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범한 죄는 끔찍했지만 그는 서울구치소에서 무척 모범적인 마지막 생활을 보냈다. 그는 3백여 권의 책들을 읽으며 종교적 명상에 깊이 빠져들었다. 홍윤숙 시인이 번역한「아담의 비탄」을 읽은 뒤 깊은 감명을 받았고「9월의 속죄양」같은 루이제 린저의 글을 좋아했다.
그와 가깝게 지냈던 나이 어린 최고수(사형수)동수가 철학을 공부 해보자는 제안에 그는『헷갈리니 안하겠다. 성경에서 철학을 찾겠다』고 거절하며『나는 성경이 제일 좋더라. 많은 책을 읽어보았지만 그저 내용들이 비슷한 것뿐 성서만큼 깊이 있고 감명을 주는 책은 없다』고 했다. 그의 편지는 계속 이어졌다.
『수녀님 안녕하세요. 수녀님의 작은 모습 속에 그레고리오는 감히 건강을 기원해 봅니다. 공연히 지나간 나 자신의 일들을 되뇌어 봅니다. 난 무엇인가. 어머니께서 산고를 겪으면서 나를 낳아 길러 주셨는데 태어난 소명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세속의 생활에서 많은 대죄를 저지르고 이곳으로 온 사람. 수녀님!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 때문에 십자가형을 치르셨지요. 저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주님의 사랑이 아니겠습니까.
수녀님! 전 지금 생각에 잠겨 있습니다. 무슨 생각이냐고 반문하시겠지요. 수녀님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수녀님의 건강이 안 좋으시다는… 시력이 많이 떨어지셨다는 소식을 들으니 가슴이 너무 아픕니다.
그리스도의 대변자이시자 몸도 아끼지 않으시는 분이 왜? 하고 반문해 봅니다. 멀쩡한 채 선행도 못하는 주제인 상인이는 건강하고 사랑을 전하는 수녀님께 좀 더 나은 건강을 허락하시지 않느냐고요. 조용히 두 손 모아 간구해 봅니다.
『이제 밤이 올 터인데 그때는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습니다」(요한 9, 14) 매순간마다 충실한 마음으로 회개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미약하나마 전해드리며 하나이신 주님께 열심히 기도하겠습니다.
장마가 더위를 잠시 누르고 있습니다. 언제나 건강주시고 밝은 지혜 주시어 주님의 사랑을 목말라 하는 가난하고 소외된 양들에게 수녀님의 자애로운 눈빛이 치유를 가져오게끔 또한 기원합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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