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차코프 미술관은 러시아 미술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러시아 미술의 보고다. 오랜 기간 동안 내부 수리를 끝내고 새롭게 단장된 모스크바의 트레차코프 미술관에서 우리는 그 유명한 안드레이 루불료프의 이콘,「삼위일체」를 마주 대했다. 이콘의 정수, 또는 모든 이콘의 어머니로 불리는 삼위일체는 트레차코프 미술관의 보물 중의 보물이다. 이 점은 유럽 미술의 컬렉션으로 이름 높은 레닌그라드의 에르미타주 박물관과 크게 대비되는 부분이다.
◆국립미술관의 위용
11세기 이후 러시아 미술의 걸작품 거의 전부를 수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트레차코프 미술관은 19세기 중엽 실업가 트레차코프 형제가 수집을 시작한 작품으로 구성되었으며 1856년 모스크바시에 기증된 바 있다. 1918년 혁명 후 레닌에 의해 국립미술관으로 명명된 트레차코프에는 모두 50여 개 전시실에 5만여 점이 넘는 미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실만도 50여 개
안드레이 루불료프의「삼위일체」는 트레차코프 미술관 제1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곧바로 관람객을 맞고 있다. 15세기 러시아의 천재 화가이며 가장 위대한 이콘 화가로 인정 받고 있는 루불료프의 삼위일체는 사람들로 하여금 기도하고 싶게 만드는 이콘으로 불리어왔다.
수도자이기도 한 루불료프는 삼위일체의 신비에 대한 자신의 묵상을 동료 수도자들과 나누기 위해 또 정치적 불안 속에서도 마음을 하느님 안에 모으고 사는 길을 그들에게 제시하기 위해 이콘 삼위일체를 그렸다고 전해지고 있다. 네덜란드의 헨리 나웬 신부는 그의 저서 주님의 아름다우심을 우러러에서『루불료프는 이콘 삼위일체를 통해 온 러시아를 하느님의 이름을 중심으로 한데 모이게 하여 백성들이 삼위일체를 묵상함으로써 세상을 멸망시키는 증오를 정복할 수 있기를 바랐다』고 지적하고 있다.
삼위일체가 그려진 15세기 초 러시아는 온통 전쟁과 미움 증오로 뭉쳐져 있었던 혼돈의 시기였다. 세 천사가 소박한 식탁을 사이로 둥글게 원으로 이루고 앉아있는 모습의 삼위일체는 물론 성부 성자 성신 즉 삼위일체를 상징하고 있다. 세 천사의 출현은 하느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희생하시도록 당신 외아들을 보내시고 성령을 통해 생명을 주신 거룩한 사명의 예시라는 것이다.
입구 정면에서 루불료프의 삼위일체에 발이 묶여 있다가는 또 다른 그의 작품「성모 승천」,「성모영보」를 놓칠 염려가 있다. 어디 그뿐인가. 루불료프와 더불어 15세기 러시아를 풍미한 3대 이콘 화가라 할 수 있는 티오판 그레크와 디오니시오의 이콘들이 줄 지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다른 그림들과는 달리 이콘은 스쳐 지나가는 관람만으로는 부족하다.「기도」와「응시」가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이콘 감상은 곧 묵상일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제한된 여행 일정에 쫓기는 여행자들이 그 같은 호강을 부릴 시간은 없고 단지 우리는 삼위일체를 코 앞에서 마주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를 드려야 마땅했다.
모조품 전시관, 푸슈킨미술관은 러시아의 진품만을 소장하고 있는 트레차코프와 좋은 대조를 이룬다. 모스크바에서 예술여행을 제대로 하고자하는 사람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관광 명소 푸슈킨미술관은 러시아 학생들에게 이 세상의 모든 예술품들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었다는, 러시아인들의 또다른 자랑거리였다.
◆이콘 감상이 곧 묵상
고대 이집트, 그리스 로마의 조각ㆍ미술품에서부터 유럽 화가들의 수많은 작품에 처음 놀라는 관람객은 이들 중 대부분이 모조품이라는 사실에 두 번 놀라게된다. 램브란트 반다이크 루벤스 보티첼리 세잔느 피카소 르노아르 모네 드가 고갱 마티스 등 이름만 들어도 그 진가를 느낄 수 있는 이들의 모조품들은 전문가도 식별하기 힘들다는 명작 중의 명작이라고 안내자는 설명했다.
세계 유명 작가들의 작품은 거의 모두 복사했다고 자랑하는 이들 모조품 앞에서 한 관광객이 볼펜으로 작품을 무심코 가리켰다가 감시자로부터 호된 주의를 받았다. 수십여 개나 되는 전시실마다 1명씩 어김없이 앉아 있는 할머니 안전 요원들. 무표정의 이들이지만 관람객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노련한 눈길로 감시하는 이들 할머니 부대는 러시아의 모든 미술관 전시관 공연장 등에서 어김없이 만날 수가 있었다.「완전 고용」이라는「철밥그릇」을 통해 함께 고루 나누어 먹던 사회주의 체제가 아직도 러시아 경제의 기본을 이루고 있는 확실한 현장이었다. 어쨌든 학생들의 교육을 위해 세계의 명품을 진품처럼 복사해 놓은 이들의 예술에 대한 집념은 그 자체가 또 하나의 놀라움이었다.
◆모조품 전시장 독특
러시아의 마스코트, 마트료시카 인형과 모조 이콘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관광객을 유혹하는 레닌 언덕에서 모스크바 강변과 레닌 중앙 스타디움, 고리끼공원 그리고 웅장한 모스크바대학을 바라보는 것도 잠시 틈을 내볼 필요가 있는 관광 코스. 그러나 모든 벽이 이콘으로 장식되어 있는 노보데비치수도원 관내 묘지에서 고리끼 체홉 등 대문호 예술인들의 무덤과 만남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 역시 꽤 괜찮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엄청난 바가지 요금
본래 여자 수도원이었던 노보데비치 수도원은 타타르의 침공으로부터 모스크바를 지키기 위해 모스크바 외곽지대에 건립한 4개 성당 가운데 한 곳으로 성당 밖 전경이 참으로 아름다운 관광 명소다.
그러나 이처럼 아름다운 성당도 입장료를 내지 않으면 관람이 불가능하다. 하룻동안 모스크바의 명소를 관람하면 어김없이 남겨지는 입장표, 자국민에겐 단돈 1백 원을 받으면서 외국 관광객들에겐 1천 원이라는 거금을 입장료로 징수하는 러시아의 오늘에서 우리는 문화유산을 악착같이 지켜나가는 러시아식 자존심(?)을 읽을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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