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리아주의란 옛날 서유럽의 중심부인 프랑스를 근거지로 살았던 골(Gaule)지역을 라틴어로 갈리아(Gallia, 형용사-Gallicana)라고 호칭한 데서 유래되었는데, 19세기 역사가들은 프랑스 교회를 위한「프랑스 교회의 자유」를 주장하며 교황의 수위권을 제한하려는 사조를「갈리까니즘」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러한 사상은 1300년대부터 프랑스 왕국의 자율권을 신장시키려 하면서 교황권의 행사를 제한하려는 반 교황주의를 견지해왔었다.
즉 이러한 사상은 절대주의적인 왕권 강화에 편승하여 정치적 국수주의의 영향으로 프랑스 교회에 대한 교황의 개입을 차단하고 프랑스 왕이 자신을 주교들의 왕이라고 자처하면서 교황의 수위권에 버금 가는 권위를 행사하겠다는 의도가 다분했다. 사실 프랑스 왕은 전국 교회 회의를 소집하고, 프랑스에서 교황 대사의 재치권을 제한하며, 교황에 대해서도 공의회에 공소하고 교황의 칙서 발표도 프랑스 왕의 인가 여하에 따라서 유효성이 인정되도록 통제하였다.
이로써 프랑스 교회는 이교의 위기에 처하였고,「태양왕」 루이 14세(Louis, 1643/1661~1715)의 국가절대주의적 정치체제 하에서 반 로마적이고 국가주의적인 교회의 경향이 절정에 달하였다. 과거 에 공석 중인 주교좌의 수입을 왕의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었고 그 주교좌 주교 임명권도 가지고 있었는데, 이를「공위 주교좌 수입 국왕 취득권」이라 한다. 그러나 이 권한이 기존 교구에 한정되어 있고 다른 교구에로의 확대를 파문으로 금하였지만, 루이 14세 왕은 이 권한을 프랑스의 모든 교구에 확대하는 법을 선포하고 여러 지방에서 그 실권을 행사하였다.
1663년 파리 국회는 공의회가 교황의 모든 결정보다 더 위에 있다는 공의회 수위설과 같은 결정을 받아들이도록 각 대학 신학부에 강요하였다. 1681년 10월 1일 빠리에서 프랑스 성직자들은 성직자 대회를 열고 모(Meaux)의 보쑤에 (Bossuet, 1627-1704) 주교를 필두로 그 이듬해인 1682년「갈리아 신조」라고도 불리는 4개 조의「프랑스 성직자의 선언」을 발표하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교권에 대한 정권의 독립:교황은 국내 문제에 간섭할 권한이 없고 왕과 제후는 교황에 의해 폐위될 수 없으며 신하의 왕에 대한 충성선서도 해제되지 않는다.
②공의회는 그 권능을 그리스에게서 직접 받은 것이므로 콘스탄츠 공의회 결의가 교황보다 우위에 있다는 공의회 수위설을 다시 주장하였다.
③교황권은 온 교회가 지키는 교회법과 프랑스 교회의 회의와 관습에 맞게 행사되어야 한다.
④신앙문제에 대한 교황의 결정은 전체 교회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 등이다.
이 선언은 법률로 공포되었고 신학 교수가 되려는 자들과 박사 학위를 취득하려는 신학과 교회법 전공자들이 필수 과목으로 이수케 하였다.
1690년 알렉산데르 8세(1689~1691) 교황은 왕의 이 칙령을 무효로 선언하였고, 후임인 인노첸시오12세(1691~1700) 교황은 1693년 왕으로 하여금 칙령 실시를 중지케 하였다. 그러나 루이 14세가 죽은 후, 국회는 그 칙령을 요구했지만 실현되지 않다가 나폴레옹 1세가 다시 이 칙령을 강화하였다. 그 후 제1차 바티칸 공의회(1869~1870)가 교황의 무류지권을 공의회의 결의로 선언하면서 갈리까니즘과 같은 교회 내의 여러가지 반대 사조들이 극복되었다.
프랑스에서 출발한 갈리까니즘이 이후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주어 18세기에 독일에서는 페브로니아니즘(Feb-ronianismus)으로 전파되었고, 합스부르그 왕가가 주동이 된 정치적 갈리까니즘은 요셉주의(Josephinis-mus)로 불리어 교회 내의 반대 사조로 드러났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이 시대에도 교황의 통치권이 전 세계 교회에 관여할 수 있고, 속권에 대한 간접적인 간섭권의 타당성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러한 사상을 울뜨라몬따니즘(Ultramontanis-mus)라고 불렀다.
모든 일에 있어서「극단적인 상태」는 필요 이상의 시행착오와 이에 상응한 무가치한 회생을 야기시키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세속 권력의 극대화를 꾀한 절대주의는 유럽을 하나의 사회로 결속시켰던 전통적인 신앙과 도덕성의 가치보다는 국수주의적인 정치, 군사적인 힘에 의한 패권주의, 제국주의로 분열케 하였다.
또 이에 맞선 교회의 중앙집권화는 위와 같은 교회 내의 반대 사조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고 일치시킬 수 있는 능률적인 제도이기는 하였지만 지역 교회의 특성과 자율성의 장점을 살려 복음적이고 성사적인 성숙한 교회보다는 외형적으로 획일적인 일치만을 중요시하는 함정에 빠질 수 있는 위험도 다분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양극의 단점을 배제하고 양극의 장점을 조화시킬 수 있는 중용의 지혜가 개인의 삶에서나 모든 사회에서도 이상적인 성숙과 발전을 이루게 하는 원동력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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