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을날 ○○신부님께서 면담요청 전화를 해오셨다. 사형수담당 자매님들과 함께 신부님 집무실로 찾아가 뵈었다.
신부님께서는 유난히 눈이 부리부리하게 크고 귀티나는 중년의 의사 한분을 소개시켜 주셨다. 용건은 그 의사선생님께서 사형수 인숙이를 위한 구명운동을 해보시겠다는 것이었다. 상당히 고마웠다.
그 의사선생님이 인숙이를 알게된 동기는 우연히 신부님 서재에 들르셨다가 책상위에 놓인 보기드문 하얀십자가를 보시게 되었단다. 신부님에게 십자가의 출처를 묻자 신부님께서 말씀하시기를『응, 그거 내가 구치소에 있을때 인숙이란 청년 사형수가 내방에 자주 놀러오곤 했는데 그 청년에게서 받은것이야』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밥알을 짓이겨서 한달이상 걸려 정성껏 공들여 만든것이란 설명에 의사선생님은 감동하시게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선물로 받은 그 십자가가 구명운동을 하게 된것이다.
의사선생님은 신부님으로부터 인숙이의 사연을 대강 들어서 알고 계셨다. 이때 원장님은 자신이 중학생시절에 읽었던 이국소설을 떠올렸다고 한다. 그 소설의 주인공 이름은 잊었지만 유괴살인 혐의로 전기의자에 앉아 처형되었고, 사형집행때 너무도 밝고 평화스런 미소를 지으며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그는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나 남달리 어렵게 성장해 오다가 어느날 어린아이를 만나게 되고 그 아이를 딴 장소로 데리고 가서 본의 아니게 그 아이가 죽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을 읽고 유괴라는 한계선이 참으로 애매모호하구나 마음 아프게 생각했고 동년배 학우들과 함께 죽음과 삶에 대하여 심각하게 많이 생각하고 토론도하며 어린 나이였지만 이 세상에 사형이 꼭 있어야만 하는가 생각했었다는 것이다.
그분은 현재도 출소자들이 넝마를 주으며 함께 모여사는 공동체를 돕고 계신다. 원장님은 인숙이의 구명운동을 위해 나에게 두가지 부탁을 하셨다. 인숙이가 보내온 편지전부를 가져오고 그의 선행 등을 적어 오라고 하셨다.
원장님은 인숙이가 내게 보낸 1백통이 넘는 편지를 모두 읽어보시고 나에게 전화를 하셨다.
『수녀님,인숙이 편지를 읽고 저의 유년시절을 회상하게 되었습니다. 해방후 제가 국민학교 1학년이었던 때로 기억되는데 그때 아이들 장난감으로 물딱총이 한참 유행이었습니다. 저는 그 딱총이 무척 갖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교육상 나쁘다는 이유로 우리 부모님들 께서는 사주지 않으셨습니다. 어느날 어머님께서 외츨후 돌아오셨는데 갑자기 눈을 감으라고 하시더니 눈을 감자 이제는 돌아서서 다시 눈을 뜨고 엄마를 보라고 하셨습니다. 눈을 뜨고 엄마 바라보는 순간 엄마의 손엔 그토톡 내가 갖고 싶어 했던 딱총이 보였습니다.』
이렇게 말을 마치시더니 그때의 추억이 아직까지 남아있다고 하시면서 날더러 인숙이가 우표를 수집하고 있으니 누구보다도 수녀님께서 우표를 사다주시면 무척 기뻐할것이라고 하셨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