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4서7,28~29에서는 『내 아들 메시아는 자기와 함께 있는 자들과 더불어 나타날 것이요 남아 있는 자들은 4백년간 기쁘게 할 것이며, 이 일후에 나의 아들 메시아와 인간의 혼이 들어있는 모든 자들이 죽을 것이다. 그리고 나면 이 세상은 태초의 고요함으로 7일간 돌아갈 것인데 그것은 창조시와 같은 것이며, 그리하여 아무 사람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난후 새 시대가 시작된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곳에서 4백년은 아마도 창세기 15장13절에 기인하고 있는 것이다. 이곳에서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스라엘의 고통의 기간이 4백년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한편 시편 90편 15절에서는 『우리가 고생한 그 날수만큼, 어려움을 당한 그 햇수만큼 즐거움을 누리게 하소서』하고 기도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그러므로 기쁨의 기간은 고통의 날 같이 4백년이 계속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보다 보편적인 사고방식은 이 세계는 창조의 기간과 맞먹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창조기간이 6천년이라는 설이 있었다. 그것은 시편 90, 4에서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고』라고 하며 베드로 후서 3,8에는 『주께서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고 하였다. 창조의 하루하루가 1천년, 그러므로 메시아는 여섯째 1천년 기간에 오실 것이고 일곱째 1천년은 창조 설화의 안식일에 해당하며 그것이 메시아의 통치일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계산에서 지상에서 메시아의 통치가 1천년 된다는 계산이 나오게 된다.
이들은 이 천년의 통치기간은 의(義)의 통치기간이며, 또한 물질적, 정신적 축복도 함께 내리워지는 시기로 보고 있었다.
천년왕국설의 배후는 위와 같은 상황에서 생겨난 것이다. 즉 그들이 현실에서 당하는 정치적 종교적 탄압에 대한 하느님의 현실적인 보상으로 본 것이라고 볼 수가 있는 것이다. 크리스천들은 계시록의 이 구절을 근거로 하여 천년왕국설을 하나의 신앙으로 매우 널리 그리고 잘 알려져 있었다. 이것에 대하여 교회사가인 에우세 비오는 자신의 저서에서 이들이 이 천년왕국을 글자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있다. 『내 생각에는 이런 개념들은 계시저서들을 오해한데서 가져온 것 같고, 그 계시 문학에서 말해진 것들은 신비적인 비유로 말해졌다는 것을 알지 못한 것 같다. 그의 이해력은 매우 제한된 것 같다』.
이 천년왕국설이 물질적인 축복에 너무 기울어지면서 더욱 비판을 받기 시작한다. 오리게네스는 『성도들이 먹을 것은 생명의 떡이요, 그들이 마실 것은 지혜의 잔이다』라고 말하며 천년왕국에서 육체적인 쾌락과 사치를 기대하는 자들을 꾸짖고 있다.
아우구스띠노 성인께서도 처음에 이것에 심취하였다가 나중에 이것을 영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사탄의 결박이라는 것은 예수께서 이미 말씀하신 대로 강한자보다 더 강한 자가 그를 결박하는 것이요(루가 11, 22) 천년 기간이란 예수의 초림과 최후 고난의 전 과정을, 그들에게 주어진 심판이란 죄인들을 매고 풀고하는 것을 첫번 부활이란 세례 받은자들이 그리스도의 부활에 영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천년은 많은 수나 긴 기간을 표현하는 상징적인 수를 말한다. 그러하기에 베드로 후서 3장8절에 나타난 『주님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습니다.』라는 말씀도 하느님께서는 인간들이 생각하는 그런 시간적인 제약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천년왕국이란 결국 질적인 하느님의 통치, 그분 아들의 죽음과 부활로 이룩된 하느님의 새 자녀들의 기간을 말한다. 그러하기에 천년왕국의 기간은 이 세상의 멸망 뒤에 오는 따로 규정된 천년의 기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부활에서부터 예수 재림 때까지의 전 기간을 의미한다고 본다.
앞에서 이미 밝힌 대로 성서에서의 숫자는 특히 묵시문학 안에서의 숫자는 양적인 의미 보다는 질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성서 안에서 나타나는 숫자의 의미를 알아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즉 성서에서 4라는 숫자는 지구의 동·서·남·북과 관련이 되는 수로서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은 마치 우리들이 별별 사람들이 다 모였다는 것을 표시하기 위하여 사방(四方)에서 다 모였다고 하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7이나 그의 배수는 완전수를 말하고 있고, 12는 이스라엘의 12부족과 또는 새로운 이스라엘의 새 부족을 의미하는 12사도와 관계된 수로 완전함을 말하며, 1000은 하느님께 속한 것으로 완전함을 의미하고 있다. 그와 반대로 7의 반을 의미하는 3 1/2(즉 3년 반=42달=1260일 등)은 불완전한 수로 부분성을 나타내며 하느님의 통치하에 있음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천년왕국이라는 것은 천년 동안의 나라를 의미하지 않는다.
천년왕국이란 하느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의 나라 (마르코 1, 14)를 의미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예수님과 함께 이 세상에 왔으나 아직 완전히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 나라는 모든 사람들이 완전히 하느님의 자녀로 변화가 되는 날에 (말 뿐만의 신자가 아니라 마음으로 부터 변화되어 그리스도를 닮은 완전한 신자가 되는 날에) 이루어 질 것이다. 결국 이것이 주님의 재림과 함께 이루어 완성이 된다고 할 때 천년왕국이란 예수님의 탄생에서부터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의 기간을 의미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주님의 재림은 세상의 완성이요 영원한 행복의 시작이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이 주님이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것은 『주 예수여 빨리 오십시요(마라나타)』라는 간절한 기도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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