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5월 4일, 서울 성수동성당에서 한국 최초의 꾸르실료가 실시된 이후 올해로 만 25주년을 맞았다.
한국 꾸르실료는 계속적인 성장을 거듭한 끝에 지난해 말까지 총 6만6천여 명의 꾸르실리스따를 배출, 레지오 마리애, 성령쇄신 등과 더불어 한국 교회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해왔다.
꾸르실료 운동이 처음으로 시작된 것은 1949년 1월 7일 스페인의 마요르카섬 빨마지역에서 당시 마요르까 교구장이였던 후안 레르바스 주교와 에두아르도 보닌씨에 의해 처음으로 실시됐다.
당시 스페인 교회의 신자들은 신앙에 있어서「그리스도의 신비체」의 개념에서 멀어진 자기중심적인 신심과 위선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스페인 신자들을「단기적으로 강습」시킴으로서 크리스찬 생활에 활력소를 주입시켜 주려는 시대적인 배경에 의해 탄생을 보게 됐다.
특히 꾸르실료 창시자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준비하고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과정에서 성직자와 평신도의 일치사상을 강조했으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평신도 지위향상에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그후 꾸르실료 운동이 점차 확산되고 발전돼 현재는 프랑스 등 몇 나라를 제외한 전 유럽과 북미, 중남미, 호주, 아시아의 모든 나라 등 전 세계에서 약 2백만 명의 남녀 꾸르실리스따들이 활동하고 있다.
꾸르실료 운동은 1966년을 전후해 평화봉사단 단장으로 서울에 주재하고 있던 케빈 오도넬이라는 미국인과 필리핀에서 친척 방문차 내한했던 카이모씨에 의해 처음 소개되면서 한국에서 시작됐다. 이어 1967년5월5일, 서울 성수동성당에서 한국에서의 제1차 꾸르실료가 영어로 실시되기에 이르렀다.
꾸르실료를 한국에서 처음으로 수강했던 사람들은 혜화동본당 유수철 신부와 청파동본당 김정수 신부, 이해남, 문창준, 현석호씨, 김정진씨 등 21명이었다.
1차 꾸르실료 교육을 받았던 사람들은 우리말로 된 꾸르실료 교육을 실시하기로 하고 견습을 위한 제2차 꾸르실료를 필리핀형제들을 초빙해 실시했다. 함께 봉사에 참가했던 한국인 봉사자임원 11명은 우리말 꾸르실료를 위한 만반의 준비태세를 갖추어 나갔다.
1967년 8월 24일 서울 정동 명도원에서 실시된 제3차 꾸르실료부터는 유수철 지도신부하에 이해남 씨가 회장을 맡아 최초의 우리말 꾸르실료를 실시하게 됐다.
우리말 꾸르실료를 성공적으로 실시하여 자신감을 얻은 봉사자들은 꾸르실료 운동을 전국으로 확산시키겠다는 목표아래 1968년 1월에는 인천교구에, 6월에는 부산교구 69년 1월에는 전주교구에 각각 전파했으며 광주, 대구, 원주, 수원, 대전교구 등의 순서로 전국 14개 교구에 빠짐없이 확산시켜 갔다.
1970년 6월경에는 서울과 대구를 비롯한 7개교구에서 공식적인 운동으로 인정하게 됐고 꾸르실리스따 수도 1천2백여 명에 달해 자연적으로 꾸르실료 운동에 관한 제반사항을 전국적으로 협의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다.
그해 6월30일 서울 가톨릭 학생회관에서 전국의 주간, 지도신부 등이 모여 문창준씨를 회장으로 하는「꾸르실료 한국 협의회」를 창립했으며 7월 2일 주교회의의 승인을 얻었다.
이를 계기로 교구간 및 국제간의 교류와 자료교환, 꾸르실료 운동의 발전적인 토착화를 모색하게 됐으며 꾸르실료 운동을 보다 활성화하기 위해 여성에 대한 꾸르실료도 개방하기 시작했다.
여성 꾸르실료는 1969년 11월 부산교구에서 최초로 실시됐으며 이때는 남성 임원봉사자에 의한 교육이 됐다 그후 서울대교구를 비롯한 전국 모든 본당에서 능동적이고 활기찬 모습으로 받아들여 남성 꾸르실료와 똑같은 모습으로 성장했다.
또한 꾸르실료는 각 교구간의 사목방침에 따라 청년과 숙녀, 장년을 위한 꾸르실료를 실시하는 교구가 생겨나는 등 꾸르실료 운동이 각계 각층의 신앙운동으로 확산돼 왔다.
1970년대 중반에 이르러 이 운동이 완전 정착단계에 올라서자 꾸르실리스따들은 3박 4일간의 감격을 되새기고 능동적인 크리스찬 활동을 지속할 것을 재다짐하는 전국 울뜨레야(전진)를 1970년 10월 24일 서강대에서 처음으로 개최했고 그 후 거의 매년 전국 울뜨레야 및 관구와 교구 울뜨레야를 실시해 오고 있다.
이와 함께 한국 꾸르실료는 해외교포를 위한 꾸르실료 교육을 실시, 미주 전지역과 캐나다, 서독등에까지 한국의 꾸르실료를 전파하고 있으며 세계각국의 꾸르실료와 유기적인 협조관계 속에서 세계 꾸르실료의 활성화에 일조를 담당하고 있다.
장족의 발전을 거듭한 한국 꾸르실료는 지난 92년 9월 현재 총 6만6천여 명의 꾸르실리스따를 배출하기에 이르렀고 이제는 한국교회 중흥에 큰 버팀목 구실을 충실히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됐다.
특히 꾸르실료를 수강한 꾸르실리스따들은 각 본당을 비롯한 교구와 교회내 단체에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신앙생활을 실천하는 참 신앙인으로서 맡은바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반면에 꾸르실료가 한국교회에 접목되고 정착되는 과정에서 용어문제와 꾸르실료가 창시된 스페인과 한국의 의식구조차이, 꾸르실리스따들만의 계층화 등을 이유로 다소 거부감을 주는 결과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지적을 간파한 한국 꾸르실료는 꾸르실료 운동의 내실화와 2천년대 복음화의 핵으로서 꾸르실리스따를 육성하기 위해 새로운 교육프로그램을 마련 중에 있는 등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고 있다.
올해로 꾸르실료 운동 4반세기를 지내온 한국 꾸르실료는 앞으로 청년의 성숙된 모습으로 한국사회와 세계의 복음화에 보이지 않는 누룩이 되어야 할 것으로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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