기의 율법 학자들은 이 규정을 자세히 구분하여 어떤 경우에는 지켜야 하고 어떤 경우에는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세부 규정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 중에서 우스꽝스러운 구분이 바로 예수께서 지적한 대로 성전을 두고 한 맹세는 지키지 않아도 되지만 성전의 황금을 두고 한 맹세는 꼭 지켜야 하며, 또 제단을 두고 한 맹세는 지키지 않아도 되지만 제단 위의 제물을 두고 한 맹세는 꼭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왜 맹세를 하면서 성전을 걸고, 성전의 황금을 걸고, 제단을 걸고, 제단 위의 제물을 걸고 했을까. 그것은 그들의 맹세의 습성이 오랫동안 종교생활화하면서 하느님과 조금이라도 관계되는 모든 것을 걸고 맹세했기 때문이다(대모 64 참고).
결국 어디에 걸고 맹세를 했건 중요한 것은 하느님 앞에 그 맹세한 것을 충실히 지키는 성실성이다. 그러니 제단을 두고 한 맹세나 제단 위에 있는 제물을 두고 한 맹세나, 성전을 걸고 한 맹세나 그 황금을 두고 한 맹세나 맹세는 일단 했으면 지켜야 할 일이지 어느 것은 형식에 맞는 맹세이니 지킬 의무가 있고, 어느 것은 형식을 밟을 수 없는 맹세이니 지킬 의무가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하느님 나라가 다가오고 있는 이 때에 예수께서는 이미 하느님의 거룩한 이름까지 불러가며 맹세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하느님은 사람의 양심을 내려다보시는 분이지 이름을 부르는 형식을 갖추었나 안 갖추었나를 보시지 않는다.
인간이 하는 맹세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 하는 것은 예수께서 잡혀서 재판을 받을 때 베드로가 그를 따라다니던 사람이라고 고발을 당하고 그 사실을 부인한 것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베드로는 세 번 스승을 부인하면서 첫번째는 그저 모른다고 했고 두 번째는 맹세까지 하면서 부인했고 세 번째는 벌이라도 받겠다고 하면서 부인했다.
맹세는 인간에게는 양심적인 진실성이 중요하다. 하느님이 아브라함에게 자손의 번영을 약속하실 때 맹세하여 약속하셨다(창세 22, 16~17). 그러므로 절대적으로 확실했다. 사람들이 한 번 맹세했으면 그것은 양심을 걸고 하는 것이며 따라서 하느님의 이름으로 한 맹세나 마찬가지이다.
이렇듯 무거운 것이기에 예수께서는 아예 맹세 같은 것은 하지 말라고 하셨고 사도들도 이 말씀을 따라 신자들에게 같은 것을 권고하였다(야고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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