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으며 인숙의 구명운동 계획을 밝혔다. 『수녀님. 과거 저의 부친께서는 의사였습니다. 우리집은 아주 큰 부자여서 어릴적에 침모, 찬모, 유모, 식모 등 일하시는 분들이 많았고 남부러울것없이 살았어도 그때는 행복하다는것을 하나도 느껴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5학년때 6ㆍ25전쟁이 일어났고, 그때 우리는 부산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그런데 저의 일생을 돌이켜 생각해 볼때 저에겐 피난시절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하셨다.
원장님이 어릴적 피난 생활속에서 그 어느때 보다도 행복을 느낀것은 식사준비에서부터 모든 것을 어머니께서 손수 해주신 바로 그것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원장님은 인숙이의 그 많은 편지를 일일이 다 읽어 보시고『나는 그아이의 불행을 뼈저리게 공감했다』고 하셨다. 『수녀님, 인숙이가 한명의 어머님 슬하에서 따뜻한 사랑을 받으며 살아 왔다면 절대로 그렇게 될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런 불우한 환경에서, 또 사회구조악의 희생양이 된것을 생각할 때 저는 가만히 있을수 없었습니다. 수녀님 도와주십시요!』하고 오히려 협조를 요청해 왔다.
『구명운동을 하여 인숙이가 무기로 감형된다면 저는 할 일이 있습니다. 후원회를 조직하여 그아이에게 전문적인 한가지 공부를 시키고 꼭 재생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줄 것입니다』하셨다.
얼마나 고마우신 생각인가. 우리이웃들이 이렇게만 생각하며 살아 간다면 살기 좋은 사회가 빨리 올터인데…. 그후 나는 인숙이의 성장과정에서부터 구명운동을 위한 최대한의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인숙의 배다른 누이, 계모 등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다음은 계모의 이야기이다. 『인숙이는 퍽 순한 아이였어요. 그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때 저는 처녀로서 이집에 왔는데 학교에서 학부모회에 나오라고 하면 무척 부끄럽고 어려웠어요. 다 컸기 때문에 한번도 품에 안아 준적도 없었어요. 산동네 판자집에서 시간제로 수돗물을 줄서서 표가지고 타먹던 어려운 시절인데 인숙이는 엄마가 장사 나갔다가 돌아오면 시키지 않았어도 수돗물을 그릇마다 받아 놓아서 참 기특했어요. 심부름값을 주면 무엇을 사먹지 않고 꼭꼭 저축을 잘하는 아이였지요. 동생 윤미와 10년 차이인데 애기 기저기도 잘 갈아주고 자기가 빨기도 하고 동생을 많이 사랑했어요. 낮에는 애 없는 집같이 하루 종일 데리고 나가서 잘 놀다 들어오곤 했지요.
커서도 동생보고「나는 너만 믿는다」면서 예뻐해 주고 용돈도 잘 주고 옷도 사주고 극장도 자주 데리고 다녔어요. 집안 사정이 어려워 학교를 중단하고 부산 바다에서 배를 탈 때 엄마 투피스도 사주고 엄마, 아빠 내복과 잠바등 보약을 떨어뜨리지 않고 사다 대주곤 했어요.
「엄마 내가 돈 벌면 엄마를 행복하게 해드릴께요」하기도 했고요. 동네 사람들이 칭찬할 정도로 동생을 사랑하고 부모에게 잘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면회오는것을 아주 싫어해서 아무도 면회를 안가고 있어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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